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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를 품다]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④
  • 저자 조용필
  • 승인 2017.08.2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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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저자 제공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세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 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 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사진=저자 제공

몽골 - 50차선 비포장 도로

소와 말과 함께 몽골을 달리다

마을에서 도로 사정을 알아보려고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문은 자물쇠로 잠겨져 있지만 창문으로 살펴보니 실내에 난롯불이 타고 있습니다. 우리 차를 보고 모여든 동네 사람들 중 아무도 경찰이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솔롱고에서 러시아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했습니다. ‘솔롱고’는 몽골에서 한국을 부르는 말입니다. 북쪽 도로를 지나 다시 러시아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모두들 우리를 미친 놈 취급을 합니다.

마을에서 2주일 정도 쉬면서 머물면 길이 뚫릴 거라고 합니다. 2주일 기다리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남은 540km의 눈길을 헤치고 나갈 자신도 없습니다. 식구들과 의논하여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몽골의 도로포장률은 10% 미만입니다. 포장도로는 주로 수도 울란바토르 주변입니다. 우리 경로 중 빨간색이 포장도로입니다. 점으로 표시한 길이 북쪽의 노튼 로드입니다. 540여 km를 남겨두고 포기합니다.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몽골에는 유명한 ‘50차선 비포장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이런 도로에서는 속도제한이 없습니다. 풀 액셀해 보십시오. 속도위반 카메라도, 경찰 순찰대도 없습니다. 톨게이트도 없으니 통행료도 무료입니다. 중앙 분리대나 차선도 없습니다. 끝없는 설산, 호수에 비친 석양, 온갖 동물들을 보며 끊임없이 ‘멋지다, 환상적이다, 끝내준다.’를 연호하며 주행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전화도 안 터지고, 말도 안 통합니다. 몽골어를 한다고 해도 시야 안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차가 고장 난다면, 눈길에 사고라도 난다면, 비상 연료까지 바닥나 버린다면…. 두려워도 두렵다고 표현할 수 없고, 걱정되어도 함부로 내색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버지의 자리임을 또 한 번 확인했습니다.

사진=저자 제공

혹독한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몽골에도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그네도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 덮인 산길이지만 해빙이 시작되고 있으며 눈 아래 바닥은 진흙탕입니다.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뒤틀렸고 제자리 맴을 돌아 등짝이 흥건하게 젖기도 했으며, 눈 앞에서 낙석이 떨어져 급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맘을 졸이며 어렵사리 기나긴 오르막 길을 올라 고개마루에 다다르면 기막히게도 또 다른 오르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월 중순에 여행을 시작하니 몽골에 오면 푸른 초원과 사막만 달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생고생’으로.

사진=저자 제공

몽골에 없는 것,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경험

며칠간 자갈길, 모랫길, 눈길, 진흙길, 얼음길, 초원길, 개울길…. 종합 도로 세트를 달려보았습니다. 아스팔트 포장길 외에는 대부분의 도로를 다 달려 보았습니다. 트레드가 짱짱한 새 타이어가 한 순간에 너덜너덜하게 되는 곳이 몽골입니다. 햇볕이 쨍쨍하더니 순식간에 먹구름에 뒤덮이고 뇌우가 몰려오는 곳도 몽골입니다. 소름이 돋는 황사 태풍, 공포스러운 모래 태풍도 경험할 수 있는 몽골입니다. 흔히 볼 수 없는 이 스펙터클한 자연현상을 불과 며칠 만에 실컷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런 길을 고생스레 왜 가느냐고 반문하는 분은, 평생 동안 이런 길을 달리는 즐거움을 경험해 볼 수 없겠지요. 어떤 이에게는 고생인데 다른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행에도 이런 양면성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많은 위안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몽골을 달리고 있습니다.

사진=저자 제공

몽골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인터넷도 없고, 쾌적한 화장실도 없고, 삼각김밥이나 물휴지, 컵라면을 파는 편의점도 없습니다. 호텔의 세면장에 거울이 없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옷걸이나 수건 걸이조차 없는 곳도 많았고, 방문에 잠금장치가 제대로 갖춰진 곳도 드문 실정입니다. 샤워기가 온전히 작동되는 곳도 별로 없고, 변기 커버나 화장지는 없는 곳이 더 많습니다. 청결과도 거리가 멀고, 깨끗한 침구나 편안한 잠자리도 머나먼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저자 조용필  news@imin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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