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구
한자한글교육문화콘텐츠협동조합이사장
전 동덕여대 교수

“한글부터 다시하자” 이 말은 안타깝지만 세계인이 가장 우수하다고 여기는 우리글 한글에 대해서 주인인 우리가 잘 모른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자문해봅니다. 우리 인체의 손을 손이라 부르고 손이라 쓰는데 손이 무슨 말일까요? 해를 해로, 손을 손으로, 발을 발로 부르고 쓰는 것은 아마도 5000년쯤 되었을 것인데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해, 손, 발 본연의 의미를 다 잊어버려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이 이러하니 손이라고 쓰고 부르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맨 처음 이런 이름을 붙인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우연히 그렇게 불렀을까요? 아무 생각이 없이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린다는 말이 도공에 대한 모독인 것처럼 손, 발, 해 등이 아무런 의미 없이 명명되었다는 것은 한글을 만든 주인공들에 대한 불경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손이 무엇인지 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 의미를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상서(尙書, 書, 書經)는 전통사회에서 소위 선비라는 사람들이 고대사를 습득하는 유력한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맹자는'盡信書卽不如無書(진신서즉불여무서)' 즉 서경을 다 믿는다는 것은 차라리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라 할 정도로 상서를 불신했습니다. 서경의 내용이 가공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동양의 고전으로 四書三經(사서삼경)을 꼽지만 사서삼경 이전에 6경이 있었습니다. 시(詩),서(書), 예(禮), 약(樂), 역(易), 춘추(春秋)가 그것인데 그 6경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서(書)가 그러하다면 다른 고전들은 어떠할까요?

그래서 공자님의 고백을 떠올립니다. ‘述而不作(술이부작)' 내가 직접 지은 것은 없다. 옛 선현들이 말한 바를 기술했을 뿐이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알았다. 공자님의 지식의 근원이 옛 것이라면 공자께서 보았던 옛 것은 무엇일까요?

이 답 또한 공자님의 고백 속에 이미 언급되어 있습니다. 소위 ‘요순(堯舜)과의 소통’이 그것입니다. 공자님의 지식의 원천은 바로 고대 오제시기 요순과 닿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경(書經)을 통해 동양의 역사를 배우는데 누군가는 서경(書經)은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하다고 말하는 이 사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동양의 고전이, 동양의 역사가 이러하니 다른 분야는 불문가지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했습니다. 공자께서 말하신 요순시대의 유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적어도 이것을 분별할만한 보편적인 기준이 출현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문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세계가 우러러보는 문자 자랑스런 ‘한글’이 있습니다. 우리 겨레를 살리고 인류를 살릴 단초가 우리글 한글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한글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함께 외쳐야 합니다. 한글부터 다시하자!

‘한글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단순히 한글을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다시보자’는 것이며 우리 사회의 온갖 거짓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선언입니다. 너무 광범위하고 너무 오래되어 고질화된 거짓의 굴레를 하나씩 깨트리고 생명 본연의 광명을 회복하자는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막상 한글로 돌아와도 지금까지의 한글 연구 수준으로는 무엇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한글학자들의 연구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글 연구의 한계는 한자의 배척에 있습니다. 이 간단한 이유를 한글학자들은 외면합니다. 한자는 한글의 뜻풀이 사전입니다. 한자의 도움을 빌리면 한글은 그 실체를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한자 속에 한글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 가운데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이 절호의 시기에 우리는 한글로 돌아가 한글을 알고 그 속에 담겨있는 가치관으로 우리의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야 합니다.

찬란한 한겨레의 시대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