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권력’과 ‘미래 권력’ 대충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논란에 전면으로 서게 되면서 친이-친박 간 갈등이 최고점에 이르렀다.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두나라당’이라는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분당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세종시 문제는 계파 수장인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정치명운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세종시 수정안의 통과 여부에 따라 이 대통령은 레임덕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박 전 대표는 차기 대선 예비주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가에서 세종시 문제가 현재권력과 미래권력간 쟁탈전으로 해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여권에선 벌써부터 세종시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데 입을 모은다. 18대 총선 공천 파동과 지난해 미디어법 파동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여권 인사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대권 승부수 띄운 박근혜 ‘정치적 소신’으로 여론 지지율 상승세

MB, 여론 홍보전과 친이 총동원한 ‘친박 맨투맨 마크’로 속도전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수정안 반대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수정안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 7일 원안을 배제한 수정안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던 것. 사실 박 전 대표는 이날 반대 입장 피력에 앞서 허태열 최고위원으로부터 정부 수정안 내용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는 정부 수정안 공식 발표 후에도 반대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사전에 경고한 셈이다.

수정안이 발표된 이후엔 박 전 대표의 작심발언이 이어졌다. 평소 기자들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던 박 전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부의 수정안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대통령에 대한 반박도 잊지 않았다. “정치논리”라고 원안 고수 입장을 비난한 이 대통령에게 박 전 대표는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고 받아쳤다. 충청지역을 설득하라고 한 얘기는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라는 뜻이라는 게 박 전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을 위한 일”이라고 설득했지만 박 전 대표는 요지부동이다. 충청도민의 여론이 호전될 경우라도 “입장엔 변함이 없다”는 박 전 대표의 직격탄에 결국 친이계 의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박계에서도 “발언 강도가 전에 없이 강하다”며 놀라했다. 이에 따라 정가에선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로 대권 승부수를 띄웠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즉, 박 전 대표가 강경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다.


“수정안 반대, 입장 변화 없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원칙주의자, 약속을 지키는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따라서 박 전 대표에게 세종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국민과의 약속이나 다름없다. 만약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는데 동의하면 다음 선거에서 아무리 자신이 좋은 공약을 내걸어도 야당으로부터 두고두고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국민들의 신뢰도 얻기 어렵다.

박 전 대표가 이 같은 전례를 한번 겪어봤던 만큼 입장 선회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지난해 7월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대해 반대를 외치다 수용입장으로 변경했는데, 이때 박 전 대표의 지지도가 잠시 떨어졌다는 것. 따라서 이전 깨끗한 이미지를 회복하고, 약속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는 게 차기 대권싸움에서 유리하다고 여권 인사들은 주장한다.

물론 역풍도 배제할 순 없다. 계속 밀어붙이기를 할 경우 타협을 모르는 ‘독불장군’처럼 비춰질 수 있다. 경제위기 선방, G20정상회의 유치,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주 등 이 대통령의 ‘일하는 이미지’와 대조되면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이미지로 보여 지게 될 경우 박 전 대표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여론의 흐름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정안 찬성과 반대의 여론이 들쑥날쑥 요동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신뢰를 강조하는 박 전 대표의 태도가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국민들은 수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수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박 전 대표에 대해 ‘정치적 소신’으로 보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MBC가 지난 13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는 응답자 가운데서도 40%가 박 전 대표를 긍정적으로 얘기했다.

이에 따라 설사 세종시 여론이 좋아져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된다 해도 박 전 대표에게 손해는 없다는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오히려 충청도민들의 지지를 얻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득이 점쳐지고 있다.

