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징역5년 경영공백 장기화 승계 작업 험난
삼성 “항소심서 무죄 입증 자신” 그룹차원 올인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회사 깃발이 25일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삼성그룹의 후계구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형의 실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년 전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 병상 신세를 지면서 그룹차원에서 진행됐던 이 부회장의 후계 승계 작업은 멈췄다.

삼성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이 부회장의 구속 후 그룹 차원에서 추진했던 굵직한 사업들이 사실상 중단에 직면하면서 희망이 사라졌다. 삼성은 이 부회장 1심 판결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세계 최고 제조기업 삼성전자가 79년 만에 총수가 실형을 선고받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이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 총 5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선고되면서 삼성전자가 선장을 잃어버린 것이다.

뇌물 혐의 인정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같은 혐의로 기소된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에 징역 4년을 선고 법정 구속했다. 박상진 사장에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무에게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판결했다.

우선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핵심 혐의인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뇌물로 판단, 유죄로 봤다. 또 최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역시 유죄로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회삿돈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혐의도 인정됐다. 지난해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에서 최씨 모녀를 모른다고 답변하는 부분도 위증이라고 봤다.

재판부가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데는 이건희 회장 와병 후 진행된 일련의 그룹 후계 승계 작업이 배경으로 작용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등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초석이었고, 이는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위한 일환이었다는 판단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삼성의 후계 승계 작업은 공론화됐고, 재계뿐 아니라 사회 일반에서도 이목이 집중됐다는 점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을 독대할 당시 삼성의 이 같은 상황을 인지했을 것이라 보고,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이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에 나선 것을 승계 작업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바라고 제공한 것으로 봤다. 삼성은 이 부분에서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지시를 실무진에 단순히 전달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특검이 주장한 뇌물액 77억9735만원 중 마필 운송 차량 구입비 5억 원은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액수는 이 부분을 뺀 72억 원으로 인정했다. 또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한 200억 원도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 재판은 변호인단의 항소로 2심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 7일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승계 작업 흔들

삼성의 후계 승계 작업도 이 부회장의 실형으로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건희 회장이 와중이고 지금으로선 후계 승계 작업을 주도할 적합한 내부 인사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룹 경영 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룹 총수의 부재여서 앞으로 사업을 치고 나가야 할 삼성의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은 굵직하게 추진하는 사업마다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우선 삼성증권의 초대형 투자은행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대주주인 이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어 금융당국이 발행어음 사업 심사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미래 먹거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했던 하만 인수합병 이후 제대로 된 대형 M&A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장 사업의 본격적인 진출이 더디다. 올 상반기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려 했지만, 총수 공백으로 뒤로 미뤘다.

삼성이 새 성장 동력으로 삼은 바이오사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확장하려는 4ㆍ5공장 건설 논의가 답보상태다. 그룹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 계열사가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재계 안팎에서는 62개 계열사, 연 매출 300조 원, 임직원 50만 명에 달하는 기업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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