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가 귀띰, 뇌성마비 아닌 ‘세가와병’으로 밝혀져
법원 “당시 의료기술로는 세가와병 판단 어려운 희귀질환”

대구지방법원 전경.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이승규 기자] 의료진의 잘못된 진단으로 13년간 누워만 지냈던 여성이 약을 바꾼 뒤 이틀 만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오진을 한 대학병원에 대해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배상액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1997년생인 서모(20‧여)씨는 만 3세가 넘어서도 제대로 걷지 못하자 1999년 10월 부모와 함께 대구 모 대학병원을 찾았지만 뇌성마비 중 강직성 하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어 2009년에는 경직성 사지 마비 진단을, 2011년에는 상세불명의 뇌성마비 진단을 각각 받고 뇌병변 장애 2급에서 1급으로 판정받았다.

하지만 2012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중 물리치료사가 “뇌병변이 아닌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의료진은 과거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촬영한 MRI 사진을 확인한 뒤 “뇌성마비가 아닌 도파반응성 근육긴장”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즉 뇌성마비가 아닌 세가와병이었던 것이 13년만에 드러난 것.

도파반응성 근육긴장 일명 세가와병은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의 이상으로 도파민 생성이 감소해 발생한다. 주로 소아에게 발생하지만 소량의 도파민 약물을 투약하면 특별한 합병증 없이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서씨는 새로운 치료제를 복용한지 이틀 만에 방에서 걸어 나왔다. 의료진의 오진으로 인해 13년간 누워만 있던 서씨가 스스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서씨 가족은 뇌성마비 진단을 내린 대학병원을 상대로 2013년 12월 4억8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오랜 기간 누워지내며 척추측만증도 생기는 등 의료진의 잘못된 진단에 의한 후유장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

하지만 병원 측은 “1999년 첫 진단을 내릴 당시 의료기술을 종합하면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4년간의 법적 공방을 벌였다.

대구지법 민사11부(신안재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피고 측이 원고 측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의료진의 주장을 고려한 것이다.

재판부는 “서시에 대해 처음 뇌성마비 진단이 내려진 시기가 1999년이었지만 당시 의료진은 뇌성마비가 아닌 세가와병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희귀 질환이었다”면서 “서씨의 뇌성마비 진행 상황 등을 감안해 볼 때 법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조정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양측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였다.

서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로서 억울한 점이 있지만 병원 측이 일부 과실을 인정한 데다 당시 의료기술로는 세가와병을 발견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을 고려해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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