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 받들어 ‘민주세력’ 태동 움직임


 

▲ YS는 지난 10일 문병에 이어 18일 DJ의 빈소에도 가장 먼저 찾아 이희호 여사를 위로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늦은 오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DJ의 빈소를 찾았다.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헌화를 한 YS는 조문 후 “우리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지셨다. 오랜 동지이자 경쟁자가 돌아가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DJ와 함께 한 50년 애증의 세월을 회고할 때에는 “(생각나는 게) 너무 많다. 평생을 같이 해서…”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DJ의 죽음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YS의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난 셈. 불과 8일전 병원을 찾아 DJ와 화해를 선언했지만, 고인의 육성으로 화답을 듣지 못했던 만큼 YS의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YS의 문병으로 DJ의 생애 마지막 1주일은 지난 세월의 갈등을 정리하는 화해와 포용의 자리가 마련됐다. DJ와 YS를 각각 상징하는 동교동과 상도동이 다시 한번 손을 맞잡았다.


두 정파의 화해를 넘어 호남·경남으로 고착된 지역구도 해체
9월 초 민추협에서 DJ-YS 화해 의미 계승 및 발전 방안 논의


화해의 물꼬를 튼 YS의 병문안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지근거리에서 YS를 보좌하는 김기수 비서실장도 당일에서야 YS의 병문안 결정을 전해들었을 정도다. 김 비서실장은 “DJ께서 오랫동안 병석에 계시는 상황에서 일요일날 예배를 보신 뒤 느끼신 게 있으신 것 같다. 아침에 운동하고 오셔서 바로 가자고 하셨다”고 밝혔다.

“DJ도 기뻐하실 것”

예기치 않은 YS의 병문안에 동교동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DJ와 YS는 지난 5월 국민장으로 치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조우했으나 서로 외면할 정도로 숙명적 라이벌 관계가 최근까지도 이어져왔던 것.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있은 뒤 DJ가 민주주의의 위기와 현정권의 독재를 지적하자 YS는 “틈만 나면 평생 해오던 요설로 국민을 선동한다”면서 “DJ는 이제 자신의 입을 닫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달 DJ가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두 사람간 기류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호전 대신 위급 상황이 여러 차례 발생되면서 DJ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자 YS가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 지난 10일 YS는 DJ가 입원 치료 중에 있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YS는 이날 이희호 여사와 15분간 면담하며 DJ의 병세를 꼼꼼히 물었다. 배석한 의료진들에게 “세상엔 기적이란 게 있다. 최선을 다해 치료해달라”고 당부의 말도 남겼다.
YS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답했다. 물론 이에 대한 DJ의 화답은 듣지 못했다. 이희호 여사가 “DJ도 기뻐하실 것”이라는 응수에 만족해야 했다.
‘미완’의 화해 선언이지만 동교동과 상도동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양진영에서는 화합의 필요성에 대해 진작부터 동감을 표시해왔던 터였다. 지난해 10월부터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가 세결집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바로 DJ와 YS의 화해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번 DJ와 YS의 인간적인 화해가 정치적인 화해로까지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화해란, 동교동과 상도동의 화해지만 넓게는 두 정파의 갈등으로 고착된 지역구도를 깨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진정한 의미의 화해로 해석될 수 있다.

정치적 화해로 발전

이에 대해 상도동의 핵심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는 “정치적 측면에서는 우리 후배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고, 오랜 시간 YS의 대변인을 맡아온 박종웅 전 의원 역시 “화해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선 양측 계파 사람들이 각별히 신경 쓰고 노력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화합의 분위기는 DJ의 서거 이후 한층 더 적극성을 띠고 있다. 동교동과 상도동으로 분류된 옛 동지들이 DJ의 빈소로 속속히 모여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구체적인 화해의 움직임은 향 후 민추협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민추협의 김상현 공동 이사장은 “다음달 초 민추협 모임에서 두 분의 정치적 화해를 어떻게 계승·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