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전력난에 발전·송배전 분야 수주 확대
외교 지원 통했다…"과거 교훈 삼아 수익성 관리"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 한국수력원자력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 한국수력원자력

민주신문=이한호 기자|체코 원전 등 초대형 프로젝트와 중동 텃밭의 견고한 실적에 힘입어 올해 해외건설 수주 500억 달러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고부가가치 사업 중심의 체질 개선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맞물리면서 K-건설의 저력이 다시 한번 세계 시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5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수주액은 413억2941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실적(371억 달러)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현재 추세대로라면 2015년 기록했던 461억 달러를 넘어서 연간 수주액 500억 달러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성과는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건설의 해외 수주액은 '제2의 중동 붐'이 일었던 2010년 사상 최대인 716억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무리한 외형 확장과 제 살 깎아먹기식 저가 수주 경쟁이 반복되며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결국 수주액은 꾸준히 감소해 2019년에는 223억 달러까지 곤두박질치며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와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노력이 이어지면서 2020년을 기점으로 회복세로 돌아섰다.

올해 실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계약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이다. 계약 규모만 187억2000만 달러로, 단일 계약 기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다만 이 계약을 제외하더라도 K-건설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체코 원전을 제외한 3분기 누적 수주액은 약 226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211억 달러)을 넘어섰다.

특히 글로벌 에너지 수요 확대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발전 관련 수주가 크게 늘었다.

올해 3분기까지 해외 수주에서 발전 부문은 총 242억6000만 달러로, 전체의 59%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60억7000만 달러와 비교해 4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원자력·화력·태양광 발전소 건설은 물론, 전력망을 구축하는 송배전 부문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두각이 나타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추세에 따라 발전 설비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특히 AI시대 전력수요가 폭증하면서 원전은 물론 재생에너지 및 송배전망 등 관련 인프라 시장의 성장이 본격화되고 있어 향후에도 꾸준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카타르 국영에너지회사인 카타르에너지가 발주한 총 발전용량 2000MW 규모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낙찰통지서를 수령했다. 사진은 협약식 후 기념촬영 모습 ⓒ 삼성물산
삼성물산은 카타르 국영에너지회사인 카타르에너지가 발주한 총 발전용량 2000MW 규모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낙찰통지서를 수령했다. 사진은 협약식 후 기념촬영 모습 ⓒ 삼성물산

한수원을 제외한 건설사 중에서는 삼성물산이 가장 많은 수주를 기록했다. 카타르 태양광 발전소, UAE 복합화력발전소 등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를 잇달아 따냈다.

11월 들어서도 카타르에너지가 발주한 약 1조2000억 원 규모의 LNG 탄소 압축·이송설비 건설공사 낙찰통지서를 수령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건설의 약진도 눈에 띈다. 특히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원전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최근 미국 에너지 디벨로퍼 '페르미 아메리카'와 세계 최대 복합에너지 및 AI 캠퍼스 내 대형원전 4기에 대한 기본설계(FEED) 계약을 맺으며 미국 대형원전 시장 진출의 첫발을 뗐다. 향후 본계약까지 체결하면 국내 기업이 미국에 대형원전을 짓는 최초의 사례가 될 전망이다.

또한 지난해 말부터 웨스팅하우스, 홀텍 등과 추진해 온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원전(최대 140억 달러 추산) 본계약 체결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최대 4조 원 규모의 미국 팰리세이드 소형모듈원전(SMR) 계약도 앞두고 있다.

원전 외에도 ▲미국 텍사스 콘초 LUCY 태양광 발전사업 ▲사우디 New Khulis 및 Humaij 380kV 송전 공사 등 에너지 관련 사업을 다수 수주했다.

이라크에서는 총 31억6000만 달러 규모의 바스라 해수처리 사업(WIP) 수주에 성공하며 역대 해외수주 30위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확보했다.

이 외에도 3위를 차지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우디와 베트남에서 가스복합발전소를 잇달아 수주하며 기술력을 입증했고, 삼성E&A 역시 주력 분야인 화공플랜트 시장에서 꾸준한 성과를 내며 실적에 기여했다.

이러한 성과는 과거와 달라진 K-건설의 성공 방정식이 시장에 통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중동 붐 시기, 여러 국내 기업이 한정된 프로젝트를 두고 벌였던 '제 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에 대한 우려가 최근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는 각 기업이 과거와 같은 외형 확장 경쟁에서 벗어나 자사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수익성을 철저히 따지는 선별적 수주에 나서는 기조가 자리 잡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기업들의 전문성은 국가적 역량이 필요한 사업에서는 강력한 시너지로 이어진다.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과 공기업, 민간기업의 협력은 '원팀 코리아'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500억 달러 달성은 과거의 양적 팽창과는 다른 질적 성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과거 출혈 경쟁으로 사실상 '남 좋은 일'만 시켜줬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수주 이후에도 철저한 수익성 관리를 통해 내실 있는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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