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최근 들어 사회 전반에 걸쳐 성차별·성희롱 사건들이 잇따라 자행되면서 위기의식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서울시내 12개 대학 및 20개 단체가 모여 ‘펭귄 프로젝트’라는 반차별운동을 기획했다.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박힌 비뚤어진 성의식에 경각심을 심어주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취지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에서는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들의 반란’ 행사가 개최됐다. 펭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시민들에게 직접 목소리를 내고 본격적인 운동을 펼치기 위한 첫 행사였다.

이날 행사는 저녁 6시에 시작돼 공연과 선언문 낭독, 그리고 신촌 유플렉스에서 이화여대 정문까지 행진하는 ‘달빛 아래 허들링’ 행사로 마무리됐다. 펭귄 프로젝트 기획단은 선언문 발표를 통해 “지금 여기, 대학에는 평등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대학을 바꾼다”라고 말하며 여성에 대한 성차별 문제와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날 행사에는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찾아온 시민 등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빛냈다.

행사를 주관한 펭귄 프로젝트 기획단의 김영길(27) 사무국장은 “대학사회가 점차 정치적인 것을 거부하는 분위기, 말하자면 토론과 성찰을 멈춘 분위기임에도 대학 내 성폭력이라는 문제로 200명이 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흔하지 않다”며 “펭귄프로젝트의 콘셉트인 ‘허들링’(펭귄들이 서로 붙어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처럼 이번 모임이 딱 그런 분위기였다.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고 많이 웃으며 연대의식을 느꼈다”고 전했다.

유래

‘펭귄 프로젝트’는 성폭행과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낸 ‘토마 마티외’의 저서 <악어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됐다. ‘악어 프로젝트’는 성문제에 대한 현실적이고 생생한 고발로 프랑스 사회에서 정치인들과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펭귄’이 가진 속성이 더해져 ‘펭귄 프로젝트’라는 명칭이 탄생했다. 펭귄은 사냥을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가장 먼저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이 나오면 일제히 따라 들어가곤 한다. 이처럼 의식 있는 대학생들이 선구자적 역할을 해 학내 성차별·성희롱 문제를 먼저 나서서 문제제기하자는 의지가 담겨있다.

또 펭귄은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무리의 안쪽과 바깥쪽의 자리를 바꿔가며 체온을 유지하는 ‘허들링’이라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연대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를 극복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인권네트워크 <사람들>이라는 대학생 단체에서 반차별운동에 대한 움직임이 일었고 프로젝트를 구상해 여러 대학의 학회와 페미니즘 모임이 제안했다”며 “대학문화에 불편함과 불평등함을 느끼고 있는 이들, 대학이 변하길 바라는 이들을 모아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펭귄 프로젝트에는 경기대 <경기문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페미니즘소모임 <흰>, 국민대 성소수자동아리 <큐비닛>, 서강대 경제학과 학회 <담다디>, 서울대 페미니즘모임 <지금, 여기: 관악의 페미들>, 서울시립대 사회인문학회 <하울> 등 서울 시내 12개 대학 2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단기간이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미 여러 언론에 펭귄 프로젝트에 대한 활동이 소개됐으며 이를 보고 여러 단체에서 토론회 참여나 또 다른 연대를 제안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에 펭귄프로젝트 기획단은 성차별 근절과 인식개선을 위해 더 좋은 기획과 행사를 구상 중에 있다.

만연한 성범죄·성차별

이처럼 대학생들이 연대하고 손수 목소리를 낸 데는 그만큼 우리사회에 성차별·성범죄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해 5월 발생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은 피의자 A씨의 살인 동기가 ‘여성 혐오’에서 기인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에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물결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설상가상 이 마저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사회에 일방적인 성차별과 비뚤어진 가치관이 얼마나 만연해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균관대학교에 재학 중인 신민주(24/여)씨는 “펭귄들의 반란 행사에서 사용할 구호를 제안받기 위해 게시물을 설치했는데, 오히려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말을 쓰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 내 성관련 사건사고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월 건국대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준비 과정에서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를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같이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고 뒤풀이로 이어진 회식자리에서 남학생 A(26)씨가 여학생 B(21)씨를 성추행한 것이다.

SNS를 악용한 성희롱도 심각하다. 지난 3월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는 SNS상에서 남학생들이 같은 과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희롱해왔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모 학과 OO학번 남톡방(남자 단체 카카오톡방) 내 성희롱을 고발합니다’라는 익명의 대자보에 따르면 “OOO 성격에 OOO 얼굴에 OOO 가슴이지”, “OOO면 108배 하고 먹는다” 등의 원색적인 성희롱이 무려 2년 이상 지속됐다.

이밖에 고려대, 동국대 등 지성의 광장이 돼야 할 대학교에서 오히려 성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강남식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현재 대학마다 성범죄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교육을 통해 성평등 의식을 개선하고 학내 조직 문화를 바꿔나가야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성범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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