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스전] 미얀마 바다에서의 도전과 성공(17) - 다시 보는 대우의 세계경영

<‘황금가스전’을 시작하며>

황금의 나라 미얀마에서 미얀마어로 ‘황금’이라는 뜻을 가진 ‘쉐(Shwe)’가스전은 국내 석유개발업계가 지난 수십 년간 해외에서 발견한 유전·가스전 중 최대 규모다. 또한 쉐 가스전은 프로젝트 선정에서부터 개발·생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국 자체의 기술력과 인력으로 주도해 온 프로젝트다.

미얀마 전역의 자료를 검토하여 광구를 선정하는 작업에서부터 탐사작업과 시추작업은 물론이고 파트너 영입, 가스전 발견 후의 평가작업, 그 이후에 진행된 가스판매를 위한 협상과 계약, 가스전 개발계획과 시공사 선정, 개발작업 감독, 생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외국 회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국내 석유개발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가스를 발견한 미얀마 서부 해상 지역은 1970년대 미국과 프랑스, 일본 회사들이 탐사를 하여 유전이나 가스전 발견에 실패하고 철수한 후 20년 이상 어느 외국 회사도 관심을 두지 않던 버려진 지역이었다. 외국의 유수한 회사들이 탐사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역의 자료를 분석한 끝에 가스 발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탐사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근거로 인공지진파 탐사와 시추를 실시하여 세계적 규모의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탐사작업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부닥쳤다. 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하던 인도 파트너들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철수한 상황에서도 단독위험부담으로 측면시추를 강행하여 가스전 발견에 성공하였던 일도 그 중의 하나다. 탐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일련의 긴장된 순간들 뿐만아니라, 그 이후 진행된 가스판매를 둘러 싼 치열한 협상과정,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간 가스전 개발을 위한 준비작업과 개발공사 중 일어난 여러 가지 어려움 등 실로 긴박한 과정을 거쳐왔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누어, 석유자원에 대한 중요성과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얀마 가스전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석유개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석유개발에 관한 지식도 간간히 소개하였다. 그 동안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 모든 동료들과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여러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자료와 사진을 제공하고 원고를 검토해 주고 그래픽을 도와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원고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특별하고 마움을 주신 분들은 실명과 당시의 직급을 언급하였는데,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번에야말로 가스 발견을 확신하다

인도 회사의 전문가들은 수직으로 시추한 결과자료를 보고 더 이상 가스층이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공지진파 탐사자료와 그동안의 시추자료를 보고 우리가 가스층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로 그 지점, 그 깊이에서 대규모 가스층이 발견됐다.

인도 전문가들이 틀렸고, 우리 예측이 맞았다. 며칠 전 동일한 깊이에 수직으로 뚫어 두꺼운 셰일이 나온 지점으로부터 불과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두꺼운 사암이 발견됐고 그 속에 엄청난 천연가스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스를 발견했다는 결론은 아껴두기로 했다. 물리검층을 한 후에 결론을 내리기로 하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작업 진행 결과를 지켜봤다. 지하 3000미터까지 내려갔던 시추 파이프를 모두 지표로 올리고 물리검층 장비를 집어넣어 측정하기까지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물리검층 결과를 살펴보니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G5층에서 공극률 22%, 가스포화도 75%에 이르는 두꺼운 사암층이 나타났으며, G5층의 상부에 인공지진파 자료상에서 인지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스층도 나타나 이를 G3층이라고 명명했다. 가스전 발견에 더 이상의 심의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측면시추에 의한 성공

쉐-1 탐사정 시추는 당초에 2200미터 지점부터 경사정(傾斜井)으로 시추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작업의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일단 수직으로 시추한 후 측면시추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직시추 결과 4개의 목표 지층 중 상부의 3개 지층에서는 가스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고, 그 바람에 컨소시엄의 파트너들 중 인도 회사들이 측면시추에 반대하며 빠졌다. 결국 나중에 측면시추를 통해 가장 중요한 네 번째 목표 지층 G5층을 시추해 대규모 가스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시나리오는 석유개발 전공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첫 번째 수직정 시추에서 가스 발견에 실패한 다음, 두 번째는 경사정으로 시추하기로 결정하고 대규모 투자비를 재투입해 가스 발견에 성공한 것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쉐 가스전은 수직정과 경사정 두 개의 탐사정을 뚫어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탐사정에서 성공을 거뒀던 것이다. 단지 계획이 일부 변경돼 우선 수직으로 뚫은 다음 측면시추를 하기로 했고, 이를 위한 수백만 달러의 추가 투자비에 대해 파트너들의 승인을 받으려 했으나, 인도 회사들이 반대해 단독 위험부담으로 마지막 단계의 측면시추를 감행한 것이다.

