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서 종합 모빌리티 산업 전환기 맞아 전동화, 모빌리티, 자율주행 등에 20조 투자
코로나19 역풍 판매 대수 급감 속 경영 능력 시험대 올라, 타개책ㆍ품질 개선 '고심 중'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올해 1월 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 대강당에서 그룹 신년인사회를 갖고 있다. 사진=2020년 현대차그룹 신년인사회 유튜브 캡처.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재계가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넘어 기업책임경영(Responsible Business Conduct, RBC)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율규제를 통한 자발적 정도(正道)경영의 길을 걷겠다는 의미다. 기업이 경영활동으로 돈 잘 벌어 성장하면 끝난 것이 아닌 경영활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고, 그것이 발생하면 이를 자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까지 포함한 경영활동을 해야 하는 시대인 것. 이런 점으로 볼 때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경영학회 등이 2년 전 경주에서 개최한 경영관련학회 통합학술대회에서 기업책임경영의 확산 업무협약을 맺은 것은 재계의 중요한 변화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아직도 반(反)기업 정서는 팽배한 분위기다. 20대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폐기됐던 재벌개혁 성격을 띤 공정경제 3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발의되는 등 상황은 녹록치 않다. 국내 대기업 입장에서는 숙명처럼 여기고,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처지다. 이에 삼성과 현대차, SK와 LG, 롯데 등 국내 5대 그룹의 책임경영의 현 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2009년 8월 기아자동차 사장에서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한지 9년 만에 재계 2위 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에 오른 3세대 경영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5월 그룹 동일인으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지정했지만, 2017년 이후 경영일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올해는 현대차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재계 서열 2위 현대차그룹은 아직까지 정몽구 회장이 총수지만 사실상 정 회장의 장남인 정 수석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2년 전 정 수석부회장이 승진하면서 경영권 승계가 끝났다는 평가다. 정 회장이 현대차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정의선 시대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한국 재계의 거목이라 평가받는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로, 현대家 3세 경영인이다. 그의 부친은 정 명예회장의 둘째로, 첫째인 정몽필 전 현대제철 사장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자 사실상 현대가 장남으로 집안을 이끌어왔다. 정 수석부회장은 1994년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과장으로 입사하면서 그룹에 발을 내딛었고, 이후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 거쳐 1999년 말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4년 만에 현대차 부사장에 오른 정 수석부회장은 2005년 기아차로 전보와 동시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2009년에는 실적 개선 공(公)으로 기아차 사장에서 현대차 부회장으로 올라 명실상부 그룹 경영권 후계자로 섰다. 현재 현대ㆍ기아차의 해외법인장 회의와 시무식 등을 모두 주관하고 있다.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비전 이미지. 사진=현대차

그룹 좌우될 패러다임 직면

현대차는 그룹 운명이 좌우될 주력 산업인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맞아 정 수석 부회장을 중심으로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현대차가 지난해 공개한 ‘2025전략’을 보면 자동차산업이 기존 제조업에서 종합 모빌리티 산업으로 전환되는 대변혁기 대비에 나선 모습이다.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6년간 약 61조원을 투자하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25전략은 기존 시업 역량 강화와 전동화, 모빌리티, 자율주행 등 3가지 미래기술에 관해 약 20조원을 투자한다는 게 핵심이다.

향후 투자될 전체 투입 비용 중 3할이 미래차 시장 준비다. 구체적으로 보면 모빌리티와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등 신사업에 7조8000억원, 자율주행과 커넥티비티 등 자율주행에 2조5000억원, 전기차 생산 및 인프라 구축 등 전동화에 9조7000억원이다. 매년 10조원씩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3조원 이상이 매년 기술 확보에 쓰이는 셈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25년까지 배터리전기차 56만대, 수소전기차 11만대 등 총 67만대의 전동화 차량을 판매해 글로벌 3대 전동차 기업으로 올라서겠다는 게 현대차 포부이자 정 수석부회장의 밑그림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1월 시무식을 통해 이 같은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최근 기술과 네트웍스 발달로 상상 속 미래가 현실이 되고 있고 자동차 사업도 이런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올해를 미래시장에 대한 리더십 확보 원년으로 삼고자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전동화 시장 리더십 확보 위해 전용플랫폼과 핵심 부품 경쟁력 강화, 오는 2025년까지 11개 전기차 전용모델 포함해 총 44개 전동화 차량 운영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이처럼 미래차 시장에 힘 쏟는 것은 자동차산업이 전통 제조업에서 종합 모빌리티 산업으로 전환되는 대변혁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저유가가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동차 생산은 지난 2017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다. 글로벌 자동차시장 전문 조사기관 마크라인즈(MarkLines)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생산량은 2016년 9200만대에서 2017년 정점인 9600만대를 찍고 지난해 9300만대로 감소했다. 이는 고성장을 이어온 중국 경기 둔화와 기타 신흥국 경기 침체 여파 영향이 크다.

전기차 컨셉트. 사진=현대차.

저무는 ‘내연차’, 뜨는 ‘전기차’

코트라가 올해 초 발표한 글로벌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시장 선점 전략도 같은 진단이다. 향후 미래차 시장은 현재 내연기관 차종 판매가 94% 이상 점유율에서 점차 하락하고 친환경 동력원 전기차 판매 비중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블룸버그NEF(BNEF)가 올해 5월 발표한 최신 보고서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이 보고서는 오는 2040년까지 전기차가 전 세계 신규 승용차 판매의 58%, 전체 차량 판매의 31%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같은 시기 운행 중인 전체 버스의 67%, 이륜차의 47%, 경상용차의 24%가 전기차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원유를 기반으로 한 내연기관 자동차의 수요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전기차 점유율은 오는 2030년 30%에 이른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전기, 전자, IT, 서비스 등 이종(異種)산업이 자동차산업 밸류체인으로 진입되고 현재 완성차 제조사(OEM)와 부품 벤더(Tier-1)의 수직적 협력관계도 수평적 협력관계로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런 흐름을 읽고 지난해 9월 차량용 전장기업 앱티브(APTIV)와 합작법인 조인트벤처(JV, Joint Venture)를 설립하는 등 미래차 시장 선점에 나선 모습이다. 앱티브는 글로벌 업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로, 핵심 사업 분야는 자율주행이다. 현대차 합작법인 지분은 50%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전경. 사진=허홍국 기자.

