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선임 과정서 불공정 의혹…엉뚱한 10차 회의록 내놓고 '당당'
문체부 감사 결과 규정‧절차 위반…"최종 선택은 축구협회에 달렸다"
민주신문=최경서 기자|결국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감사서 대한축구협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규정 및 절차를 위반한 것이 인정된 것. 하지만 홍 감독 선임을 무효화 처리하기는 어렵다는 결과가 나와 칼자루는 협회에 넘어가게 됐다.
홍 감독에 더해 정몽규 축구협회장까지 동반 사태하길 염원했을 팬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다. 그러나 현재 협회는 여느 때처럼 마냥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결국 한 명이라도 생존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속 최선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문체부 "홍명보 선임, 무효화는 어려워"
문화체육관광부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 관련 감사에 대한 중간발표를 진행했다. 축구계 안팎에서 쏟아져 나온 예상대로 홍 감독의 선임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확인됐다.
브리핑을 맡은 최현준 문체부 감사관은 "규정상 감독 추천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최종 감독 후보자 3명에 대해 면접을 진행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최종 감독 후보를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 정관에 따르면 전력강화위원회는 지도자의 해임과 관련해 조언 및 자문을 하는 역할의 기구다. 전력강화위원회 차원에서 직접 감독 선임을 결정할 수는 없다. 추천할 수 있는 권한만 주어진다.
하지만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는 전력강화위원회 구성원이 아니다. 전력강화위원장으로 위촉된 적도 없다. 지난 6월 전력강화위원회 온라인 임시회의에서 위원들로부터 감독 추천 권한을 위임받은 것도 아니다. 여기서부터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또 최 감사관은 면접 과정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했다고 짚었다. 지난 7월 5일 이 기술총괄이사와 홍 감독 후보자와 대면 면접 과정이 다른 외국인 감독 후보자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당시 이 기술총괄이사가 홍 감독을 회유하기 위해 홍 감독 자택 인근에서 장시간 기다렸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최 감사관은 "사전 인터뷰 질문지도, 참관인도 없이 단독으로 장시간 기다리다 늦은 밤 자택 근처에서 면접 진행 중 감독직을 요청하는 등 상식적인 면접 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독대한 상황에서 면접이라는 행위 자체가 이뤄졌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이 사임 의사를 표명하기 전 정 회장에게 보고한 감독 후보자 3명에 대한 추천 우선순위에는 홍 감독이 1순위"라며 "그 당시 정 전 위원장은 홍 감독과 어떠한 면접도 진행하지 않은 채 1순위로 추천한 거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선임하던 당시에도 규정‧절차를 위반한 것이 이번 감사를 통해 나타났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전력강화위원장은 처음부터 전력강화위원들을 배제하고 선임 절차를 추진했다. 전력강화위원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감독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고, 에이전트를 선임해 후보자들에게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에도 홍 감독 선임에 대한 무효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홍 감독의 거취를 결정하는 건 축구협회 몫이라는 것이 문체부 설명이다.
최 감사관은 "홍 감독과 계약을 무효로 보기는 어렵다. 축구협회에는 독립성이 있고 전문성이 있다. (징계와 관련해) 특정한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며 "(협회가) 자체적으로 검토해 국민 여론과 상식,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력강화위원회가 정해성 전 위원장이 추천한 것에 따라 협상을 진행해서 선임했으면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1순위 홍 감독부터 협상을 진행하라고 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문체부는 이달 말 예정된 최종 감사에서 정 회장에 대한 처분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현안질의 당시는 물론 이전부터 수차례 도마 위에 올랐던 만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는 방침이다.
최 감사관은 "정 회장도 관련 정관 등이나 국가대표 운영 위반 등이 이번 감사에서 드러났다"며 "아직 끝나지 않은 다른 사항도 있어 그런 부분 같이 검토해 10월 말 정 회장에 대해서도 처분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들끓는 여론 속 홍명보 거취는
문체부가 축구협회에 선택권을 넘긴 것은 협회가 국민 여론과 상식,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자율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정관이 걸림돌로 놓여 있다.
실제 FIFA 정관에는 '축구협회는 제3자의 영향 없이 운영돼야 한다'는 규정이 담겨 있다. 축구협회에 대한 정치의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어긴 경우 제재를 가한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월드컵 출전이 금지될 수도 있다.
결국 무효화를 선언하지 않았을 뿐 협회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무효화 처리를 하라는 압박을 가한 것인데, 협회는 규정‧절차 위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 겉으로 인정하는 '척'만 해도 협회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에는 달라질 것이 없음에도 한 치의 물러남도 없다.
이미 수년간 거센 비난 여론을 견뎌왔던 축구협회다. '무시했다'는 표현이 알맞을 수도 있겠다. 문체부에게 감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서를 보낸 것만 놓고 봐도 한결같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축구협회에게 최종 선택권마저 쥐어졌으니 사실상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가장 유력한 결말은 홍 감독과 정 회장 모두 생존하는 결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방법은 간단하다. 문체부가 이달 말 협회에 전달할 예정인 시정안을 협회가 적극 수용하고,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규정‧절차를 위반한 사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 된다.
이 경우 협회에 이들의 사퇴를 요구할 명분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 선택권이 협회에 있는 상황에서 문체부 요구를 받아들이고 잘못을 인정한 데다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다면 당장 이들을 끌어내릴 합법적 방도가 없다.
여기에 오는 10일과 15일로 예정된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A매치 2연전도 협회에겐 좋은 무기다. 이번 2연전서 긍정적인 경기력과 결과까지 모두 가져온다면 이를 명분으로 삼을 것이 자명하다.
2연전 첫 상대가 요르단이다. 요르단은 지난 카타르 아시안컵서 한국에게 2패를 안겨준 끝에 4강에서 탈락 수모를 겪게 한 팀이다. 그만큼 요르단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승리를 따낸다면 홍 감독에 대한 여론도 뒤엎일 수 있다는 계산을 협회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과 정 회장 중 한 명만 생존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상황이 어렵다면 한 명이 희생해 다른 한 명이라도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총대를 메는 방법이다. 이 경우 희생양은 홍 감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모든 책임은 회장인 저에게 있으니 제가 물러나겠다'며 정 회장이 사퇴하고 마무리 짓는 그림이 가장 익숙하다. 하지만 정 회장이 그럴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은 팬들 모두가 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홍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 역시 문제가 크다. 이미 5개월간 공석으로 남겨놨던 국가대표 감독 자리를 이제야 채웠는데, 또다시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인해 전력강화위원회 등 협회 조직 시스템은 현재 거의 붕괴된 상태다. 새 감독 선임 작업을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 회장이 희생양이 되는 시나리오는 어떨까. 사실 팬들 입장에선 차라리 이 편이 낫다. 감독과 달리 축구협회장은 '내쫓는(?)' 것이 쉽지 않은 자리다.
실제 정 회장은 현재 상황 속에서도 4연임을 내다보는 중이다. 당장 축구협회장 자리가 공석이라고 해서 월드컵 일정을 치르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일단 최종 감사는 이달 말 열린다. 협회가 계속해서 이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최종 감사에선 무효화로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팬들은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이들의 처분이 결정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적어도 팬들 입장에서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정 회장과 홍 감독의 동반 사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