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에스프리, 페라리 몬디알 T 카브리올레, 재규어 Mark X
시대 풍미하던 럭셔리·스포츠카, 영화 속에서도 드림카로 등장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영화 <비긴 어게인> 포스터 ⓒ 판씨네마
영화 <비긴 어게인> 포스터 ⓒ 판씨네마

영화 속 한 장면이 뇌리에 한 번 박히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낭만적인 분위기는 기억에 더욱 선명하게 남는다.

추억을 먹고 사는 이들의 로맨스에는 반드시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특별한 장소, 음악, 물건 등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그 매개체가 그 영화 속 그 장면을 언제든지 꺼내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기자의 경우는 평소에 가지고 싶어라 했던 드림카가 그런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심리는 아마도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이라는 콘셉트에서부터 유래된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엔 오래된 세 편의 로맨틱 영화 속에서 지금까지도 낭만의 아이콘으로 남아있는 차들을 되짚어 봤다.

영화 <프리티우먼>에서의 로터스 에스프리 ⓒ 유튜브 캡처
영화 <프리티우먼>에서의 로터스 에스프리 ⓒ 유튜브 캡처

◇  <프리티우먼> 로터스 에스프리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을 실사판으로 옮겨놓은 영화가 바로 <프리티우먼>이지 않은가.

1990년 개봉한 이 영화는 세기의 미남 배우 리차드 기어(성공한 사업가 에드워드 역)와 줄리아 로버츠(콜걸 비비안 역)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영화 내용에서 어울리지 않는 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엮어준 매개체가 있다. 바로 에드워드가 타고 나온 백마, 1989년식 로터스 ‘에스프리’다.

영화 속 로터스 에스프리는 1976년 처음 탄생한 ‘에스프리’의 네 번째 모델이다. 당시 영국 차들은 대체로 세대별 구분을 ‘시리즈(Series)’로 했었다.

첫 번째 에스프리가 ‘S1’이라 불리며 나왔고, ‘S2’가 1978년에 새롭게 등장했다. ‘S3’는 터보 에스프리라는 이름으로 1982년에 나왔고, 영화 속에 등장한 에스프리는 4세대 모델로 종종 ‘X180’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X180은 3세대의 것인 타입 910 터보차저 엔진을 개선해 냉각 효율을 높인 차지쿨러 타입 910S 유닛을 탑재했는데 최고출력 268마력을 뿜어냈다.

오버부스터 시에는 284마력의 출력을 내기도 했는데, 경량 차체와 함께 시트로엥에서 공수해오던 5단, 르노에서 가져오던 5단 수동 변속기를 통해 제로백 4초대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로터스 에스프리는 확실히 돈도 많고 잘 생긴 사업가의 백마로 손색이 없는 차이긴 했다.

하지만 사실 영화 속 이 차는 주인공의 것이 아니었을뿐더러 비즈니스 여행 중이었던 에드워드의 운전은 서툴렀고, 길을 잘 아는 비비안이 이 차를 더 잘 몰았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로터스 에스프리는 비비안의 드림카였다.

콜걸이라는 역할에서 영화 <노팅힐>의 발랄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줄리아 로버츠와 스포츠카로 탄생해 로맨틱한 영화의 낭만 매개체로 이미지를 달리한 로터스 에스프리가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이 차가 007 영화 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잠수정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면 낭만이 조금 사그라들려나?

또 하나, 이 차는 엽기적인 테슬라 사이버트럭의 디자인에도 영감을 불어넣어 줬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영화 <여인의 향기> 속 페라리 몬디알 T 카브리올레 ⓒ 유튜브 캡처
영화 <여인의 향기> 속 페라리 몬디알 T 카브리올레 ⓒ 유튜브 캡처

◇ <여인의 향기> 페라리 몬디알 T 카브리올레

<여인의 향기>는 본지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영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서 낭만과 자동차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단지 눈먼 주인공이 이 시대 최고로 꼽히는 자동차를 몰았다는 것 밖에.

로맨스는 멀리에 있지 않았다. 꿈꾸던 일을 하게 되면 그게 낭만이 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페라리 몬디알 T 카브리올레는 주인공 알 파치노(프랭크 슬레이드 역)의 드림카이자, 알 파치노와 그의 손발이 돼 준 알바생 크리스 오도넬(찰리 역)과의 브로맨스를 키워낸 매개체였다.

페라리 몬디알 T 카브리올레는 당시 가장 빠른 스포츠카 중 한 대로 팝업 헤드램프와 뚜껑이 열리는 오픈카 타입이었다. 역시 낭만에는 오픈카가 제격이다.

