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탑재로 퍼포먼스와 효율성 잡아
배터리에 실내 공간 양보, 안락하고 편안한 주행 돋보여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 쿠페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 쿠페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포르쉐의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는 카이엔을 타봤다. 디자인·성능·안락함·효율성 모든 걸 다 갖춘 ‘엄친아’다.

시승차는 포르쉐 같으면서도 포르쉐 같지 않은, 전동화 물을 마신 포르쉐다.

차량 가격은 1억2760만 원 플러스 알파. 가격부터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911로 굳어진 넘사벽의 브랜드 이미지가 한풀 꺾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평범한 회사원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욕심이 부르는 옵션으로 배보다 배꼽이 클 때도 있다.

다만, 길거리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차들과 동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카이엔 E-하이브리드 경쟁 모델은 메르세데스-벤츠 GLE 쿠페, BMW X6, 아우디 Q8, 레인지로버 스포츠, 렉서스 RX 등에서부터 넓게는 제네시스 GV80까지 포함한다. 웃돈을 살짝 걷어내면 모두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

이번 시승에서 무게를 두고 살펴봐야 할 부분은 일상생활에서 이 차가 얼마나 우리를 만족하게 해줄 수 있는지다. 비록 공급 물량 부족으로 대기가 길다는 불편한 현실이지마는 말이다.

◇ 다시 보는 포르쉐 하이브리드 매력

카이엔은 브랜드의 성공적인 근대사를 이끌어 가는 대표 모델이다. 카이엔이 없었다면 포르쉐는 극소수만을 타깃으로 하는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같은 고집스러운 드림카 반열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카이엔은 말 그대로 포르쉐의 구세주다. 카이엔은 지난해 국내에서만 3474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1억 원을 훌쩍 넘는 찻값에도 포르쉐 브랜드 전체 8431대의 40%를 넘어섰다. 브랜드 라인업에서 가격을 따지고 본다면 어쨌든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참고로 해외에서는 마칸이 더 인기가 있다. 조금 더 친근한 느낌이라서다.

카이엔 모델 라인업 중 오늘 시승차인 E-하이브리드 쿠페는 지난해 334대가 팔렸다.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린 트림은 ‘하이브리드’ 배지가 붙어 있지 않은 카이엔과 카이엔 쿠페다.

일반 모델의 판매량은 둘이 합해 2707대로 라인업에서 압도적이다. 하이브리드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모델에 고객이 몰리는 이유는 아마도 브랜드가 가진 정통성 때문이다. 역시 감성 드라이빙에는 오리지널 포르쉐를 선호한다는 의미.

하지만, 카이엔 하이브리드에서도 많은 매력 포인트가 있다. 가장 먼저 와닿는 부분은 연비다.

물론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디지털 계기반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연비 숫자는 운전자에게 묘한 성취감을 들게 한다. 시승에서 기록한 최고 연비는 14km/L를 넘길 정도였다.

그렇다고 퍼포먼스를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시승차에 얹힌 전기 모터의 힘은 3.0리터 V6 터보차저 엔진에 최고 136마력을 더한다.

총 시스템 출력은 462마력으로 기본형 카이엔보다 115마력이 더 높다. 최대토크 역시 기본형보다 25.5kg·m가 높은 71.4kg·m를 발휘한다.

물론 실용 퍼포먼스 구간에서는 기본형 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잠재력이 다르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원상 0.9초의 제로백 차이가 좋은 예다. 참고로 기본형 카이엔은 6.0초, 하이브리드 쿠페 모델은 제로백 5.1초를 끊는다.

기본 모델과 하이브리드의 시작 가격 차이는 고작 740만 원에 불과하다. 갈증을 부르는 옵션 선택은 소비자 몫이다.

◇ 고집스러운 브랜드 디자인

포르쉐를 보는 시선은 아직 낯설다. 포르쉐라는 이름만 대도 고성능 슈퍼카를, 비싼 911을 연상하는 이들이 많다.

여유가 생겨 1억 원 이상의 견적을 짰음에도 선뜻 구매 목록에 올린 차들은 프리미엄 독일 3사 라인업이 전부다. 가까운 지인의 이야기다.

911의 역사가 쌓아 올린 드림카 이미지가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을 수 있다. 제로백 0.1초 단축을 경험해보고 싶은 소수의 갈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이제 포르쉐는 카이엔을 통해 달라지고 있다. 더욱 대중적인 이미지로 말이다. 게다가 순수전기차 타이칸을 비롯해 하이브리드 버전들이 속속 등장하니 변화하는 포르쉐를 기대해볼 수도 있는 셈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포르쉐의 타임리스 디자인이 갖는 의미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카이엔의 디자인은 아직 특별함에 머물고 있다.

보통 타임리스 디자인을 추구하는 브랜드는 ‘럭셔리’를 녹여 넣는 경우가 많다. 마이바흐, 벤틀리, 레인지로버 등이 그러하다. 품질은 기본이고 서비스와 차별화를 핵심으로 둔다. 그리고 그 차별화는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에서 뽑아낸다.

이런 디자인 기준은 오래도록 극소수를 위한 차가 될 것인지 아니면, 꾸준히 변화의 노력을 보여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포르쉐는 확실히 벤츠와 BMW, 아우디, 렉서스 등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소비자 트렌드에 따라 변화해 왔던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카이엔은 첫 출시 이래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3세대를 거듭해왔다. 그동안의 변화를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벌써 꽤 시간이 흘렀지만, 카이엔에 대해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마칸과 카이엔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카이엔은 1세대부터 이미 실용성, 아니 편의성을 겸비한 나름의 디자인은 여러 타깃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여성 고객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 부분은 포르쉐 브랜드를 살렸다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키를 높인 911처럼, 때로는 파나메라처럼 날렵하고 옹골지며 탄탄해 보이는 모습이 카이엔만의 매력이다. 거기에 쿠페형 스타일은 더욱 날렵해보이며 세련된 이미지까지도 전달한다.

