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수준높은 도시계획과 왕궁터로서의 높은 가치 기대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나온 대형 전각 건물터. [문화재청 제공]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백제 성왕은 협소한 웅진(熊津)을 버리고 북쪽으로는 부소산성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부여읍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백마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는 곳에 도성을 세우고 사비성이라 불렀다. 

문화재청은 12일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15일 개토제(開土祭)를 지낸 뒤 백제 사비도읍기(538∼660) 왕궁터로 알려진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제428호) 발굴조사를 시작한다.

이번 조사지역은 부여 소방서 로터리 동쪽에 위치한 관북리 유적 주차장 남쪽(구아리 13-1번지)일대로 조사 면적은 5천300㎡이며 문화재청과 부여군은 관북리 유적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관북리 유적과 부여여고 인근 토지를 지속해서 매입 중이다.

지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부여 관북리 유적은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위해 백제왕도 핵심유적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사비 왕궁터 관련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중장기 학술조사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관북리 유적은 1982년부터 2014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충남대 박물관, 한국문화재재단, 백제고도문화재단 등 10개의 조사 기관에서 시굴 및 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조사 결과 대형 건물터 유적을 비롯해 지하 창고 시설, 연못, 도로와 공방터, 수로시설이 발견됐고 성질이 다른 흙을 교차하며 쌓아 올리는 성토(盛土) 기술이 확인됐다. 이는 백제가 도시계획에 따라 도성을 조성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어 왕궁터로서의 높은 가치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조사 지역과 인접한 장소에서 도로, 배수로, 나무로 지은 창고인 목곽고(木槨庫)가 나온 바 있다 사비시대 백제 왕궁과 관련된 주요 시설을 발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기존 조사지역의 남쪽에서 하게 되는데 올해 부여에서는 이 사업으로 능안골 고분군, 가림성(加林城), 나성(羅城) 동쪽 조사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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