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인간 소모품

<전편 이어서>

깊은 산중에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그 당시는 혁명시대였다. 가난을 물리치고 부강한 국가로! 고루한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현대사회로! 군복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은 권력층은 그런 구호를 외치며 국민들을 일하는 로봇으로 만들어 갔다. 특혜 받은 재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미국이나 일본 같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민들은 병정개미나 일개미처럼 동원되었다. 부귀한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진실의 원칙과 안전수칙은 거의 무시되었다. 수시로 어처구니없는 사건 사고가 터져 수많은 국민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낡아빠진 배에 과도한 화물과 인원을 실었다가 좌초한 사건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제주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그 ‘삼월호’엔 수학여행을 가던 3백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타고 있었는데,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언론에서는 ‘전원 구출’이란 뉴스를 내보냈으나 그때 이미 지옥경에서 발버둥치다가 모두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차가운 물결만 죽은 아이들과 산 부모들의 설움을 실은 채 출렁거렸다.

그 외에도 겉보기엔 멀쩡하던 아파트가 무너져 수백 명이 사망하기도 했었고, 또 언젠가는 조파리라는 희대의 다단계 사기꾼이 나타나 ‘뉴코리아 프로젝트’라는 걸 가지고 힘없는 지푸라기 같은 사람들을 희롱했다. 그로 인해 평생 아껴 모은 목돈을 잃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체 어찌 해야 할까?’

청운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점심 식사 후엔 평소보다 훨씬 긴 두 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대부분의 대원은 그 자리에 늘어져 단잠을 즐겼다. 청운은 지친 마음을 끌고 몇 걸음 옮겨 꽃샘이 보이는 곳으로 에돌아갔다. 서울에선 들은 적이 없는 청아하면서도 기묘한 갖가지 새소리가 오염된 귀를 열어 주었다.

새는 천사나 요정의 변신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원래는 쥐였다고 한다. 평범한 쥐와 달리 이상이 높았던 그 청색 쥐는 나무 우듬지 위로 기어올라 먼 지평선이나 수평선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늘을 쳐다보며 풀쩍 뛰었는데 허공으로 조금 솟구치다가 바닷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쉬웠지만 물고기가 되어 심해를 유영하며 언젠가 창공을 날아다니길 꿈꾸었다. 오랜 인고 끝에 깃털이 돋아난 듯싶어 해변으로 나와 보니 다시 쥐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쥐는 절망에 빠져 죽어 버렸을까, 과연 어찌 되었을까? 슬픈 눈빛이긴 했지만 다시 나무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고, 검정고시 책의 부록엔 씌어 있었다.

새는 해맑고 기이한 목청으로 듣는 사람의 머릿속을 씻어 주고 온갖 시름을 없애 준다. 슬픈 사람에겐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저 새는 도대체 희로애락을 전혀 모르는 걸까? 새는 기쁠 때뿐만 아니라 서글프고 괴롭고 분노했을 때조차도 아름답게 지저귀며 지친 타인의 영혼에 향기를 전해 준다.

“아, 이런 그윽한 산중에서 죽음의 훈련을 받기보다 새들과 함께 놀며 신선 공부를 한다면 참 좋겠구나!” 청운은 중얼대곤 휘파람을 간살스레 불어 새를 꼬여 보려고 했다. 하지만 새들은 저속한 인간의 속셈을 빤히 안다는 듯 욕설 같은 소리로 지저귀는 것이었다.

“그래, 미안하다.” 청운은 작게 속삭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청운은 아무런 잡념도 없는 무념무상의 평화 궁전에 들어가 있었다. 호흡이 점차 길어지더니 숨을 쉴 때마다 안락감이 밀려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아도 될 듯한 무아지경에 잠겨 갔다. 엄마의 자궁 속이 이렇게 아늑할까?

고승이나 도사님처럼 무슨 입정의 경지에 든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무심중에 찾아온 특이한 경험이었다. 머릿속에서 어떤 스위치가 일순 멈추는 듯싶더니 한없는 고요가 찾아왔다.

속으로 청운은 좀 겁이 났지만, 너무나 기묘하고 감미로운 나머지 설령 죽더라도 좋다고 느끼며 자기 자신을 무아의 새로운 시공 속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청아한 새소리만 아득한 곳에서 아슴아슴 들려올 뿐 너와 나, 좋고 나쁨, 옳고 틀림 등의 차별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과거세의 폐기물처럼 여겨졌다. 온전한 것을 이리 가르고 저리 쪼개는 칼과 철조망처럼….

묵상

그건 청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흉기인 동시에 온갖 사람들의 자유로운 삶을 옥죄고 파괴하는 악마의 무기였다. 남과 북은 원래 하나였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허리가 잘린 채 신음하고 있을까? 왜, 누구에 의해, 무엇 때문에…불구자 신세가 되어 속으로 울고 있을까? 아아, 휴전선이니 DMZ니 하는 괴상한 것들이 사라지고…금수강산 한반도에 온전한 평화가 깃들길…청운은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그때였다. 메가폰이 마치 괴조가 울부짖듯 잡음을 내며 산중의 고요를 찢어발겼다. 고운 새소리와 함께 청운의 기도까지도 사정없이 몰아냈다.

“들어라! 모든 훈련병들은 즉시 완전군장을 하고 해골탑 앞에 집결하기 바란다!” 청운은 깜짝 놀라 묵상에서 깨어났으나 ‘평화궁전’에서 나오기는 싫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두 귀를 막았다.

하지만 메가폰 소리는 점점 우렁우렁 커지기만 했다. “좀전에 타전된 첩보에 의하면 북괴군이 삼팔선을 넘어 침범했다고 한다! 물리치자, 북괴도당! 이룩하자, 승공통일!”