실적 악화 경영 ‘시험대’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실적 악화’라는 경영 ‘시험대’에 올라 있는 상태다. 자동차산업 대변혁기 발 빠르게 대응하기에도 경영 활동에 여념이 없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하는 처지다. 올해 현대차 1분기 실적은 매출 25조 3194억원, 영업이익 8638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코로나19 펜데믹에도 전년대비 4.7% 증가해 선방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1분기 자동차 판매가 11.6% 감소하고, 코로나19 타격이 지난 3월 중순 이후 본격화돼 1분기 실적에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선방했다는 평가는 이른 감이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1분기 실적 발표 후 코로나19 여파는 2분기부터 본격화돼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고 이는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올해 4월 이어 지난달에 이르기까지 해외 판매량이 급감했다. 4월에는 코로나19 환자 급증 위기로 유럽과 미국 시장이 붕괴되면서 판매량이 70% 이상 빠졌고, 지난달에는 49.6% 줄었다. 현대차 올해 5월까지 누적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다. 그나마 위안은 지난달 국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5% 늘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현대차 연간 판매량의 8할 이상이 판매되는 해외시장에서 팔리는 자동차 대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정 수석부회장 입장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 할 대목이다. 현대차는 지난해도 해외 판매 실적이 줄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 72만1078대, 해외 386만8121대 등 총 458만9199대를 팔았다. 이는 전년 대비 국내 판매량은 2.9%p 증가하고, 해외 판매는 4.8%p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현대차 연간 매출액이 전년 대비 9.27% 오른 105조7904억원을 기록하고, 영업이익이 52.1% 증가한 3조6847억원으로 집계됐다고 자화자찬성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리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 수석부회장이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타개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인다. 이 기대감은 정 수석부회장의 과거 경영 실적에서 나온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2005년 사장으로 승진한 뒤 기아차로 자리를 옮겨 쏘울, 포르테, 로체 이노베이션 등 신차를 앞세운 디자인 경영으로 기아차 성장을 주도했고 이 공로로 현대차 부회장에 올랐다.

반드시 넘어야 할 ‘품질 불량’

정 수석부회장 입장에선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자동차 ‘품질 불량’도 개선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 품질 문제 의혹으로 세간에 오른 차종만 3개다. 지난해 말 알려진 ‘2020 더 뉴그랜저’와 올해 들어 거론된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 G80’과 7세대 신형 ‘아반떼’ 등이다.

2020더 뉴 그랜저는 지난해 12월 한 자동차 전문 유투버를 통해 시동이 꺼지지 않고 굉음 등을 내는 현상이 알려졌고, 지난달에는 신형 ‘아반떼’ 조립 결함 의혹이 불거졌다. 이달 들어서는 제네시스 G80이 주행 중 차량 전면부 보닛에 화재가 발생해 품질 불량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처럼 현대차 차종에 문제가 생기면 품질 불량으로 소비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지난해 4월말 공개된 현대차 아산공장 내부 모습이 폭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과거 소비자들 사이에선 현대차는 ‘뽑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대다수는 이를 믿지 않았다. 현대차 품질이 점차 개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폭로된 내부 영상은 근무 중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등 충격이었고, 논란으로 이어졌다. 현대차는 자동차 품질 클레임으로 연간 3조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정 수석부회장이 공장 근로자와 함께 불량 조립으로 인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는데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단순 불량 조립만 줄여도 불만 있는 소비자들의 인식은 충분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차 노조도 품질 개선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인간중심 모빌리티 철학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갈 길 바쁜 ‘미래車’ 경쟁 수장

정 수석부회장은 ‘미래차(車)’경쟁으로 갈 길이 바쁘다. 전기차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성능 ‘N’ 브랜드를 전기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까지 확대해 새로 펼쳐질 자동차 시장도 선점해야한다. 정 수석부회장이 던진 승부수는 모빌리티 분야에서 차별화다. 핵심은 혁신적 디지털 사용자 경험과 AI 커넥티드 서비스, 안전 지향 자율주행 등 세 가지다. 또 여기에는 4단계 이상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 카셰어링과 로보택시 실증사업 진행도 피해갈 수 없다. 기존 내연차 생산 설비도 이런 자동차 산업의 거대한 변화에 발맞춰 점차 전기차 등 미래차 생산 시설로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 수석부회장도 포드가 2018년 세단 승용차 라인 생산을 중단하고, GM이 지난해 북미 5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두 상용차 회사는 수년 전 자율주행 스타트업 Argo AI나 Cruse Automation을 인수하는 등 미래 자동차 시장을 위한 경쟁에 나선 상태다. 여기에 볼보(Volvo)와 BMW, 아우디(Audi) 등도 자율주행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협력관계를 맺는 등 미래차 시장을 위한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차량용 전장기업 앱티브와 자율주행 합작법인을 설립, 오는 2024년 자율주행차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운 정 수석부회장. 제2의 기아차 전성기를 만든 것처럼 거대한 대변혁기 제2의 현대차 전성기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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