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 할 망정 안주 없다"…대권행보 조기 가동(?)

▲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파동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를 밝힌 후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김수민·박선숙 의혹 대처 과정 '리더십' 도마

[민주신문=강인범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또다시 '시련의 계절'을 맞이했다. 야권의 대권 주자 중 '새정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개혁 성향이 뚜렷하다는 점을 내세웠던 안 대표가 측근들의 총선 리베이트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몰렸기 때문이다.

평소 "후퇴할망정 안주는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던 안 대표는 이번에도 '사퇴의 배수진'을 치며 '책임정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총선 후 불거진 당의 첫 위기상황에서 이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당 안팎에선 내년 대권을 위해서 세를 확장해도 모자랄 판에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4·13 총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신생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김수민·박선숙 의원의 총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6월 29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안 대표는 정치 입문 후 그동안 중요한 고비 때마다 사퇴·양보를 한 '철수 정치'의 재현이라는 얘기마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 대표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지지율이 50%가 넘었지만 박원순 변호사를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출마를 포기했다. 딘일화 과정에서 지지율 1위 후보의 양보라는 정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안철수 효과'는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한 민심의 불신과 반발이 빚은 '대안효과'로 평가됐으며 대권후보로까지 급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2012년 대선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하던 중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대선 레이스를 중단했다. 2014년 초에는 새정치연합 창당 작업 중 창당을 포기하고 민주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출범시켰다.

안 대표는 같은해 7·30 재보궐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김한길 공동대표와 함께 사퇴했다. 2015년 12월에는 문재인 더민주 대표와의 갈등 끝에 탈당했다. 이에 따라 이번 국민의당 대표직 사퇴는 안 대표에겐 6번째 '철수'인 셈이다.

▲ 4.13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으로 선거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지시 및 보고받은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27일 오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출두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책임지는 정치" 명분

안 대표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내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책임정치 구현 차원의 사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퇴 과정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총선 후 불거진 당의 첫 위기상황에서 이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뼈아픈 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당 안팎에선 내년 대권을 위해선 세를 확장해도 모자랄 판에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엿보인다.

김남수 한백리서치 대표는 "김수민 의원 리베이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대처 과정 측면에서 당 대표로서 책임 있게 못했다고 본다"며 "의혹에 대응하는 과정이 스스로 국민의당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과정이었다. 당대표로서 책임이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안 대표는 처음부터 자기 세력이나 기반이 있었던 게 아니다. 자기 세력 없이 개인 브랜드로 2012년부터 한국 정치에 여러 영향을 줬다"며 "(안 대표가 보여준) 일련의 사퇴와 탈당은 자기 세력이 없는, 자기 지도력이 약한 정치적 리더가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기의 문제였지 그런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국민의당의 거점인 호남지역에서 안 대표의 이번 사퇴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도 주목할만하다.

호남지역의 한 정치 전문가는 "총선에서 호남이 국민의당에 몰표를 준 것은 단순히 안철수를 지지한 게 아니다. 더민주와 문재인 대표에 대한 반감 속의 대체제로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선택했던 것"이라며 "안 대표의 이번 사퇴를 놓고 호남에서 극명하게 평가가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호남지역 유권자들 입장에선 허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사퇴가 국민의당 지지율 추이에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일단 안 대표 사퇴 전인 2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20∼24일 5일간 전국 2,539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1.9%, 응답률 8.4%) 국민의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0.5%포인트 떨어진 15.5%를 나타냈다.

국민의당은 5월 4주차에 20.1%를 기록한 이래 4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김수민 의혹'이 불거진 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 이후 국민의당 지지율은 4.6%포인트 떨어졌다.

대권주자로서 안 대표 지지율도 궁금해진다. 리얼미터가 호남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안 대표는 전주 20.2%에서 16.7%로 3.5%포인트 하락하며 2위로 처졌다. 반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주 18.5%에서 23.1%로 4.6%포인트 상승하면서 1위에 올랐다.

▲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역량강화 워크숍에서 평가 및 실천계획 보고를 듣고 있다.
대표직 사퇴… '큰 그림' 위한 일보 후퇴(?) 

평소 "후퇴할망정 안주는 없다"는 행보를 이어왔던 안 대표는 이번에도 '사퇴의 배수진'을 치며 '책임정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안 대표가 향후 어떤 활동으로 대중들의 관심 영역에 머무를지 주목된다.

일단 안 대표가 대표직을 스스로 내던졌으니 더 이상 당 지도부 구성에 관여하거나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은 표면적으론 삼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의 간판인 안 대표가 현안을 도외시한 채 외부 활동에만 매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자신이 공천한 인물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바로 공개적인 외부 활동에 나서는 모습도 부자연스럽다.

이 때문에 안 대표로선 일단 문재인 전 대표의 '히말라야 트레킹' 같은 이벤트성 일정을 소화하기는 무리일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로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에서 당분간 공개 활동을 자제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칩거'에 돌입하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안 대표가 4·13 총선을 전후해 '일하는 국회'를 주창해온 만큼, 칩거에 들어설 경우 자신이 한 약속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셈이 된다.

이 때문에 안 대표는 일단 일반 의원 신분으로 의정 활동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이 주장했던 교육혁명 등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 활동에 주력하리라는 게 중론이다. '조용한 대선 행보'를 평의원으로 시작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번 사퇴가 '김수민 사태'라는 악재로 인한 불명예 퇴진 성격인 만큼, 2017년 대선 가도를 고려하면 분위기를 반등할 계기는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 비리 의혹으로 물러난 당대표라는 이미지를 대선 전까지 계속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안 대표가 2011년 일었던 '안철수 신드롬' 재현을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강연 정치 등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안 대표는 이달 초부터 대학가 강연 일정을 잡는 등의 행보를 보여 '강연정치 재개'라는 관측을 낳은 바 있다.

한편 정치권에선 안 대표의 이번 사퇴가 향후 대선 가도를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직을 내려놓음으로써 김수민 사태에 대해 당 대표로서 질 수 있는 가장 강한 수준의 책임을 졌다는 명분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철수 대표의 사퇴와 관련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건이 법적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 기간 동안 대표를 하고 있으면 족쇄가 되고 상처는 깊어진다"면서 이 같이 피력했다.

그는 또 김수민 사태에 대한 지금까지의 국민의당 대처를 두고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사건이 터졌을 때 바로 단호히 대처했더라면 대표 사퇴라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사건의 법적·정치적 심각성을 몰랐던 것"이라고 질타했다.

한 야권 관계자도 "안 대표로선 손해 볼 게 없다"며 "당대표직을 유지했으면 수사에서 뭐가 나올 때마다 계속 욕을 먹었을 텐데 이제부턴 '할 일은 다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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