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포옛‧와그너 등 모두 무산…이임생 "홍 감독, 이들보다 뛰어나"
틀만 끼워 맞춘 '구식 라볼피아나' 전술…국제무대 경쟁력도 '글쎄'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 ⓒ대한축구협회 공식 SNS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 ⓒ대한축구협회 공식 SNS

민주신문=최경서 기자|한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던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자리에 앉을 새 주인이 드디어 결정됐다. 홍명보 전 울산 현대 감독이 그 대상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5개월 만의 선임이다.

기다렸던 정식 감독이 정해졌지만 국내 팬들 반응은 분노로 가득 찼다. 믿을 만한 외국인 감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이 외국인 감독보다 뛰어나다고 설명했지만 결국 화만 부추긴 셈이 됐다.


북중미월드컵에 아시안컵까지

대한축구협회(KFA)는 최근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전 울산 현대 감독을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오는 2027년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 기간까지다. 우선 2026 북중미월드컵 이후 중간 점검한 뒤 아시안컵까지 동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는 홍명보 감독을 선임한 사유로 총 8가지를 꼽았다. 홍 감독의 장점과 축구협회의 방향성, 현실적인 상황 등을 고려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빌드업 등 전술적 측면 ▲원팀을 만드는 리더십 ▲연령별 대표팀과 연속성 ▲감독으로서 성과 ▲현재 촉박한 대표팀 일정 ▲대표팀 지도 경험 ▲외국 지도자의 철학을 입힐 시간적 여유 부족▲ 외국 지도자의 국내 체류 문제 등이다.

특히 이 이사는 100명 안팎의 외국인 감독을 검토했지만 홍 감독이 이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 홍 감독은 울산에서 K리그1 2연패, AFC 챔피언스리그 4강 등 굵직한 업적들을 쌓은 바 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선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선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이사는 "데이터를 근거로 울산이 K리그에서 기회 창출, 득점, 빌드업, 압박 강도에서 모두 1위였다"며 "활동량은 10위였지만, 효과적으로 뛰면서 경기를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감독은 이전 A대표팀 U-23 대표팀, U-20 대표팀 지도자로서의 경험과 협회 전무로서 기술, 행정 분야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며 "이런 부분들이 앞으로 KFA의 철학, 각급 연령별 대표과 연속성 그리고 연계성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외국인 감독 후보자들이 유럽 빅리그 경험이 있고 자신들의 확고한 철학이 있는 것은 존중하지만 홍 감독보다 더 뚜렷한 성과가 있다고 판단하긴 어려웠다"며 "저의 평가와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홍명보호에 많은 사랑과 격려,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무능함의 연속 'KFA'

사실 홍명보 감독 선임이 국내 팬들에게 있어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단순히 홍 감독의 역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뿐만은 아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축구협회가 보여준 행보 때문이 가장 크다.

KFA는 지난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의 전례 없는 졸전을 이유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당초 3월 이내 후임 감독 선임을 약속했으나 결국 실패해 올림픽대표팀을 이끌던 황선홍 감독을 소방수로 불러야만 했다.

황 감독을 임시감독으로 선임한 결과는 결국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라는 역대급 참사로 이어졌다. 축구협회의 무능한 일처리에 잘 하고 있던 올림픽대표팀만 불명예를 쓰게 됐다는 점에서 팬들은 분노했다.

이후 KFA는 또다시 5월 내 정식감독 선임을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당시 제시 마치 감독 선임에 상당히 근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은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한국축구에 찰떡인 감독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무산이었다. 당시 제시 마치 감독은 한국대표팀 감독직에 상당히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축구협회의 무능함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됐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됐던 제시 마치 감독. ⓒ뉴시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됐던 제시 마치 감독. ⓒ뉴시스

당시 제시 마치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떤 플랜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그래픽으로 제작해서 제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도 받은 상태였지만 한국이 아니면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도 전해진다.

결국 그러는 사이 월드컵 아시아예선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또다시 임시감독을 앉혀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때는 김도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예선 2경기는 무사히 잘 치렀지만 축구협회를 향한 비난은 본격적으로 거세졌다.