탱고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의 이 차는 브랜드 명성과 더불어 넘사벽의 가격대를 자랑했고, 누구나 한 번쯤 정복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지르는 데에도 재주가 있었다.

품격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출신 몬디알 T는 V8 3.4리터 미드 엔진으로 최고출력 270마력을 내뿜으며 제로백 6초대를 기록했다.

앞서 등장했던 신사의 나라 영국 출신 로터스 에스프리와는 조금 다른 성격으로 보다 작은 엔진이지만 조금 더 빨리 달렸다. 하지만, 차체의 크기와 무게 등을 따지고 본다면 직접 비교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두 차가 동시대를 풍미하던 스포츠카임에는 분명하다. 탄생 연도도 비슷하니 말이다.

정확히 페라리 몬디알 T가 대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제작사 쪽에서 페라리에 PPL을 제안했으나 영화에 ‘콜걸’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말이 사실이면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긴데, 동경하던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만약 프랭크가 페라리가 아니라 로터스를 타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차는 상징적 의미였을 뿐 영화만큼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게다가 에스프리 모델은 오픈탑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몬디알 T 카브리올레의 대안이 될 수도 없었을 터다.

영화 <비긴 어게인> 속 재규어 Mark X ⓒ 유튜브 캡처
영화 <비긴 어게인> 속 재규어 Mark X ⓒ 유튜브 캡처

◇ <비긴 어게인> 재규어 Mark X(420G)

<비긴 어게인>은 실연과 좌절을 겪는 두 남녀, 다른 두 세대가 만나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영화다.

결말에 건더기가 남는 영화지만 울적한 날에 훌륭한 사운드트랙을 즐기며 낭만을 곱씹어 보는 데에는 제격이다.

이 영화에서 서로의 로맨스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음악이다. 마룬 파이브로 잘 알려진 애덤 리바인이 주인공의 전 남자친구로 등장해 화제를 모은 영화이기도 하며, <원스>와 비슷한 분위기로 가끔 사운드트랙이 좋은 작품에 꼽히기도 한다.

그 이유는 두 영화가 모두 음악에 조예가 깊은 존 카니 감독의 손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싱어송라이터 ‘그레타’를 연기한 슈퍼 모델 키이라 나이틀리와 우리의 영원한 ‘헐크’ 마크 러팔로(댄 분)다.

이 영화에서 자동차와 연관된 로맨스는 포스터만 봐도 알아볼 수 있듯 재규어 Mark X(또는 420G으로도 불린다)이다.

잘 나가던 음반 제작사 대표였던 댄은 클래식카를 좋아하는 중년의 아저씨였으며, 그의 인물적 배경을 한방에 설명하는 차로 등장했다. 한때 성공했지만 몰락해가는, 그래도 한 번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전설적인 클래식카만큼 좋은 소재가 있을까?

댄은 영화 내내 덥수룩한 머리에 수염 한 번 자르지 않는 지저분한 이미지이며, 그레타에게 함께 작업하자고 집적댈 때엔 변태 스토커같이 비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모두 감당했던 것이 바로 이 차다. 재규어 Mark X는 바로 그런 보증수표와도 같은 존재다. 그래서 댄의 드림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재규어 Mark X는 1961년에 탄생한 전형적인 클래식카다. 실제로도 수집가들이나 손에 쥘 수 있는, 현재 경매가로 수억 원을 호가하는 값비싼 차다.

3.8리터, 4.2리터 엔진을 탑재했고 앞 엔진, 뒷바퀴굴림, 4도어 레이아웃을 갖춘 풀사이즈 럭셔리 세단으로 구분됐는데, 당시에도 아무나 살 수 있는 차는 아니었다.

당시에도 5m가 넘는 차체 길이는 그 자체만으로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재규어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지던 유려한 곡선 실루엣과 네 개의 헤드램프는 지금까지도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전설적인 디자인으로 남아 있다.

이 차는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재규어 브랜드의 플래그십 XJ 모델로 이어진다.

예전의 재규어는 브랜드 자체가 고가의 고급 이미지였다.

재규어가 등장하는 영국 영화들을 보면 영국인들이 이 브랜드를 얼마나 아꼈는지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사이먼 페그 주연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 나온 1986년식 XJ(소브린 V12라고도 불림)가 좋은 예다.

주인공 숀의 계부 필립(빌 나이 분)이 좀비가 돼가면서도 차를 아끼던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긴 하지만 XJ 라인업은 아직 건재하다. 게다가 XJ는 이제 곧 전동화로 또 한 번의 진화를 예고하고 있다.

디자인은 둘째치고라도 시대를 이끌었던 재규어의 내연기관차의 기술력을 어떻게 바꿔나갈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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