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후에도 '먹통'…고장차 되찾는데 230만 원, 고치려면 총 900만 원
차주 "명백한 진단 실패" 분통 vs 르노 "절차대로, 고객 부담 최소화" 맞서

사고 당시 르노 조에 전기자동차. ⓒ 제보자
사고 당시 르노 조에 전기자동차. ⓒ 제보자

민주신문=이한호 기자|보증기간이 끝난 전기차의 '수리비 폭탄' 우려가 현실이 됐다. 3년 된 르노 전기차 차주가 원인 불명의 고장으로 공식 서비스센터를 찾았지만 400만 원대 수리가 진행된 뒤에도 차는 여전히 운행 불능 상태에 빠졌다.

제조사는 오히려 추가 수리 견적과 함께 기존 작업 비용을 요구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 2일 대구에 사는 직장인 A씨는 2022년 구매한 르노 조에 전기차를 몰고 퇴근하던 중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이 터널 안에서 갑자기 차가 멈춰 선 것이다. 계기판에는 '전기 시스템 이상'이라는 경고 문구만 떴을 뿐, 차량은 그대로 먹통이 됐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급한 상황이었다.

A씨는 보험사 레커차를 이용해 차량을 르노 대구 사업소에 입고시켰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던 차량이기에 사업소의 진단과 수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업소에서는 진단기를 근거로 수리를 시작했다며 A씨에게 단계별로 부품 교체를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시동 배터리 교체 (약 20만 원) ▲DCDC 컨버터 교체 (약 210만 원) ▲모터 컨트롤러 교체 (약 200만 원)까지 총 430만 원에 달하는 부품을 교체했지만, 차량 상태는 입고 당시와 달라지지 않았다. 시동은 여전히 걸리지 않았고 계기판에는 '전기 시스템 이상' 경고가 선명했다.

결국 사업소 측은 "모터 저항값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며 모터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추가 견적은 약 600만 원. A씨는 "왜 처음부터 모터 문제를 확인하지 못했나, 혹시 정비 과정에서 실수로 모터가 손상된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업소 측은 자신들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다며 3단계에서 교체한 모터 컨트롤러 비용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작업이 완료된 시동 배터리와 DCDC 컨버터 교체 비용 230만 원은 반드시 지불해야만 차량을 내어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차라리 교체한 부품을 모두 떼어가고 고장 난 상태로 차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업소는 한번 장착한 부품은 반품이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A씨는 "고장 난 차를 230만 원 주고 찾아가거나 아니면 모터까지 900만 원에 다시 수리를 맡겨야 하는 답답한 현실"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전기차를 섣불리 산 게 죄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전기 시스템에 이상이 있습니다' 오류가 떠 있는 계기판. ⓒ 제보자
'전기 시스템에 이상이 있습니다' 오류가 떠 있는 계기판. ⓒ 제보자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해당 차량의 경우 보증기간 경과 이후 복합적인 원인으로 차량이 입고된 상황이었으며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원인을 찾아 나갔고 그 과정마다 점검,수리 비용에 대한 고객 안내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사 또한 이러한 부분을 감안해 고객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최소한의 비용을 책정해 고객에게 안내를 드렸다"고 덧붙였다.

현행 제도에서는 수리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안내를 했다면 비용을 청구하는데 문제가 없다. 사실상 진단 실패의 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에서는 전자 부품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정비나 수리 진단이 어려워지는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례처럼 국내 판매량이 적은 모델은 고장 및 수리 데이터가 부족해 제조사조차 정확한 진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모터 고장이 정확히 진단됐다면 불필요한 부품 교체는 없었을 것"이라며 "기술력이 뒤처지고 서비스망이 정확히 갖춰지지 않은 업체를 중심으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기댈 곳은 마땅치 않다. 이 교수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비자들이 적극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변호사 비용 부담이 커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진단이 어려운 친환경차의 수리 분쟁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단 실패 시의 책임 소재나 과잉 정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세워 소비자를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A씨는 소비자보호원에 해당 사건을 접수하고 민사 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그는 "주유비 아껴보려다 더 큰 수리비를 낼 판"이라며 "저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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