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언론인
이원두 언론인

경주 APEC폐막 직후에 열린 한중정상회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계가 주목한 '이벤트'였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의 브리핑대로라면 '양국관계의 전면 복원'에 두 정상이 합의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두 정상은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 등 문서화 한 '공동이 결과물'이 아니라 70조 원 (4천억 위안)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포함한 7건의 양해각서(MOU) 교환으로 대신했다. 정상회담에서 의례적으로 따르는 공동선언(공동성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트럼프가 관세 무역전쟁을 벌인 이후에 굳어지고 있는 뉴노멀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11년의 '공백'을 메울 정밀한 사전 준비 없이 정상회담 한 번으로는 현안 해결이 쉽지 않다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양해각서가 7건이나 되지만 서해 구조물, 한한령 (限韓令), 비핵화 등 양국의 핵심 관심사가 빠진 것도 11년 만에 열린 정상회담의 한계이자 앞으로의 과제라고 봐야 한다.

특히 이번 한중정상회담은 단순한 양국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재기한 여러 과제가 엮여있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한⁃미⁃중 3국의 관심사가 의지에 오른 것으로 보는 '현실적 시각'도 있다. 여기에 중국의 외교는 뒤끝이 길고 깨끗지 못한 특징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드를 아직도 핫 이슈로 보는, 그래서 한한령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에서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조선업체에 대한 중국의 제재, 트럼프가 한국이 원자력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 등등은 한중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특히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는 중국의 절대적 관심사다.

현재 중국이 미국을 앞서고 있는 부문은 이번에도 상당한 효력을 발휘한 희토류와 조선업, 특히 군함 건조능력이다. 트럼프 이전부터 미국 해군 강화 중장기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인프라와 인력을 포함한 조선업 능력이 미치지 못해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고율의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한국이 마련한 '마스가' 카드에 트럼프가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매달린 이유다. 따라서 한미간의 '마스가' 프로젝트는 중국이 가장 효율적으로 보는 대미 카드를 빼앗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을 보유하는 것도 중국으로서는 '웃고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특히 서해에 양식장을 가장한 구조물을 설치 가동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원자력 잠수함을 통한 한국의 감시와 탐색능력 확대를 마땅하게 여길 까닭이 없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이 공동성명 없이 '대원칙'만 확인하고 나머지 개별 사안은 실무회담으로 넘긴 배경이다.

중국이 '마스가'의 첨병 노릇을 하는 한화 오션에 대한 제재를 풀 것이라는 뉴스가 경주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나온 것만 보더라도 이번 한중정상회담의 한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중간의 문제가 지금은 양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동남 중국해, 나아가서는 세계적 문제로 '격상'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도 되지만 트럼프가 헝클어놓은 국제질서가 그만큼 복잡해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한국 외교의 기조인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봐야 한다. 새 국면을 맞았더라도 중국 눈에 한국이 아무리 못마땅하게 비치더라도, 또 한국이 중국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더라도 '상호협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숙명적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

새로운 국면을 맞은 한중 관계의 중요 변수는 미국과의 관계다. 미국은 한국을 단순한 극동의 우방이 아니라 중국 견제카드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 될수록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한국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26만 장이나 공급하기로 한 것은 AI와 IT 분야에서 한국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양강을 구성하고 있는 이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 강도는 시장지배 능력을 좌우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중국 역시 엔비디아처럼 한국과의 협력이 중장기적 포석을 놓칠 까닭이 없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안미경중'의 재편성 시기를 맞은 지금, 시진핑 중국도 비록 사드 때처럼 '모순과 핵심 이익'을 다시 꺼냈으나 한국이 협력 상대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내서 번지고 있는 '친미 반중' 정서를 적절히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편이 될 것이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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