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외투로 몸을 휘감아 감추고 사는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봄이 오고 지표면이 열을 받아 슬슬 달아오르는 시기가 되면 각종 광고 매체는 다이어트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낡고 상투적인 표현을 겨울옷 잡아넣고 여름옷 꺼내듯 늘어놓을 것이다. 반면 겨울이 다가와도 다이어트의 계절이 지났다는 표현은 업계에서 잘 쓰지 않는다. 왔음을 알렸으니 갔음도 알려야 할 텐데 말이다. 잠재적 다이어터들을 자극해 그들의 살을 덜어내고 주머니의 돈을 가져와야 할 홍보 의지에 비해 그렇지 않은 일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균형 잡힌 영양, 또는 그러한 것을 지향하는 삶”이란 원뜻을 가진 다이어트는 그리스어 디아이타의 현대판 변형이다. 건강한 삶을 지향하려는 노력이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우습다. 허무한 것은 7할 이상이 자신의 문제인 비만을 누군가에 기대어 해소하려는 우리의 책임 전가 의식이다. 그것도 비용을 들여가며 말이다. 어젯밤에 원 없이 달려 푸짐하게 붙인 뱃살을 아침에 훠트니스 센터의 트레드밀을 달려 지워내려는 뭐 그런 식이다.

카드를 긁어 붙인 지방을 카드를 긁어 빼내려 한다. 카드 대금은 보통 한 달 뒤에 갚는 방식이니 최근에 우리 배를 불린 살은 대부분 외상인 셈이다.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이것은 될 일이 아니다. 하루 중 전문가의 손길을 1시간 받는다면 그 후 남은 23시간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우선순위를 운동보다 식이에 두는 필자는 현대인의 고충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먹을 것과 먹을 일이 넘치는 환경에서 우리는 먹으려는 욕구와 날씬해지려는 욕망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는 힘겨운 존재다. 대다수 다이어트는 이 두 가지 욕구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상품 또는 서비스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과연 거침없이 먹으며 과도하게 쌓이는 체지방을 막는 일이 가능할까. 섭취한 음식물의 영양소는 소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크기로 분해되어 근육 등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조직에 흡수된다.

유입된 열량 덩어리들이 대사라는 소화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토해내는 방법 외엔 없다고 본다. 번성기의 로마 병사들이 더 많이 먹기 위해 이미 먹은 것들을 투구에 달린 장식 깃털로 목젖을 자극해 게워냈듯 말이다. 토해내는 방법 역시 진일보하여 혹자는 실의 한쪽을 어금니 틈에 걸고 실을 삼킨 후 나중에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구토를 성공(?)시키기도 한다.

억지로 토해내는 것을 포함하여 숱하게 명멸한 다이어트 방법들은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비만의 역사와 날씬한 몸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만나 급조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유사 이래 많은 다이어트 비법들은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많은 부작용을 남긴 채 사라졌는데 이중 대표적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1930년대 미국의 촌충 다이어트는 기생충의학과 영양 대사론이 결합한 과학적 쾌거(?)라 할 수 있다. 비만의 원인인 잉여 에너지의 일부를 기생충에게 나누어주자는 박애 정신과 그로 인해 인간이 날씬해질 수 있다는 윈-윈 전략을 기저에 깔고 있다. 이 방법에 활용된 기생충은 세계적으로 널리 나타나는 촌충인데 그 당시 불결하게 사육된 소고기에서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까지 도달하기 위해 캡슐에 담긴 채 삼켜진 기생충은 유입되는 자양분을 빨아먹고 최대 9m까지 자라났다고 한다. 자웅동체로서 자가 수정으로 세력을 불린 채 몸속에서 우글거리며 생활하던 이 벌레들은 장에만 기생한 것이 아니라 간 및 소화관까지 침범하여 촌충으로 인해 일어나는 다양한 조충병을 유발하였다.

몸속에서 둥지를 틀고 우글거릴 다수의 벌레를 상상해 보자. 벌레로 체중을 줄일 의지로 식이를 조절할 수 없었을까? 이 외에도 황당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한 많은 다이어트 방법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거나 때론 부활하기도 했는데 다음 호에 좀 더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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