물론 친박계에선 “절대 정략이나 손익의 차원이 아니다”면서 이를 부정하고 있지만, 영남에 확고한 지지기반을 둔 박 전 대표가 충청 민심마저 얻는다면 차기 대선에서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는 전망에는 거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수도권은 지지가 갈리는 상황인 만큼 충청이 캐스팅보트가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박 전 대표의 강경 태도가 곧 정운찬 총리에 대한 견제전략이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대권주자로서의 정 총리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지만 세종시 성적표에 따라 박 전 대표에게 만만치 않는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도 세종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이후 정 총리와 정몽준 대표 등 친이계 후보군의 역할이 커지면서 언론 노출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선 박 전 대표의 독주를 막을 차기 후보군이 형성되는 게 나쁘지 않다. 반면 박 전 대표에겐 대권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정 총리를 확실히 낙마시키고 친이계 후보군을 압도해 후한을 없애야 하는 것.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논란에 전면승부를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세종시 수정안 후폭풍 예의주시


이 대통령 역시 세종시 수정안까지 발표한 이상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수정안이 관철되지 못할 경우 집권3년차 돌입과 동시에 조기 레임덕에 시달리게 될 전망이다. 민심과 당심이 흔들리면서 권력의 중심이 박 전 대표로 이동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이 대통령으로선 향후 국정운영을 위해 세종시 논란을 빨리 잠재워야 한다.

이를 위해 당초 정치권 안팎에선 지난 14일 이 대통령이 세종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에게 수정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원안 고수와 메가톤급 발언이 다시 나오면서 대국민설명회 시점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시 대국민설명회가 국민원로회의로 대체된 셈이다. 이날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남조 공동의장, 김수한 위원을 비롯한 37명의 국민원로회의 위원들을 초청해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연기하며 세종시 수정안 후폭풍을 예의주시하는 사이 여권 주류인 청와대 참모 및 친이계의 움직임은 바빠졌다. 박 전 대표 설득에 총력 기울인다는 방침 하에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 주호영 특임장관, 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등이 각자 가능한 시기에 박 전 대표를 만나 수정안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충청권 민심을 잡는 방안으로 이완구 충남지사와 심대평 의원 등 충청권의 핵심 인사들을 연쇄 접촉해 우군으로 만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친이계 전체가 각자 친한 친박계 의원들을 ‘맨투맨 마크’하면서 설득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여의치 않을 경우 이 대통령이 직접 박 전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요즘 친이계 안팎에선 ‘지성이면 감천’,‘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를 설득할 특별한 수단은 없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그래도 안 된다면 하늘과 국민의 뜻이라는 것. 다만 주류 측은 충청권 여론이 수정안 찬성으로 돌아서면 박 전 대표의 입장과 관계없이 수정안을 지지하거나 또는 적극 반대하지 않을 친박계 의원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찬성 여론이 우세해지는 시점은 일단 설을 쇠고 난 이후인 2월20일께로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명절은 대체로 여론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해왔다는 점에서다. 여론이 좋아진 상황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 결정을 위한 투표를 하면 친박계 의원들도 개인적 소신에 따른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주류 측의 주장이다.

따라서 친이계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은 친박계 의원들이 개인의 소신에 맞게 잘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결국 여론 홍보가 관건인 셈이다. 이에 따라 친이계에선 여론의 지지를 지렛대로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수정 역시 고민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충청 ‘제2의 호남’될까 고심


주류 진영이 세종시 수정안 입법에 속전속결로 나서고 있지만, 친박계에서 요지부동이라 현재로선 세종시 논란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박 전 대표가 수정안에 대한 입장변화 여지를 차단한 만큼 당분간은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여론의 흐름을 지켜볼 전망이라 문제해결이 뚜렷하지 않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이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입장이 달라질 게 없다”는 의사를 피력한 상태다.

때문에 일부에선 국민투표나 여론조사로 풀자는 제안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당 지도부의 반대가 심하다. 세종시 문제로 국민투표를 하면 이 대통령 반대진영이 총력으로 가세해 사실상 대통령 신임투표로 내용을 변질시키고, 이로 인해 정국이 급변하게 된다는 우려에서다.

결국 국민투표는 충청권을 ‘제2의 호남’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론조사 역시 참고자료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굳이 국민투표와 여론조사를 해야 할 경우 이를 대비해 여론 홍보전에 힘을 쏟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일각에서 제기되는 ‘분당설’ 사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분당은 친이-친박 모두 재기 불능 수준의 깊은 상처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대한 애착과 소신이 뚜렷해 탈당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지난 2000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박 전 대표가 또 한 번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여졌다. 친박계 의원들 상당수도 “나가면 너희(친이계)가 나가지, 우리가 왜 나가느냐”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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