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은 혼자족 체험 당사자인 기자가 7일 서울 종로의 한 술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모습. 오른쪽은 서울 광화문 세븐스프링스에서 쓸쓸히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이다.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혼밥(혼자 먹는 밥)이라는 말이 생겨나더니 혼술(혼자 먹는 술), 혼놀(혼자 노는 일), 혼공(혼자 보는 공연) 등 ‘혼자족’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의 1인 가구수 비중은 전체 가구의 27%를 넘어섰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경제활동을 의미하는 ‘솔로 이코노미’도 급부상하고 있다.

혼자 즐길 수 있게 최적화된 맛집, 술집, 영화관 등이 즐비하다. 트렌드로 자리 잡은 ‘혼자족’으로 1주일간 살아봤다.

레벨

최근 포털사이트에 혼밥과 관련된 재미난 내용이 올라온 적이 있다.

혼밥 레벨1부터 9까지 단계를 지정해 혼밥하는 사람들의 내공을 따져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레벨1은 혼자 먹기에 별 부담이 없는 편의점에서 음식 먹기, 레벨3은 패스트푸드점, 레벨7은 패밀리레스토랑, 마지막 레벨9는 술집에서 혼자 술 먹기 등이다.

혼자 문화를 만끽하기로 했으니 다양한 레벨을 경험해보고 싶어 일단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사실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러 번 해본 적이 있어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가게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고 1인용 테이블과 의자도 많이 비치돼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자연스러웠다. 혼밥 레벨3까지 정복 완료다.

이번엔 레벨7 단계인 패밀리레스토랑에 도전하기 위해 지난 7일 정오 세븐스프링스 서울 광화문 지점을 찾았다. 평소 패밀리레스토랑을 자주 가는 편도 아닌데다 혼자 가려니 내심 신경이 쓰였다.

괜히 레벨7단계가 아닌 듯했다. 이유 불문하고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에서 안내 직원이 “몇 분이세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혼자라고 말하는 기자를 직원은 ‘단독고객’이라고 불러줬다. 혼자 온 고객들을 위해 미리 정해진 용어였다. ‘혼자 오신 손님’, ‘1인’ 같은 표현보다 훨씬 대우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1인용 좌석은 마련돼 있지 않아 4인용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한쪽이 벽으로 막힌 구석진 자리였다. ‘혼자여서 이 곳에 앉힌 건가’란 생각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얼핏 보기에도 200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공간이 사람들로 붐볐지만 혼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사람은 기자뿐이었다. 알바생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단독고객은 하루에 많게는 5명까지도 온다”고 말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의 혼밥이었지만 의외로 자유롭고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1시간가량 먹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편안히 먹었다.

같이 먹는 사람과 식사 시간을 맞춘다든지 예의, 격식을 차리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혼밥의 매력이 이런 것일까.

난색

혼밥에 자신감이 붙은 기자는 레벨9 ‘혼술’에 도전하기로 했다.

8일 저녁 7시경 서울역 인근 맛집이자 방송에도 소개된 적 있는 한 ‘닭한마리집’을 방문했다.

워낙 유명한 맛집이라 가게 안은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대감을 안고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혼자 온 손님은 안 받는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가게로서는 손해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 온 죄(?)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한차례 거절을 당한 뒤 장소를 옮겨 종로 인근 거리를 찾았다. 술집들이 즐비한 가운데 다소 조용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혼자 왔다는 말에도 점원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자리를 안내해줬다.

창가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회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바로 뒤 테이블에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괜히 기자를 쳐다보는 것 같아 무안했다.

혼술을 즐기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직원에게 기자의 뒷모습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때 뒷자리의 여성들이 “혼자 와서 자기 뒷모습을 왜 찍지”라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피했다. 아직 혼술을 자유롭게 즐기기엔 내공이 부족했다. 하지만 조용히 생각에 잠겨 혼자 즐기는 술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열창

혼밥·혼술을 정복하고 혼놀의 상징인 코인노래방을 찾았다.

요즘 들어 코인노래방, 뽑기방 등 혼자 즐길 수 있는 형태의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혼놀을 위해 찾았던 인형뽑기방(왼쪽)과 코인노래방.

코인노래방은 1인 부스에 들어가 500원에 2곡, 1000원에 4~5곡 정도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으로 청소년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1인 부스에서 부르는 것이니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한 시간에 2만원가량 하는 노래방보다 단돈 1000원에 짧고 굵게 즐기는 코인노래방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몇 곡 부르고 나니 스트레스가 말끔하게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인근 뽑기방에도 들러 인형뽑기에 3000원을 투자했지만 부족한 실력 탓에 아무것도 뽑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혼놀족들을 위한 가게들은 그야말로 혼자 놀기에는 제격이라 과연 인기를 끌 만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무하던 뽑기방이 수천개씩 생겨나고 코인노래방도 많아지는 것을 보니 앞으로 1인 가구, 혼자족을 위한 다양하고 재미난 업종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

1주일간의 혼자족 생활은 때로는 외로움, 무안함도 안겨줬지만 동시에 자유로움, 편안함, 즐거움도 느끼게 해준 값진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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