민주 "의견 수렴 없었다" vs "李가 꿈꾸던 일" 엇박자
17% 여론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당 사유화 우려
민주신문=김루하 기자|대의원과 권리당원 표의 무게를 동일시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두고 여권 내홍이 불거졌다. 해당 안이 '친청(친정청래)' 라인 구축을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다. 현재 반발을 의식한 듯 속도 조절에 나섰으나, 당정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회에서 통과된 '1인 1표제' 개정안이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멈춰섰다. 당초 28일 예정이었던 중앙위원회 일정은 일주일 뒤인 내달 5일로 연기됐다. 해당 룰로 당내 갈등이 고조될 조짐이 보이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은 "현재 제기되는 우려를 감안해서 어떻게 보완해 나갈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해당 개정안을 추진하자 '친명(친이재명)'계 일각에서 반발이 일었던 데 대한 반응이다.
현재 정 대표가 추진하는 이른바 '정청래 룰'은 선거에서 대의원과 당원 모두에게 말 그대로 1인 1표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당초 권리당원의 17표 이상 위력을 발휘했던 대의원의 1표 무게가 구분 없이 동등해지는 것.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는 구조다.
또 내년 6월 지방선거 예비 경선에서는 권리당원 표심을 100% 반영한다. 내년 8월로 예정된 당 대표 선거에선 25%로 분배된 권리당원 투표 비율을 10% 상향할 생각도 하고 있다.
얼핏 권리당원에 공평하게 힘을 실어주는 민주적 절차로도 보인다. 공개 반발에 나섰던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이 차마 반대는 하지 못하고 "찬반을 떠나 의견 수렴이 모자랐던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22일 입장을 내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의견 수렴 방식, 절차적 정당성, 타이밍이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대표적인 친명계 조직이다.
1인 1표로 공정하게, 명분은 충분하다. 문제는 일각에서 지적하고 있는 이번 정청래 룰의 숨은 의도다. 이를 계기로 대폭 권한이 커지는 권리당원 대부분이 강성 지지층이기 때문. 이는 일부 '적극 참여층'의 영향력이 과하게 반영될 여지를 낳는다.
가까운 예는 86.8%의 압도적 찬성률을 기록한 이번 개정안에 대한 여론조사다. 정 대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주장했으나 여론조사 참여율 자체를 들여다보면 16.81%에 그친다. 결국 전체 인원 중 17%에 해당하는 강성 지지층의 의견이 '당원의 목소리'가 된 셈이다.
정 대표는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권리당원의 지지에 힘입어 친명계인 박찬대 당시 후보를 누르고 대표 직에 오른 바 있다. 현재 그가 내년 대표직 연임을 위해 이번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승리 공식을 체득해 권리당원 결집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는 향후 당정 갈등의 뇌관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도 은근히 '박찬대 체제'를 선호했던 대통령과 당 사이 균열이 드러난 바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명심(이재명의 마음)'과 '청심(정청래의 마음)'등 구도가 다시 쟁점화될 수 있다.
사실상 '명청(이재명–정청래) 교체기'의 선전포고라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지역위원장의 절대 다수는 친명계이며 이들이 임명한 대의원 역시 친명계 성향이 짙다. 개정안을 통해 대의원 표의 무게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발톱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현재로선 졸속 추진 비판 등 당 내홍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정 대표가 당권을 넘어 차기 대권의 발판을 노린다는 분석이다. 일단 그가 당 대표 연임에 성공할 시 오는 2028년 4월 공천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오는 2030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무리없이 점할 수 있다.
이 대통령도 뚜렷이 대립하기는 난감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정 대표가 "이 대통령도 원했다"라며 쐐기를 박았기 때문.
정 대표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기사를 공유하며 "이재명 대표 시절 최고위원으로서 호흡을 맞추며 당원주권정당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적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투표 비율 차이를 축소하는 당규 개정의 건을 의결하며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1인 1표제에 대한 열망이 매우 크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일부 친명계 당원들은 이번 개정안의 법적 효력을 멈춰달라는 가처분 소송에 나섰다. 이들은 이번 개정안으로 자칫 당이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만 과대 반영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선 세심하게 고려된 보완책 제시가 시급하다며 '영남 자민련'도 언급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1인 1표제라는 게 집권당 대표가 내놓는 방식이라기엔 상당히 조악하고 이기적이다"라며 "완전히 정당을 사유화하는 고속도로를 만들고 국민 눈높이를 무시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만이 당원이고 민심인 게 아닌데 이런 식의 개정은 한마디로 재앙이다"라며 "국민의힘과 상황도 다르면서 이런식으로 강성에 몰두하는 건 상당한 오판"이라고 짚었다.
그는 "당장 정청래에게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론 당 자체에 극심한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며 "여야 양극화 뿐 아니라 당내 계파 갈등도 본격화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도 반대하거나 엄숙하게 어깃장을 놓기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다. 본인의 전철 그대로 가겠다는 건데 뭐라 하겠나"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