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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에는 오래간만에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일던 인문학 열풍의 영향,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법을 다양한 논객들이 제시하는 팟캐스트의 유행 등이 예년과 다른 도서전의 열기로 표현되고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출판사들이 만든 부스를 찾아다니다보면 예전에 찾지 못했던 책들을 발견하게 되고, 특이하고 재미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이 전시회는 지식의 보고다. 노하우(know-how)를 너머 노우훔(Know-whom), 노우웨어(know-where)까지 얻게 되니 즐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도서전에서 뜻밖의 인물과 사소한 설전을 벌이게 되었다.

시대의 불운이 빚은 청년창업, 적절한 처방이 될까?

필자가 민주신문과의 인연을 통해 창업칼럼을 써온 지도 5년이 넘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창업칼럼니스트라고 대우해줄 때가 많다. 필자는 그다지 흥을 타는 성격이 아니라 대우해준다고 해서 쉽게 우쭐대지 않는다.

창업전문가들이 바쁘셔서 글을 쓸 여유가 없기에 필자에게 조금 더 기회가 많이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그런데 유독 ‘창업전문가’라고 우쭈쭈하며 필자를 추켜세우더니 자기네 회원들을 위해 강연이나 멘토링, 기고 외에 무언가를 해달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멋진 화두는 ‘청년창업’이었다. 청년실업의 대안으로 청년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필자는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쇼! 청년들에게 무슨 창업입니까?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쇼! 청년창업 활성화한다고 하니까 우리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겁니다.”
사실 청년들에게 좋은 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와 경험없이 창업해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체에서 일하며 일머리를 알고, 적지만 인맥도 만들고, 업계의 구조를 알아야 뭐라도 할 것 아닌가? 그런 경험요소 없이 창업으로 유도하는 것은 우물가에 애를 놔둔 것과 다를 바 없다. 눈 앞에 보기엔 애가 뛰어놀고 있으니 괜찮아 보여도 눈 한 번 돌린 사이 우물에 빠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청년창업, 기업가정신이 투철한 청년에게나 권해야

물론 청년창업가들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청년창업에 도전한 청년 중에 극히 드문 숫자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하자면 천 명 중에 한 명 될까 말까? 이들은 투철한 기업가정신을 갖고 있는 청년들로,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와 열정, 추진력을 갖고 있어 언젠가는 창업을 하고 큰 기업을 일으킬만한 기량을 타고난 자들이다.

그러니 청년창업이란 슬로건으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주머니에 넣은 송곳 같아서 아무런 동기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창업을 할 사람들이고 반드시 성공하고 말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이런 기상을 가진 청년들을 발굴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길러주고, 여러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창업활성화 프로그램들은 필자의 마음 같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정책입안자들과 그것을 수행하는 담당 공무원, 담당 기관의 직원들은 정량화된 실적에 연연하기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

장려책인지, 규제책인지 알 수 없는 정부지원

스타트업은 R&D(연구개발)이 생명이다. 또한 다른 기업보다 R&D 비중이 높은 기업이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 R&D에 치중하다 보면 매출은 부진하고 적자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매출부진과 적자는 이들이 취득한 특허나 상표출원, 콘텐츠나 지적재산권 속에 녹아들어가 있기에 단순 재무재표만 가지고 이들 스타트업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은 이들 스타트업에게는 아주 좋은 동기부여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정부과제 수행이나 자금신청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지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열불 터지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심사과정에서 매출액과 수익구조를 따진다. 대표이사의 학력과 경력을 따진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대표이사의 학력과 경력이 스타트업의 가치 평가의 척도가 될까? 매출액 규모와 수익률이 스타트업의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장려책은 또 다른 의미의 규제책이 되고 만다. 공모전형 비즈니스 모델, 콘테스트형 CEO가 등장하는 왜곡된 구조를 낳고 만다. 정부지원책에 적합한 스펙, 컨디션을 가진 인물과 기업이 정부지원책을 싹쓸이하는 형태가 되고 만다. 이들의 주 수입원, 주 매출액은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맞는 것이 아니다. 시장 내에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주도 프로그램 내에서의 경쟁을 통한 생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같이 ‘온실 속의 잡초’같은 기업들이 어떻게 미래먹거리 산업을 담보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겠는가?

창업대국 건설, 도읍을 세우듯이 가야

정부의 과제 또한 10년 후, 20년 후를 염두하고 소신있는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같은 창업국가를 꿈꾼다고 하지만, 단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500년 도읍을 건설한다고 보고 느리지만 신중하게, 끊임없이 가야 하는 것이다.

당장의 실적을 올리기 위한 단기성과형 선심성 정책, 시혜적 정책으로는 한계에 달했다. 창업정책도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다. 사회구성원들이 누구나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출구전략과 진입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그 목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지껏 청사진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에 대한 것 김대중 정부 때부터 역대 정권과 정부 모두가 강조하던 공약이고 정책이다. 그런데 20년 동안 정부가 해결하지 못했다.

우선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회사를 말아먹고 나오더라도 신용의 문제, 고용의 문제가 없어야 한다. 사회구성원들이 실패자로 낙인찍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또한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만들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간의 갑을구조부터 바꾸면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대기업 더러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보다 협동과 협업이 이루어지는 격차없는 산업 생태계 조성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공장에서 쇠를 깎는 일도, 건설현장에서 힘겨운 노무에 종사하는 일도 즐거움과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고용불안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직업만큼 기피되는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태계 속에서는 누구나 창업을 선호하고 쉽게 하게 된다. 회사생활을 마치고 독립해 나와 1인기업, 소기업을 창업하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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