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이한호 기자|교량 및 터널과 같은 시설물의 안전 진단 용역을 과도하게 낙찰 받은 후 불법적으로 하도급을 준 안전진단업체 26곳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시설물안전법 및 건설기술진흥법 위반 혐의로 불법 하도급을 준 업체 대표 등 34명과 미등록 상태로 용역을 수행한 업체 대표 6명을 검거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2023년 5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발주한 교량, 터널 등의 안전 진단 및 설계 등 용역을 발주처에 통보하지 않고 불법으로 하도급하거나, 안전진단기관으로 등록하지 않고 용역을 수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부실 진단을 막기 위해 제정된 시설물안전법은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일정한 인력과 장비를 갖춘 등록 업체만이 안전 점검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지자체가 관리하는 주요 시설물 안전 진단이 불법 하도급되거나 무등록 업체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쟁 입찰로 진행되는 안전 진단 용역은 수행 실적 등에 따라 참가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대규모 안전진단 업체들이 용역을 독식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들 업체 중 일부는 수주한 용역이 너무 많아 보유 인력만으로는 수행이 불가능해지자, 실적이 적은 업체에 낮은 가격으로 불법 하도급을 주었다. 심지어 하도급을 받은 업체가 이를 다시 무등록 업체에 재하도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하도급 업체 직원을 자사 직원으로 일시 등록하거나, 관련 없는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불법적으로 하도급된 용역은 총 115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지역 제한 입찰에서 낙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지역에 지점을 개설한 뒤, 많은 용역을 따내고 대금의 60~70%만 지급하며 하도급을 주기도 했다.
경찰은 위반 업체 26곳의 명단을 관련 지자체 등 관리 주체에 통보하고, 국민 안전과 직결된 교량, 터널 등의 점검 용역에 대한 하도급 실태 및 시설물 안전성 관리·감독 강화를 요청했다.
경찰은 "불법 하도급은 관리주체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고, 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 부실로 이어져 국민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도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하도급뿐만 아니라 이와 관계된 유착비리 등에 대해서도 더욱 강력하게 단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