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라이프치히‧리즈 출신…4-2-2-2 포메이션 ‘닥공’ 전술
대표팀 특성상 기량 극대화 가능…협상의 ‘Key’는 고액 연봉 조율
민주신문=최경서 기자|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공석으로 남아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후보가 2명으로 좁혀진 모습이다. 제시 마치 감독과 세아브라 감독이 그 대상이다. 다만 세아브라 감독은 제시 마치 감독과 협상이 틀어질 경우를 대비한 2순위로 여겨진다.
두 감독은 서로 비슷한 면이 많다. 다만 팬들 사이에서 세아브라 감독보다는 제시 마치 감독을 반기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는 최근 비공개회의를 열고 대표팀 감독 후보군을 압축했다. 5월 내 선임 작업을 마치겠다고 선언한 만큼 사실상 최종 후보로 봐도 무방한 셈이다.
후보에는 제시 마치 감독과 세아브라 감독 외 브루노 라즈‧에르베 르나르 감독 등도 속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간상 단계별 협상이 아닌 전체 후보군에 대한 동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유력한 1순위 후보는 제시 마치 감독이다. 제시 마치는 과거 뉴욕 레드불스에서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잘츠부르크와 라이프치히를 거쳐 리즈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았던 감독이다.
잘츠부르크에선 한국대표팀 공격수인 황희찬(울버햄튼)과 홀란(맨체스터 시티), 미나미노(AS모나코)로 이어지는 쓰리톱을 앞세워 유럽 무대에서 큰 임팩트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와 리즈에선 앞선 팀들에서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경질 당했다. 현재는 무직 상태다.
극단적인 공격축구
제시 마치 감독은 극단적인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리즈유나이티드 부임 당시만 봐도 전임 감독이 공격축구의 대가인 비엘사 감독이었다. 비엘사 감독의 공격축구를 유지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선임 배경이었다.
제시 마치 감독이 주로 사용하는 포메이션 역시 공격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4-2-2-2 포메이션이다. 기존 4-4-2 포메이션의 변형인 ‘다이아몬드 4-4-2’ 포메이션에서 또 한번 변형된 전형이다.
4-2-2-2 포메이션은 공격 극대화 포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9번 스트라이커가 강요되지 않는다. 대신 특이한 부분은 포백과 3선 미드필더를 제외한 공격 지역 4명의 선수가 전부 공격수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최전방 2명과 2선 미드필더 2명이 적극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때문에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유무가 중요해진다. 한국대표팀에 비춰보면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등이 소화할 수 있다.
해당 포메이션을 사용한다면 2선 자원에 집중 포화돼 있는 한국대표팀 특성상 여러 자원을 골고루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즉, 스쿼드에 깊이가 더해지는 이른바 ‘더블 스쿼드’ 구축이 가능해진다는 얘기가 된다.
또 다른 특징은 정통 수비형 미드필더조차 기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선 미드필더 2명 역시 공격 성향이 짙은 중앙 미드필더를 기용한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강도 높게 해야 하는 ‘박스 투 박스’ 롤을 맡기 때문에 왕성한 활동량이 요구된다.
한국대표팀은 황인범, 이재성, 백승호, 홍현석 등 활동량이 높은 중앙 미드필더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반면 이렇다 할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 역시 제시 마치 감독에겐 좋은 환경인 셈이다.
제시 마치 감독의 전술은 4-2-2-2 포메이션에서 완성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극단적인 공격전술을 구사하는 만큼 선수들의 저돌적인 움직임을 선호하기도 한다. 황희찬이 제시 마치 감독에게 중용 받았던 이유다.
기본적으로 제시 마치 감독의 전술은 공격 전개 시 포백을 제외한 6명의 선수가 육각형 모향으로 좁게 모여 블록을 형성해 끊임없이 전방압박을 가한다. 상대의 볼을 따내거나 세컨볼을 노리는 방식이다. 선수들의 저돌적인 움직임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공격권을 얻어낸 순간 블록을 형성했던 선수들은 순식간에 스위칭 플레이를 가져간다. 한명이 오프 더 볼로 상대 수비를 끌어들이고, 다른 한 명이 그 빈 공간에 침투하거나 드리블 하는 그림이다. 리버풀의 클롭 감독이 구사하는 ‘게겐 프레싱’ 전술과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기대해볼 만한 부분은 현재 국내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승우(수원FC)의 발탁이다. 이승우의 플레이 스타일은 제시 마치 감독이 구사하는 전술에 황희찬 만큼 잘 맞을 공산이 크다. 최근 잉글랜드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준호(스토크시티)도 발탁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3선에 수비형 미드필더를 기용하지 않는 이유는 수비라인을 최대한 높게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포백과 3선 미드필더 사이 간격을 상당히 타이트하게 가져간다. 수비 시에는 사실상 포백이 아닌 ‘식스백’ 전형이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극단적인 공격축구를 통해 많은 득점을 쌓는 만큼 실점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높은 수비라인으로 인해 상대에게 뒷공간을 자주 허용한다는 것이 약점이다.
