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담배 판친다”


 

▲ 부부 보따리상이 지하철 1호선 종로3가 11번 출구 앞에서 불법 유통된 담배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가짜 담배를 구입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보건복지부 김근태 장관이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산 가짜담배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던 영국산 담배 던힐이 최근 또 다시 중국 보따리상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 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내 담뱃값이 크게 오르자 차익을 노린 담배 밀수범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부산세관은 중국과 북한 등에서 제조한 것으로 보이는 가짜 양담배를 대거 밀반입 하려던 조직을 적발하기도 했다.
또 밀수 규모가 갈수록 조직화·대형화되고 있으며, 수출용 면세 담배를 국내로 빼돌리는 등 밀수수법도 대담해지고 있다. 밀수입한 담배 중에는 건강에 치명적인 가짜담배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정부는 지난해 말 500원 올린 담뱃값을 추가로 500원 인상한다는 법안을 검토중이다.
담뱃값 인상 소식을 접한 일부 애연가들은 ‘금연’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담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귀를 쫑긋거린다.

정상가보다 낮은 값으로 애연가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불법담배는 서울시 종로 종묘공원 부근을 비롯해 주요 지하철역 주변 등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동대문·남대문 등 대형 도매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판매되는 담배는 정상가보다 10~20% 정도 싸다.

“짝퉁담배 맛 보세요”

지난 8월 30일 오후 4시 20분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앞.

귀금속 전문점이 몰려있는 종로3가 거리에는 안경, 모자, 건강식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다. 그 중 유난히 한 좌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곳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건강)신발깔창, 구두약 등을 팔고 있었다. 여느 노점상인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좌판 한 귀퉁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국산담배 에세(Esse), 레종(RAISON), 이프(if)를 비롯해, 양담배 카니발(CARNIVAI)과 북한산 평양담배 등이 한두 갑씩 진열돼 있었다. 좌판 밑엔 짝퉁담배가 들어있는 흰색 쇼핑백이 숨겨져 있었다.
짝퉁담배 불법매매는 의외로 간단했다. 구경꾼들이 원하는 담배를 말하면 상인은 숨겨놓은 쇼핑백에서 담배를 한 갑씩 꺼내 파는 식으로 이뤄졌다.

기자는 상인에게 “말보로 라이트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상인은 “말보로는 구하기 힘들다”면서 “지금이 제일 구하기 힘들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빨라도 다음 달 되야 말보로나 던힐 같은 양담배를 구할 수 있다”며 “(카니발을 가리키며) 필리핀에 수출하는 담배니 이거 아니면 순한 이프를 펴 보라”고 권했다. 카니발과 이프는 1,500원으로 저렴했다.

한 갑씩 구입한 기자는 “평양담배는 직접 북한에서 건너온 게 맞느냐”고 묻자, 그 상인은 “동대문에서 띄어오는 거라 잘 모르겠다”며 “100원 남기고 하는 장산데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느냐”고 대답했다.

이때 한 사람이 다가와 “레종 세 보루 있느냐”고 물었고, 상인은 귀찮은 듯 “일곱 갑 밖에 없으니 가져가려면 가져가고 말려면 말아라”며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다. 파는 상인보다 사는 사람이 더 아쉬운 모습이다.

국산담배는 좌판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시중에서 2,500원에 판매되는 담배가 2,100원에 판매되니 빨리 팔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좌판에서 에세 7갑을 한꺼번에 구입한 윤모(47·남)씨는 “가끔 시간 날 때 이렇게 나와 담배를 사곤 한다”며 “때맞춰 안 가면 못 살 때도 많다”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 11번 출구 앞.
부부로 보이는 보따리상인이 두 개의 검정색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갑작스럽게 차려진 좌판에는 원(The One), 에세, 이프, 레종, 던힐 등 갖가지 담배들이 다 있었다. 지하철 출구 앞에서 좌판을 연 탓인지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렸다.

이번에도 기자는 “말보로 라이트 있느냐”고 물었고, 남자는 “한 보루에 22,000원인데 보루로 살 거면 가져다 주고 낱개로 살 거면 던힐을 사가라”고 말했다.
“한 갑 당 2,100원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곧 담뱃값 오른다고 해서 하루종일 2,200원 주고 팔았다. 싫으면 딴 데 가보라”며 잘라 말했다.

가짜 담배 밀수 급증

담배 밀수가 급격히 확산되자 관세청은 최근 담배를 밀수 집중관리 품목으로 선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8월 25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적발된 담배 밀수는 159건, 62억 5,400만원 규모로 조사가 진행중인 26억원 대 밀수를 합치면 그 규모는 88억원을 훌쩍 넘는다. 작년 이맘때 보다 5배 이상 급증한 것.

담배 밀수가 급증한 원인에 대해 관세청은 “각종 세금이 담뱃값의 50% 이상을 차지해 가격이 오를수록 밀수에 따른 이익도 커지기 때문”이라며 “최근 이 같은 차익을 노리고 수출용 국산 면세담배를 선적과정에서 빼돌려 시중에 유통시킨 밀수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조직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에세라이트 등 수출용 면세담배 125만갑, 시가 22억 5,000만원 상당을 몰래 빼돌려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가짜담배 밀수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 1월 북한 나진항에서 선적돼 부산으로 들어온 화물에선 가짜 말보로 174만 6,000갑과 마일드세븐 77만 6,000갑, 쓰리 파이브 44만 1,500갑 등 시가 59억원 상당의 가짜 담배가 적발되기도 했다. 가짜담배는 전문가조차 육안으로 쉽게 진위를 구분하기 어려워 일단 시중에 깔리게 되면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담배 밀수가 급증함에 따라 지난 5월부터 담배를 밀수 주종 품목으로 등재, 실시간으로 운영되는 밀수동향관리시스템을 통해 밀수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배 밀수와 관련 KT&G 김종근 과장은 “차익을 노린 밀수 조직이 불법 유통된 담배를 유통시키는 것”이라며 “계속된 담배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길거리에서 파는 국산담배와 외국담배는 가짜일 확률이 높다”며 “제조 과정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정품보다 품질이 떨어지며, 인체에 매우 해롭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한 연구소가 가짜 양담배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정품보다 타르가 2배 이상 높으며, 이는 요즘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저타르 제품에 비해 최고 13배나 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담배를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서 판매할 경우 담배사업법 위반으로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현행법은 중앙 공급책에 대해선 50만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하도록 돼 있어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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