청운은 경각심으로 정신이 들긴 했지만 아직 일어서진 않았다. 너무나 아쉬운 표정이었다. 마치 아늑한 천국에서 살벌한 지옥 세상으로 쫓겨 나오는 듯…… 아, 조금만 더 그 고요한 평화궁전 속에서 묵상할 수 있었더라면…… 혹시 나도 나의 아집을 완전히 벗어나 새 뜻을 지닌 원만무애한 존재로서 남북통일에 관한 기특한 생각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 정말 천추의 한으로 남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소태 씹은 상을 지으며 연병장으로 향했다. 도열한 대원들 앞에 다시 선글라스를 낀 교관이 나타났다. 이번엔 입귀를 올려 웃지 않고 짐짓 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러분! 세계 전쟁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동족상잔의 참극인 6.25 전쟁은 휴전협정으로 잠시 멈춰 쉬고 있을 뿐 결코 끝난 게 아니다. 휴전이나 정전을 종전으로 착각해선 안 되는 것이다. 북괴군은 언제 다시 전면전을 시작할지 모르며 지금도 국지적인 도발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다. 즉, 한반도는 휴화산 상태인 것이며 바로 이 순간 대폭발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하므로 조금 전의 북괴군 침략 방송을 굳이 여러분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한 농담이었다고 고백할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관은 검붉은 입술을 혀로 한번 핥았다.

“요즘 일부 몰지각한 국민이나 북괴의 하수인 같은 야당 놈들은 북풍이 어쩌고 하는데, 사실상 북풍보다 무서운 북핵 바람이 불고 있는 걸 어쩌란 말인가? 머저리 같은 놈들, 정말로 공산 독재 국가가 되어 아오지 강제수용소에 들어가 이빨과 손발톱을 다 뽑힌 채 시달려 봐야 정신을 차릴까! 흠…여러분, 내가 이런 얘길 하는 건 아까 아침에 출근하다가 기막힌 꼴을 당했기 때문이다. 새파란 학생 년놈들이 플랑카드를 들고 삐약삐약 외치고 있는데, 뭐라고 한 줄 아는가? ‘우리는 형제다! 북한을 선거판에 끌어들이지 말라!’ 이러는 거야. 세상에 원! 깡촌 철부지 애들이 그런 생각까지 할 리는 없고, 분명코 남파 간첩 놈들이 꾀어서 밀봉 교육을 시킨 것이겠지. 내가 차창을 열고 타일렀더니 민족 반역자라고 소리치며 침을 땅바닥에 뱉더군. 마치 내 얼굴에 뱉는 느낌이었어. 독초는 어린 싹부터 없애 버려야 해서 경찰서에 처넣어 두고 왔는데…… 그 개썅 호랑말코 겉은 년놈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이가 갈리는군. 옛날 같으면 자동소총으로 드르륵 갈겨서 끝장내 버렸을 텐데…….”

하루치 식량으로 사흘을 버티다

교관은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청운은 지그시 그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 학생들이 철부지 같은 애라면 나도 역시 애겠네. 그런데 왜 국가에서 철부지 애들을 속여 산중으로 데려와서는 짐승같이 만들고 있는 걸까? 거짓말쟁이들! 지난번 대선에서도 그랬고 이번 총선에서도 여당이 불리할 것 같으니까 정부가 나서서 북풍 몰이를 한다던데…….’

깊은 산중에 고립된 상태에서 어찌 그런 풍문이 돌았을까? 청운은 약간 의아스럽기도 했다. 아마도 누군가 지어낸 헛소문이거나 혹은 어느 쓸쓸한 기간요원의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말이 꼬리를 쳤는지도 몰랐다.

교관의 입귀가 어느새 올라가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여러분! 아무튼 여러분들은 그런 개소리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조국의 간성으로서 애국혼을 발휘해 귀신들을 물리쳐 버리기 바란다. 앞으로 여러분은 임무수행 중 북괴 방송이 지껄이는 허무맹랑한 감언이설에 홀려 넘어갈 수도 있으며 혹은 체포돼 회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 만일의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여러분은 초인간적인 훈련을 받아 온 것이다. 잠시 후부터 최종적인 훈련이 실시된다. 훈련시의 땀 한 방울은 실전 때의 피 한 방울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부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모두 살아 돌아오길 바란다!”

어느덧 연병장에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교관은 번개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조교가 나섰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지급하는 비상식량은 단 하루치뿐이다. 더 이상은 없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은신해서 생존해야 한다. 이것은 실전상황과 같은 훈련임을 명심하라! 조교들이 대항군으로 변신해 너희들을 수색한다. 그 전에 발각되는 자는 사흘 동안 빠삐용 형벌에 처하겠다. 발각은 곧 죽음과 같다!”

대원들은 완전군장을 재차 점검한 후 검은 모자 조교들의 인솔에 따라 깊은 산중으로 5리 쯤 행군해 들어갔다. 숲이 울창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고참 조교가 감정이 없는 어조로 말했다. “지금부터 생존 훈련에 들어간다. 뱀처럼 이동하여 두더지처럼 은신해야 한다. 대항군 조교들의 수색은 밤 8시부터 시작된다. 총알을 발사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수색 중에 총검이나 죽창으로 땅바닥을 찌르게 되니 참고하기 바란다. 사흘 후 잠적 해제 방송이 개시되면 한 시간 이내로 바로 본부까지 도착해야 한다. 신속정확! 즉 은밀한 곳에 비트를 파고 잠적하는 건 좋지만, 너무 멀리 벗어나는 건 일종의 도망과 같다는 얘기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김영권 작가

작가: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취재해서 르포 시장의 하루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현재는 지옥극장 시리즈 제3탄 몽키하우스를 집필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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