실제 제시 마치 감독은 뉴옥 레드불스 시절 151경기에서 무려 264득점을 기록했는데, 실점도 182점이나 된다. 최소 경기당 1골 이상은 내줬다는 계산이 된다. 잘츠부르크에선 94경기 290득점 113실점으로 득점은 늘고 실점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다.
라이프치히(20경기 38득점 31실점)와 리즈유나이티드(37경기 52득점 60실점)에선 다소 저조한 득점에 비해 많은 실점으로 성적 부진을 이어간 끝에 결국 경질됐다.
이처럼 제시 마치 감독 전술은 기본적으로 탄탄한 수비가 뒷받침 돼야 구사할 수 있는 전술이다. 하지만 한국대표팀은 수비가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라는 월드클래스 수비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김민재와 김문환(알두하일)을 제외하면 아직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없다.
때문에 김지수(브렌트포드), 이한범(미트윌란) 등 어린 선수들이 기용될 가능성이 있다. 두 선수 모두 우수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빠른 스피드가 강점이다. 수비력도 준수한 편이다. 제시 마치 감독 전술에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
인재 발굴은 ‘전문’
대표팀 감독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단연 인재 발굴 능력이다. 대표팀은 클럽팀처럼 외부에서 선수를 영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선수들 중에서 대표팀에 맞는 인재를 발굴해내야 한다.
이 부분은 제시 마치 감독의 최대 강점이기도 하다. 실제 제시 마치 감독은 뉴욕 레드블스‧잘츠부르크‧라이프치히로 이어지는 이른바 ‘레드불 산하’ 팀에 몸을 담는 동안 수많은 인재를 발굴해왔다.
대표적으로 잘츠부르크 시절 황희찬, 홀란, 미나미노를 비롯해 나비 케이타(브레멘), 소보슬라이(리버풀), 사디오 마네(알 나스르) 등이 있다. 모두 제시 마치 감독 지도를 받기 전까진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이었다.
국내에도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다. 인재 발굴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한국축구 발전에 득이 된다. 만약 제시 마치 감독이 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고, 수년 뒤 떠난다고 해도 선수는 남기 때문이다.
한국축구는 그간 감독이 바뀔 때마다 팀컬러도 달라졌다. 확실한 한국만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제시 마치 감독의 전술이 파울루 벤투 전 한국대표팀 감독 전술의 업그레이드 버전 격이라는 것이다.
아직 한국대표팀에는 벤투 감독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선수들도 아직은 벤투 감독 시스템에 익숙한 상태다. 제시 마치 감독이 이를 확실히 한국의 팀컬러로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이미 제시 마치 감독은 레드불 산하 팀들을 거치며 체계적인 시스템에 대해 검증됐다. 제시 마치 감독의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을 한국축구의 팀컬러로 각인시킨다면 유소년 육성은 물론 넓게 보면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도 수월해지게 된다.
관건은 과연 대한축구협회가 제시 마치 감독의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느냐다. 제시 마치 감독은 라이프치히와 리즈에서 각각 225만 유로(약 33억3000만 원), 350만 파운드(약 60억6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는 한국대표팀 감독 역사상 최대 연봉이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 32개 출전국 대표팀 사령탑을 기준으로 봐도 무려 9위에 해당하는 고액 연봉이다.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연봉은 130만 유로(약 19억2000만 원) 선이었다.
몸값만 봐선 부임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최선을 다했지만 협상이 결렬돼 급하게 세아브라 감독 선임을 결정했다’는 늘 그랬듯 뻔한 시나리오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현재 시점으로 보나 장기적으로 보나, 제시 마치 감독은 한국축구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