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학 경희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 11일 검찰에 공개 소환될 때 대법원 담장 밖에서 일방적으로 기자들에게 소회를 발표한 뒤, 검찰청사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은 그냥 무시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들조차도 무시하지 못했던 검찰청 포토라인을 양 전 대법원장이 패싱한 이후 포토라인의 폐지여부를 놓고 논쟁이 불붙었다.

첫 번째 비판은 전직 수장의 검찰청 소환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법원 판사들 가운데서 나왔다. 고위직에 있는 모 고법부장 판사는 포토라인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구실로 유죄심증을 퍼뜨려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 현대판 멍석말이”, “포토라인에 서고 안 서고를 검찰이 자의적으로 선별할 권한은 누가 부여했나”라며 검찰의 공개소환 관행을 비난했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던 일부 보수언론들도 이에 동조해, “검찰의 포토라인 세우기가 중세 시련재판(물‧불‧독 등으로 피고인에게 고통을 주고 그 결과에 따라 죄의 유무를 가리는 재판)을 연상시킨다”(조선일보), 또는 형사소송법에 피의자가 공개소환과 포토라인의 시련을 감내해야 할 의무조항이 없다는 취지에서 “검찰 악습을 걷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중앙일보) 등의 논조를 보였다.

반면 언론계와 언론학계에서는 대체로 포토라인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지난 1월 15일 대한변협과 법조언론인클럽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았던 모 대학교의 신문방송학 전공교수는 “전직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힘없는 서민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또 이런 분위기가 검찰수사를 감시하는 것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효과도 있다”, “포토라인은 법적 근거가 없지만, 공공성과 공익성이 인정되는 만큼 폐지해서는 안 된다. 다만 피의자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규정을 세분화,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모 신문사 논설위원도 “선진국에 비해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가 현저하게 낮은 현실을 고려하면 포토라인의 긍정적 기능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법조계를 대표해 참석한 모 변호사는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하물며 피고인도 아닌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고 혐의 사실을 일부라도 공개하는 것은 무죄추정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논쟁이 가열되자 문무일 검찰총장은 “(포토라인이)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인격권 사이에서 조화로운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언론계와 학계 등과 함께 포토라인 개선 작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국민의 알권리와 개인의 인격권이 충돌하는 포토라인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는 이제 포토라인은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고위직 정치인이나 관료, 재벌총수 등이 검찰에 공개소환돼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법 앞에 예외가 없고, 사회정의가 빠짐없이 실현된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범죄혐의를 받는 거물급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공개소환과 포토라인 설치가 검찰수사에 대한 감시기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떤 논리도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법원의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은 단순한 이념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사와 재판, 형사절차 전반을 지배하는 최상위의 실천적 원리로서 작동하고 있다.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진술거부권과 묵비권), 불구속 수사‧재판원칙, 변호인 조력권의 최대한 보장, 고문‧강압적 신문의 금지, 범죄의 입증책임을 검사가 부담한다는 원칙, 재판에서의 예단 배제원칙,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의자‧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판결해야 한다는 원칙 등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형사소송절차에서 당연시 되는 많은 원칙과 제도적 장치들이 이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따라서 무죄추정원칙을 침해하는 모든 절차와 제도는 헌법적 차원에서 당연시 금지돼야 한다.

포토라인의 실제를 들여다보자. 포토라인에 서는 사람들은 아직 유죄가 확정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수사기관인 검찰의 일방적 판단에 의해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포토라인에 서는 사람은 이미 그 사실만으로 유죄가 추정된다.

기자들은 당사자에게 범죄혐의를 인정하는지 여부를 공개적으로 물어본다. 헌법에 보장된 당사자의 진술거부권을 무색케 만드는 답변 강요적 질문이 행해진다. 동문서답을 하거나 아무 대답 없이 포토라인을 지나치면 그 자체로 반성하지 않는 뻔뻔하고 무례한 사람으로 공중에 비춰진다.

또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건에서 검찰수사가 잘못됐음이 추후 형사재판을 통해 밝혀진 것을 생각해 보면, 아직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유죄의 낙인이 찍히는 것은 당사자에게 매우 치명적인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언론의 보도관행이 수사단계에 집중돼 있고 - 주로 검찰의 발표를 받아쓰기에 바쁘다 -, 재판에서 무죄가 나더라도 검찰수사의 잘못이나 당사자의 억울함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검찰청 포토라인은 현대판 멍석말이다”라는 비판이 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검찰은 공개소환을 빌미로 당사자에게 수사협조를 강요할 수 있다. 검찰이 당사자를 압박할 수 있는 훌륭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공개적 망신주기는 법이 검찰에 준 권한이 아니다.

이제 무죄추정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당사자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불명예를 가져다주는 포토라인 관행을 폐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찰(경찰을 포함)의 모든 피의자 소환은 앞으로 비공개로 이뤄져야 한다.

수사단계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취재와 검찰수사에 대한 감시는 적법한 수사공보절차를 통해 이뤄지면 된다. 유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정보수집은 기소된 이후 공개된 재판을 통해 이뤄져야 하고 그 재판이 확정된 이후에 그 책임에 맞는 사회적 비난이 가해지면 족하다. 선진외국도 언론보도는 기소 이후 재판에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 검찰과 언론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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