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통해 사업 구조 '유통→개발' 변모
'구강붕해정(ODT)' 출시 등 추가 호재 대기

용인에 소재한 제일약품 공장 전경. ⓒ제일약품
용인에 소재한 제일약품 공장 전경. ⓒ제일약품

민주신문=조환흠 기자|제일약품이 자회사의 성과를 통해 신약 개발사로의 체질 개선을 본격화하고 있다. 단순한 단기 실적 개선을 넘어 회사의 사업 구조가 유통 중심에서 개발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일약품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올해 눈에 띄는 실적 턴어라운드를 기록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올 상반기 매출 186억 원, 영업이익 27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 19일 공시된 3분기 누적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은 378억 원, 영업이익은 110억 원에 달한다. 

실적 개선의 일등 공신은 자체 개발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자큐보'다. 3분기 매출 192억 원 가운데 약 123억 원이 국내 자큐보 판매 수익에서 발생했다. 여기에 중국 파트너사 리브존파마슈티컬그룹으로부터 유입된 기술 수출(L/O)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약 69억 원이 더해지며 실적을 견인했다.

통상적으로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상장 직후 수년 간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구조적 특성상 뚜렷한 수익원이 확보되지 않은 채 막대한 투자와 기술 개발 선점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온코닉테라퓨닉스는 이런 관례를 깸과 동시에 '돈 버는 바이오 기업'이라는 대열에 합류했다.

업계는 이번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성과를 두고 제일약품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던 수익 구조가 본격적으로 개편되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제일약품은 과거 자체 신약보다는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의 의약품을 도입해 판매하는 비중이 높아 '도매상'이라는 꼬리표와 수익성 부진 등이 지적됐다. 상품 매출 비중이 전체의 70% 안팎에 달해 왔다. 이는 연 매출 7000억 원대를 기록하는 대형 제약사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이러한 사업 구조는 외형 성장에는 유리했다. 하지만 남의 약을 대신 판매하는 구조 탓에 영업이익률이 1~2% 수준이거나 적자를 반복하는 등 내실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제일약품은 2020년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고 수익 구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내 연구 인력과 파이프라인을 떼어내 신약 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를 설립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설립 4년 만에 신약 허가 획득에 성공하며 제일약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냈다. 이로써 모기업은 안정적인 현금 흐름과 판매망을 바탕으로 외형을 뒷받침하고 자회사는 혁신 신약 개발을 전담하는 분업 구조가 자리 잡게 됐다.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큐보정'. ⓒ제일약품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큐보정'. ⓒ제일약품

자큐보가 쏘아 올린 성공의 바통은 이제 차세대 파이프라인인 이중 저해 표적항암제 '네수파립'이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제일약품과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그리는 큰 그림은 명확하다. 자큐보로 창출한 현금을 네수파립 등 후속 파이프라인에 재투자해 외부 자금 의존도를 낮추는 'R&D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네수파립은 암세포의 DNA 복구를 돕는 효소 PARP와 성장을 관장하는 탄키라제(Tankyrase)를 동시에 억제하는 이중 기전의 혁신 신약이다. 특히 기존 PARP 억제제의 내성·HRD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기대주로 꼽히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희귀의약품 지정을 통해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네수파립의 개발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췌장암에서는 임상 1b를 마치고 식약처로부터 2상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았으며 국내 췌장암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지정을 확보했다. 난소암에서는 셀트리온 '베그젤마'와의 병용 2상에 대해 국내 IND를 신청해 심사 준비에 들어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장 내년에는 자큐보의 성장을 견인할 추가 호재들이 대기하고 있다. 우선 복약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구강붕해정(ODT)'이 내년 1분기 출시될 예정이다.

자큐보 구강붕해정은 물 없이 입에서 녹여 먹을 수 있어 알약 삼킴이 어려운 고령층이나 식도 연하 운동 저하 환자에게 새로운 처방 옵션을 제공해 시장 점유율 확대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중국 시장 진출도 가시화하고 있다. 자큐보는 현지 임상 3상을 마치고 지난 8월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에 품목허가를 신청해 심사가 진행 중이며 업계에서는 2027년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일약품 관계자는 "이번 흑자 전환은 단순 재무 성과를 넘어 유통 중심에서 R&D 중심으로의 체질 개선이 안착했다는 의미"라며 "자체 신약 수익 모델이 실질적 성과를 내며 회사 정체성 역시 '신약 개발 기업'에 걸맞은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큐보가 확보한 시장 입지와 현금 창출력은 후속작 네수파립 개발에 안정감을 준다"며 "적응증 확장이나 병용 임상 등을 외부 투자 없이 자체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큐보의 긴 약효 지속 시간과 식사 여부에 상관없는 복용 편의성이 현장에서 호평 받은 비결"이라며 "최근 허가된 구강붕해정(ODT)으로 환자 선택권을 넓히는 요소들이 빠른 안착을 도울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향후 3~5년은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자큐보의 글로벌 매출과 네수파립의 항암 옵션 안착을 통해 지속 가능한 신약 개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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