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몹쓸 일 저질렀다”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의 시민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중상 20명, 총 33명의 피해자)한 정남규(41)씨. 한때 서울 서남부 일대는 연쇄살인마 정씨로 인해 공포에 휩싸였었다. 그의 손에 희생당한 유가족들과 지인들은 울분을 참지 못해 실성하다시피 했다. 유가족들은 지금까지도 잊혀 지지 않을 고통스러운 추억에 몸서리치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천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여론, 그리고 인간으로서 저지르지 말아야 했을 인도(人道). 정씨는 2006년 9월 21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현재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연쇄살인마 정씨를 만나봤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하고 있던 여고생을 칼로 찌르거나, 귀가하던 초등학생 2명을 성폭행 후 살해하는 등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정남규(41)씨는 현재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눈치 보는 연쇄살인범
 
2006년 그가 경찰에 검거 될 당시 일부 인권론자들과 종교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를 사형시키길 원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한민국은 만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는 나라다. 어쨌든, 정씨는 지금도 사형 집행이 되지 않았다.

지난 15일 기자는 정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정씨는 ‘대역죄인’답게 면회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교도관들도 정씨를 유별나게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30분간의 기다림 끝에 3~4평 남짓한 작은 면회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면회자를 반기는 듯 한 표정도 언뜻 보였다.

그는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시종일관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는 행동을 반복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확실히 2006년 검거된 직 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정씨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교도관이 나가자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정씨가 하는 말들은 주제가 명확하지 않았고 발음이 새거나 말을 더듬는 등 의사표현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다.

정씨는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다”고 운을 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독서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로 ‘좋은 생각’이나 ‘샘물’같은 잡지다. 정씨는 “요즘엔 독서를 하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예전엔 몇 분과 편지도 주고받았지만 요즘엔 거의 끊기다 시피 했다”며 “독서가 아니면 딱히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과거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별도로 운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데 필요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정씨는 “구치소에선 따로 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같은 간단한 운동만 하고 있다”며 “거의 안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때 늦은 후회
 

또 정씨는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기독교 신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성경책을 가끔 읽는다고 한다. 그에게는 신부가 세상과 접촉하는 유일한 방법이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민간인이다. 정씨는 “기독교 신부님과 만난 뒤 조금은 생활에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한 뒤 잠시 말을 멈춘다. 그는 교도관의 눈치를 보기도 하며 면회 초기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진 표정이 역력해졌다. 몇 십초가 지나자 정씨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씨는 “알다시피 나는 과거에 몹쓸 일을 저질렀다. 잘 지내고 있으면 안되지 않나?”라며 대뜸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자가 아무런 말도 안하고 다음 대답을 기다리자 정씨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적어도 표정만큼은 후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 표정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아니, 엎질러지다 못해 증발해버린 뒤다. 정씨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자신의 과오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 단지 그는 ‘후회하죠. 잘못했죠…’라며 목소리대신 입모양으로 말할 뿐이었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정남규의 말, 말, 말>
 

아마 잡히지 않았다면

2006년 10월 2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서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범’ 정남규(41)씨의 진술은 방청객들을 비롯한 판사와 변호사의 말문까지 막힐 정도로 섬칫 했다.

정씨는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미안한 감정도 안든다. 오히려 부자를 죽일 때는 희열을 느꼈다”고 말하며 입을 열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자신이 죽인 사람을 보고 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자신이 잡힌 이유에 대해 “신은 나를 버렸다. 더 완벽한 범죄를 했었어야 됐다. 큰 놈부터 차례대로 죽였어야 됐는데…”라며 “운이 나빠서 잡혔을 뿐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도 죄를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살인을 하는 기분에 대해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은 짜릿함’이라고 설명했다. 공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분노와 치욕으로 몸서리를 쳤다고 전해진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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