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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건의 여시아문(如是我聞)] 우리 시대의 디케 (Dicé)를 찾아서
  • 김병건 기자
  • 승인 2018.02.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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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디케라 불리는 정의와 법의 여신은 늘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디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었으며, 디케가 들고 있는 저울과 칼은 오랫동안 법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경우에는 대법원에 한복을 입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 이 있습니다. 디케가 눈을 가렸다면 우리의 정의 여신상은 두 눈을 뜨고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습니다. 왜? 디케는 눈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을까요?

법과 상식 뒤집는 판결
서울 고법에서 지난 5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습니다. 재판부에 대한 비난 여론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선고 결과를 전한 인터넷 기사에는 인신 공격성 댓글이 달렸습니다. ‘적폐 판사’ 등의 내용이 많았습니다. 여론조사도 이번 재판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사법부의 독립과 법리라는 이유로 판결에 대해서 옹호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언론사들의 논조에 대해서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삼성 광고’의 힘이라고 해석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물음에 답을 하고 있는 언론사는 없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형식 판사에 대해서 이 판결과 그동안 판결에 대한 특별 감사를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고 불과 며칠 만에 청와대의 답변 기준이 20만 건이 넘었습니다. 지난 8일 이 재판 결과에 대한 여론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상당수가 이번 재판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전체 국민의 40% 정도는 매우 과격한 방식으로 해결되길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조차 이번 판결을 비판하고 있지만 모든 경제 신문들과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파면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이야기 합니다. 정형식 판사에 대한 감사 요구에 대해서는 극우 야당 측에서 3권 분립이 훼손된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극우 정당이 집권 하던 시절 판사 동향을 파악하고 정치적 성향을 조사했던 그 집단에서 3권 분립을 이야기 하니 참 세상  아이러니 합니다.

통제되지 못한 권력
법관의 권력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법관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고 사견이 개입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 역사상 어두웠던 시절 각종 공안 사건에서도 법관이 정권의 증거 왜곡 등을 눈감아 준 사례가 형사 재심을 통해 속속 밝혀진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법관이 공정의무를 저버린 재판에 대해 책임을 진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법권력은 3권 분립이라는 안전가옥에서 그 누구 견제도 없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우리는 권력이라는 것이 감시나 견제받지 못하는 시스템 일 때, 언제나 권한 남용과 부정 부패 발생이 필연적이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사시 몇 회로 통용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법관의 전관예우가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지고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이 일상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관이라는 권력도 주권자가 위임을 끝없이 동의받아야 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법관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개헌안에 대해서 이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특히 미국처럼 지방법원장 이상의 책임자급 법관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검찰 권력의 지역 책임자, 광역 경찰서장 또한 지역 국민들이 직접 선출해야 합니다. 권력이란 끝없이 견제받고 주권자인 국민에게 끝없는 위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위해서 사용된 불행한 역사를 기억합니다. 디케는 자신의 눈을 가리고 정의와 불의의 판정에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상징입니다. 법의 적용이 저 시골 단칸방에서 어렵게 사시는 분이나 최고의 권력을 가진 분과 똑같이 적용될 때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김병건 기자  overwatch.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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