이후에도 은근슬쩍 김도훈 감독을 정식감독으로 앉히려는 움직임을 보이는가 하면 이렇다 할 새 후보군도 나타나지 않는 등 연일 답답한 행보로 일관했다. 이런 와중에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의 '클롭급 감독' 발언 등이 겹치면서 국내 축구계는 혼비백산이 됐다.

축구 팬들이 기다린 시간만 5개월이다. 이 기간 해외에 망신까지 당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 5개월이라는 시간은 국내 팬들과 한국 축구에 큰 상처로 남게 됐다. 결과적으로 자신만만했던 외국인 감독도 데려오지 못한 것이다.


정말 외국 감독보다 뛰어날까

이임생 이사는 홍명보 감독이 후보로 언급됐던 외국인 감독들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후보로 지목되던 외국인 감독들 중에선 귀네슈, 데이비드 모예스, 그레이엄 포터와 같은 명장급 감독은 물론 제시 마치, 거스 포옛, 데이비드 와그너 등 굵직한 이름들도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아한 자신감이다.

특히 홍 감독이 빌드업 시 라볼피아나와 비대칭 스리백 형태로 운영한다는 점을 높게 샀다. 라볼피아나는 현대축구에서 가장 유행하던 전술이다. 최근 들어선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비대칭 스리백 형태로 변화됐다.

라볼피아나는 양쪽 풀백을 높은 위치로 올리고, 투볼란치 중 한 명을 수비지역으로 내려 스리백 형태를 갖추는 전술을 말한다. 상대적으로 공격 지역에 많은 숫자를 투입할 수 있어 밀집 수비를 파괴하는 데에 적합하다.

하지만 라볼피아나를 사용한다는 점만으로 언급됐던 명장급 감독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 홍 감독이 이끌던 울산 현대를 보면 전술의 디테일이 떨어진다. 틀만 끼워 맞췄다고 봐도 무방하다.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라볼피아나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전술이다. 감독은 물론 선수 모두가 전술을 어느 정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기본은 할 수 있는 정도다. 냉정하게 홍명보 감독과 울산 현대 선수들은 이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K리그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 5대 리그 내 웬만한 강팀들도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실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끄는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만 봐도 그렇다. 전술이 팀 선수들과 맞지 않아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대표팀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라볼피아나를 구사하기 위해선 수준급 양쪽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국제 무대 수준에서 좌우 측면을 흔들어 줄 수 있을 만한 경쟁력을 가진 풀백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의 울산 현대 감독 시절 모습. ⓒ뉴시스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의 울산 현대 감독 시절 모습. ⓒ뉴시스

수비형 미드필더도 마찬가지다. 기성용 은퇴 이후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선수가 없다. 그나마 정우영이 있지만, 기성용 수준의 롱킥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는 아니다.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이다. 대표팀에서 활약할 시간이 길게 남지도 않았다.

전술의 틀만 끼워 맞추는 것은 쉽다. 홍명보 감독의 전술이 그렇다. 라볼피아나를 적용했지만 디테일이 크게 떨어진다. 라볼피아나는 선수들 간 스위칭 등 유기적인 움직임이 상당히 중요하다. '더미런'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날 경기력이 좌우된다.

더미런은 사전적 의미로 '미끼 역할을 하며 달린다'는 말이다. 축구에선 오프더볼 움직임으로 상대 선수를 끌어내 공간을 창출하는 행위 등으로 사용된다. 공격에 많은 숫자를 투입하는 만큼 얼마나 공간을 잘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울산 현대 경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 양쪽 풀백이 높게 위치하긴 하는데, 선수들 간 유기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다시피 한다. 결국 상대에게 양쪽 측면을 내주는 장면이 수차례 연출되기도 한다.

실제 일본 국적의 울산 현대 소속 아타루는 과거 한 일본 매체와 인터뷰에서 울산의 축구는 준비된 플랜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술의 큰 틀만 존재할 뿐 디테일하게 준비된 것은 없기에 선수들끼리 자율적으로 맞추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제 한국축구 대표팀 감독은 홍명보 감독으로 정해졌다. 정몽규 축구협회장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선은 믿고 응원해야 한다. 다만 홍명보 감독 선임마저 결국 실패로 굳어진다면 그땐 정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 확실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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