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의 버팀목 되고싶다"

▲ 영등포역 파출소 노숙팀장을 맡고 있는 정순태 경위
국민을 위한 경찰 본보기…노숙인들 그를 “친구야” “대부님”으로 불러

[민주신문=강신복 편집위원] 필자가 지난 8월 25일 11시 50분경 운전 중 모 방송 ‘이 사람이 사는 세상’(진행 류수민)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방송 내용은 현직 경찰이 영등포역 일대 노숙자들을 가족처럼 보살핀다는 내용이었다. 참으로 신선했고 감동적이었다. 그 동안 잊고 산 시간들이 되돌아왔다. 서울역뿐만 아니라 영등포역 3층 중앙통로를 늦은 시간에 지날 때면 남루한 옷차림으로 맨바닥에 종이 박스를 깔고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아팠는데 그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추운 겨울이면 더 더욱 가슴 시리고 안타까웠는데 이번 기회에 노숙자들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함으로써 그들 역시 우리이웃이고 우리가 함께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야할 국민들이고 이웃이고 가족임을 재인식하기 위해서다.  
그 누구도 그들 앞에 나서서 선뜻 도움의 손길을 주기는커녕, 오랜 노숙으로 인해 나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전부였던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에 필자가 만난 미담의 주인공은 그들을 친가족 이상으로 보살피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거리의 천사’라고나 할까, 만인에게 귀감이 되는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경찰공무원이 있어 만났다.
     

쪽방촌을 순찰하고 있는 정순태 팀장.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목수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재활ㆍ 재기할 수 있는 노숙인들이 의외로 많다”

 그 미담의 주인공은 바로 영등포경찰서 영등포역파출소 소속 노숙팀장 정순태 경위다. 올 8월 23일로 경찰 재직 만 28년을 맞은 정 경위를 만나기 위해 영등포역파출소를 찾았다. 마침 점심때라 정 경위는 식사를 마친 후 책상에 앉아 사무정리를 하고 있었다.
파출소 내에는 4∼5명의 경찰들이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유독 사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단박에 정순태 경위, 노숙팀장임을 직감했다.
 필자가 ‘노숙자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는 그간 언론보도에 대해 정 경위는 “그분들을 ‘노숙자’라고 부르면 싫어하기 때문에 ‘노숙인’으로 부른다”며 “여기 영등포역파출소 관내에 노숙인들이 대략 5∼600명 정도 있는데 그분들의 사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고 털어놓았다.
“아들 사업보증으로 집을 날린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 건설업자, PC방, 식당, 다방을 운영한 사람도 있고 가족에게 버림을 받은 지체장애인도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발 벗고 나서면 재활, 재기할 수 있는 노숙인들이 의외로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언제부터 노숙인들을 돌볼았냐”는 물음에 정 경위는 “지난 2009년 2월부터 순찰3팀에 근무하다가 2010년 6월 20일경부터 노숙인 전담 근무를 혼자 하다가 지난 2014년 1월에 새로 부임한 김상철 서장이 노숙인들의 안전 확보 차원에서 2월부터 조직을 확대하여 노숙팀을 구성하고 본인이 팀장을 맡아 운영되고 있으며 4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경위는 “다행히 관내에는 ‘보현의 집’(불교), ‘햇살보금자리’(개인), ‘희망나무’(시민단체) 등 6개 쉼터가 운영되면서 600여명의 노숙인들에게 무료 식사는 물론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쉼터의 불편함(통제, 규칙 등)을 이유로 100여명 정도는 아직도 길거리 노숙을 하고 있는 실정인데 그분들에게 안전사고 등이 우려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쪽방촌 골목은 물론 영등포역 주변, 영등포공원 등 지역을 순찰하며 노숙인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진심 담긴 ‘스킨십’…노숙인들도 마음 열어

 필자는 노숙인뿐만 아니라 쪽방촌이 궁금하여 정 경위에게 “함께 돌아볼 수 있느냐”고 묻자 흔쾌히 승낙을 하면서 앞장서 안내를 해 주었다. 영등포역 쪽방을 가는 도중에 길가에는 한 무리 노숙인들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중 정 경위를 보자 벌떡 일어나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중에는 “반장님“이라고 부르는 노숙인도 있었고 “대부님“, “야, 친구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출소 옆길로 들어서자 좁은 골목에는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마침 서울시에서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목수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쪽방촌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나와 “반장님 오셨냐”며 손도 잡아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약 30분 동안 쪽방촌을 돌면서 정 경위의 인기를 실감했다. 그 만큼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에게 정 경위는 없어서는 안 될 수호천사처럼 그 동안 많은 위안과 도움의 손길을 보낸 증표들이었다. 구세군 같았다.
진심이 담긴 스킨십(skinship)을 통한 다정다감한 이웃, 혈육 이상으로 보살피고 도움을 주니 자연 친구처럼, 형제처럼 정 경위를 따르는 것 이다. 쪽방촌에서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을 위한 무료 목욕봉사를 하고 있는 오재석(54·서영사랑나눔의복지회) 씨는 그를  “참 고맙고 좋으신 분이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노숙인은 “노 반장이 오고 나서 쪽방촌과 영등포역 노숙인들이 한층 청결해 지고 질서가 잡히고 소란이 줄어들었다”고 귀띔을 해 주었다. 
  정 경위는 쪽방촌 골목 내에 있는 벽보를 손으로 가리키며 ‘포돌이정거장’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2014년 1월에 새로 부임해 온 김상철 서장이 관내 각 지역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 지역과 쪽방촌에 ‘포돌이정거장’을 만들어 지역 순찰을 강화하고 ‘알림판’에 ‘빈집털이 주의보 발령’ 등을 담은 소식지는 물론 주민의 소중한 의견을 청취하는 메모장을 인쇄하여 배포하고 있다. 이 메모장에는 ‘경찰관이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주십시오’ 문구와 ‘국민의 눈높이에서 일 하겠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김 서장의 각오를 알 수 있었다. 

 영등포 경찰서 앞에 세워진 인권나무.
지난 8월 25일 '폭음근절·좋은습관 영등포경찰, 안전하고 행복한 영등포구'를 표방하고 있는 영등포경찰서를 방문해 보니 다른 경찰서와 다른 곳이 눈에 띄었던 게 사실이다. 그 중 하나가 경찰서 건물 출입구 우측에 '청렴나무', 좌측에 '인권나무' 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그 나무 열매(노란색, 하늘색 동그라미 메모장)에 직원들의 '청렴의무'와 '인권신장'을 위한 각오를 제시함으로써 진정 국민을 위한 경찰의 모습을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한 신뢰를 보낸다.   
 인터뷰 말미에 ‘그간 보람된 일, 소망을 묻자’ 정 경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반밀링자격2급 자격으로 경찰 입문 전 공장에서 고단한 일을 해 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항상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을 보고 살자’의 좌우명처럼 낮은 자세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감싸고 봉사하며 노숙인들을 가족처럼 보듬고 재기 가능한 노숙인에게 일자리 제공, 지체장애인에게 가족을 찾아준 일이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결혼 21년을 맞은 아내가 신장병으로 인한 합병증과 백내장 등 긴 투병생활에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가슴이 아프다. 하루 속히 병이 호전되어 아이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가장 큰 소원이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정 경위는 오늘도 새벽 06시에 기상, 07시 30분에 사무실 도착, 한 시간 가량 회의와 업무준비를 한다. 이후 09시부터 21시까지 쪽방촌, 길거리 노숙인을 위해 14시 가량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구김살 없이 하루일과를 해맑은 미소로 노숙인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낮은 자세로 봉사한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 존경과 경외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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