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쟁력은 제조업에서 나온다. 지금 트럼프가 관세전쟁으로 동맹 우방을 옥죄면서 중국에 무역전쟁을 선포한 것도 따지고 보면 쇠락한 미국 제조업 재건을 위한 비상수단이다.
실물경제가 경쟁력을 잃으면 통화 역시 힘을 잃게 마련. 플라자 합의 40주년을 맞는 지금 달러화가 다시 흔들리고 있는 이유다. 1985년 9월 22일 당시 주요 5개국(G5: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일본)이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회동, 달러화 위상 고수에 합의한 것이 플라자 합의다. 지난 40년간 기축통화 지키기에 진력했으나 달러화 위상과 의미 자체는 상당히 퇴색된 기미를 보인다.
기축통화는 쉽게 말해서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그래서 무역 등 국제적 결제수단이 되는 통화다. 1816년 영국이 처음으로 금본위 제도 도입으로 금이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금본위 제도에서는 금이 통화의 액면 가격을 보증하는 동시에 원할 때는 언제나 금으로 바꿀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도입으로 금본위 대신 금-달러 본위로 변경되었다.
이후 1971년 닉슨이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달러만이 기축통화로 남게 되었다. 금의 뒷받침이 없는 달러화는 그래서 부침이 심했다. 플라자 합의로 연명은 했으나 중국 위안화의 도전 등으로 기축 기능은 적지 않게 흔들렸다. 유로와 엔화 등의 준기축 통화 도움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다시 금본위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현재의 세계 경제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금이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
뉴욕 미국 연방준비은행 지하 창고에는 외국 정부, 각국 중앙은행, 국제기구 등이 맡겨놓은 약 6천만 톤의 금괴가 쌓여 있다. 시가로 쳐서 무려 7천억 달러, 원화로 1천조 원 규모다. 금은 닉슨 쇼크 이후 달러에 밀려났으나 지금은 다시 달러를 밀어내고 '준비 자산'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달러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연준 이사회(FRB)의 금융완화 노선을 '달러화 무제한 발행'으로 여길 정도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 규모가 1965년 수준인 3만 7천 톤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월드 골드 카운슬의 견해다. 각국 중앙은행 준비 자산 가운데 금이 유로화를 웃돌 정도라는 것. 특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여러 나라의 '금 회귀'움직임이 뚜렷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상하이 황금교역소는 홍콩에 오프쇼어 금고를 설치, 금 거래의 자유화를 노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캄보디아 중앙은행 총재 치아 세레이(Chea Serey) 여사 조차도 '과도한 달러 의존은 리스크가 크다'고 경고할 정도다. 인구 1천 7백만 명, 국내총생산(GDP) 5백억 달러로 세계 94위인 캄보디아 역시 달러 경제권의 일원이지만 비중은 미미하다. 캄보디아라면 킬링필드를 연상시키는 내란과 학살의 나라다. 그 캄보디아 중앙은행 총재가 달러화의 폐해를 지적할 정도라면 덧붙일 말이 없지 않을까?
.플라자 합의 당시 1달러 2백 40엔이던 환율이 이듬해엔 1백 50엔으로 낮아진, 강한 엔화 시대 막이 열렸다. 단기간의 거품성장기를 거쳐 '잃어버린 30년'으로 접어들었다. G5가 모여 달러 살리기 대책으로 엔화 가치를 높이는 것에 집중, 사실상 독박을 쓴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버티면서 지금까지 세계 경제 강국 위상을 잃지 않은 강력한 동력의 원천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제조업의 힘이다.
80년대 일본은 철강 자동차, 전기 전자, 공작기계뿐만 아니라 반도체까지 지배할 정도로 독주했다. 플라자 합의로 미국 제조업이 호전되거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미국경제, 특히 제조업 쇠락은 일본의 추격을 경시한 데다가 강력한 노조와의 힘겨루기에서 패배한 결과다. 지금 트럼프가 EU, 일본의 목을 졸라 '현금 선불 투자'를 끌어내면서 한국도 뒤를 따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목적과 배경이 제조업의 부활과 달러 위상 회복으로 읽히는 이유다. 한마디로 줄이면 한국은 트럼프가 탐낼
정도의 제조업 강국이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어떤가? 기회만 있으면 정책으로 기업을 옥죄러 든다. 그러고도 괜찮다고 보는 것일까?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