기적의 황금가스전 탄생

물리검층이 끝난 후 가스 산출시험을 실시할 때 미얀마의 에너지부 장관과 함께 시추선을 방문했다. 산출시험은 물리검층을 통해 확인된 가스층으로부터 가스를 분출시키는 작업이다. 산출시험 중에 지표로 올라오는 가스는 시추선 상에서 태우게 되는데, 이 가스 불꽃이야말로 탐사작업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를 보기 위해 정부의 VIP들이 시추선을 방문하는 것이 관례다.

2004년 1월 미얀마의 에너지부 장관 일행과 함께 전세 비행기를 타고 양곤에서 시트웨라고 하는 라카인 주의 도시로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헬리콥터로 갈아타고 약 20분정도 이동해 시추선에 내렸다.

새벽 이른 시간에 이미 밸브를 열고 가스 산출을 시작해, 우리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노란 불꽃을 띠고 있는 가스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힘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밸브로 조정을 하고 있었지만 산출되는 가스의 양과 압력이 엄청나서, 가스 불꽃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로 인해 10미터 이내의 지점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하 3000미터 깊이에서 수백만 년 동안 주인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천연가스가 지표로 힘차게 분출하고 있었다. 대우인터내셔널에 의한 황금가스전 발견이 최종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대우가 쏘아올린 불사조 영혼

한국인 가운데 서울역 앞에 우뚝 선 대우빌딩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이름마저 바뀌었지만 외양은 그대로다. 대우그룹의 심장이었던 그곳. 그곳에서 대우인들은 한국 최고의 회사에 근무한다는 긍지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불철주야 열심히 일했다.

흔히 대우빌딩을 두고 낮 풍경보다 밤 풍경을 이야기하면서 ‘불야성(不夜城)’이라고 일컬었던 것은 대우가 ‘세계 경영’을 내세우며 24시간 세계와 교역하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런 대우와 대우인들이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일어난 대우사태를 맞아 나락까지 추락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미얀마 황금가스전의 발견은 대우, 그중에서도 대우그룹의 모(母)회사이며 주력회사였던 대우인터내셔널의 새로운 중흥을 알리는 뜨겁고 힘찬 불꽃이었다. 남들이 포기했던 미얀마 바다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탐사개념을 적용해 양호한 저류암이 A-1광구 지역에 존재할 것이라고 제시했는데, 그것이 실제 시추에 의해 대규모 가스전 발견이라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가스 발견 소식은 우리 회사 기술진은 물론이고 작업에 참여한 모든 용역회사 기술자들에게도 뜨거운 환희와 뿌듯한 자부심을 안겨줬다. 당시 시추선에 근무하던 한 외국 기술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시추선에 근무해 오며 20년 동안 수십 개 공을 시추하면서 평가정이나 개발정에서 원유나 가스가 나오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와일드캣(탐사정)에서 원유나 가스를 발견하는 경험은 처음해 봅니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석유탐사에 성공하기가 어려운지 여실히 말해준 체험담이었다.

기술력, 협상력, 그리고 천운

더구나 이 지역은 사암이 나타나지 않아 원유나 가스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고, 인도 파트너들조차 시추 중간에 포기하고 떨어져 나간 지역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역에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서부터 운반돼 퇴적된 벵갈 해저선장지가 발달해 있어 양호한 터비다이트 사암이 있을 것이며, 그 속에 가스가 부존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우리의 기술력과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노력, 그리고 하늘의 도움에 힘입어, 대우가 운영권자로 참여한 첫 번째 석유탐사사업, 첫 번째로 뚫은 탐사정에서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했던 것이다. 실로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석유개발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세 가지 요소는 기술력, 협상력, 그리고 천운(天運)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력과 협상력이 사람의 영역이라면 천운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이겠는데, 그마저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000년 8월에 광권 계약을 체결하고 2004년 1월 산출시험 성공을 통해 대규모 가스전의 발견을 최종 확인했으니, 광권 취득 후 약 3년 반 만에 탐사사업의 성공을 실현한 것이다. 물론 그후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2013년 7월부터 가스를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으므로, 실질적인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광권 취득 후 13년만이다. 하지만 미얀마 가스탐사는 3년반만에 성공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때부터 회사의 자산가치가 대폭 상승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석유탐사에 있어서 성공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평가와 개발단계를 거쳐 최종 생산에 이르기까지는 10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탐사사업 자체의 1차적인 성공 여부는 수년 만에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 양수영

부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Texas A&M 대학교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선임연구원과 한국석유공사 기술실 지구물리팀장을 거쳐 1996년 대우인터내셔널로 옮겼고, 에너지개발팀장, 미얀마E&P사무소장, 에너지자원실장, 자원개발본부장(부사장)으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