3세대 카이엔 E-하이브리드 쿠페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라면 형광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하이브리드 배지와 21인치 휠 안쪽에 보이는 같은 색 브레이크 캘리퍼 정도다.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 쿠페 인테리어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 쿠페 인테리어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 배터리에 양보한 실내 공간

우선 실내에 들어앉으면 시트 포지션은 날렵해 보이는 차의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 전방 시야 확보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만 사실 스포츠카의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포르쉐들과는 달리 승하차 시 뒷꿈치를 들어야 한다는 것에 어색함을 느낄 뿐이다.

스티어링 휠 뒤편으로 펼쳐진 공간은 다섯 개의 원으로 구성된 아날로그와 디지털 계기반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독특하고 깔끔한 구성이다. 가운데 가장 큰 원이 아날로그 계기반이다.

작은 원들은 다소 복잡해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꽤 많은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배터리 잔량 정보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변속기 레버가 있는 곳에 여러 가지 기능 버튼들이 터치식으로 마련돼 있다. 아우디의 것처럼 광택이 나는 이음새 없는 표면에 아이콘을 누르면 약간 진동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통적 무광의 물리적 버튼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본 편의를 위해 애플 카플레이는 무선으로 연결되지만, 핸드폰 충전을 위해서는 별도의 선이 필요하다. 옵션으로 제공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만약 된다면 콘솔박스 안쪽에 마련될 듯하다. 물론 이 부분은 곧 나오게 될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는 기본으로 제공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리어뷰 미러로 보는 후방 시야는 조금은 답답한 편이다. 하지만 쿠페형 타입이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최근 트렌드가 일반 해치백 SUV에서 쿠페형 SUV로 옮겨가고 있어서 대부분 이런 식이다. 대신, 욕심을 조금 낸다면 캐딜락이나 레인지로버에서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미러가 적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뒷좌석 공간의 부족함은 없다. 실제로 뒷좌석에 웬만한 어른이 타도 고개를 숙이고 있을 일은 없다. 2열은 풀 플랫으로 접혀 활용도가 높다. 포르쉐로 차박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 추가로 파노라믹 선루프는 기본으로 제공된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기본형 모델과 적재용량의 차이가 있다. 아마도 모터나 배터리가 차지하는 공간 때문일 것이다.

차체의 크기는 길이, 너비, 휠베이스가 모두 기본형 모델과 같지만 높이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40mm가 더 높은 데, 같은 이유에서다.

일반 모델은 기본적으로 592리터 트렁크 공간에 확장 시 1507리터를 확보한다. 반면, 하이브리드 모델은 각각 460리터에 1400리터를 채울 수 있다.

배터리에 양보한 부분은 적재용량뿐만 아니라 연료탱크도 있다. 물론 높아지는 연비로 만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15리터 차이는 적지 않아 보인다.

다만, ‘만땅’ 주유로 주행가능 거리는 하이브리드 쪽이 더 길다는 점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 쿠페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 쿠페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 숨어 있는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기본적으로 드라이빙 경험에서 포르쉐를 지적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누가 운전하든 그만큼 만족스러운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다.

다만, 프리미엄 3사 브랜드와 대단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주행에 진심인 운전자들에게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포르쉐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제로백을 측정하는 크로노 미터다.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기능을 얼마나 사용할까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911에서부터 다져진 강력한 퍼포먼스와 안정적인 핸들링은 카이엔에서도 변함이 없다. 카이엔 하이브리드는 모터의 힘이 더해져 한층 세련된 느낌을 전달한다. 모터가 만들어내는 가속 느낌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리를 빼고는 내연기관 엔진과 다르지 않다.

우선 가속과 핸들링은 매우 직관적이다. 소리 없이 출발하는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빠른 가속력을 자랑한다. 작지 않은 덩치로 민첩함은 아쉽지만, 코너를 제법 과감하게 공략해도 조향에는 전혀 부담이 없다.

포르쉐에는 PDCC(Porsch Dynamic Chassis Control)라는 일종의 자세 제어 장치가 옵션으로 제공되는 데 아마도 시승차에도 이 기능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이 옵션은 에어 서스펜션과 짝을 이뤄 선택할 것을 일부 전문가들은 권한다. 하지만 둘의 선택 가격은 1000만 원에 육박하는데, 차별화된 승차감의 대가는 크다.

작지 않은 차체 크기에도 불구하고 회전반경이 꽤 짧은 편이다. 왕복 4차선 도로 유턴 시에도 좀 더 과감해질 수 있다. 일상 운전에 편의를 더하는 점이다.

제동 성능 역시 충분하다.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다소 불편하다는 시승 후기도 있었지만, 주행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성향으로 보이며 개인적으로는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요철을 통과하는 매너는 프리미엄 라이벌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작지 않은 21인치 휠에도 불구하고 섀시 세팅을 고르게 잘 맞춰놓은 것으로 보인다. 광폭 타이어는 손끝에 무게감을 실지만 한편으로 넉넉한 안정감도 선사한다.

모터를 돌리든 엔진을 시동하든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에 불편함은 없다. 모드를 전환하는 시점도 큰 의식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카이엔은 여러 가지 주행 모드를 제공한다. 순수 전기 모드에서부터 하이브리드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모드까지 총 네 가지를 기본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센터페시아에 있는 12.3인치 터치스크린에서 차량 제어가 가능하지만, 스티어링 휠 칼럼에 혹처럼 달린 다이얼을 돌려서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각 모드는 스티어링 휠을 무게감 스로틀의 민감도 등에서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질주 본능을 자극하는 강력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만을 위한 911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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