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실태


 

공공기관과 금융사 등을 사칭해 돈을 뜯어내는 신종사기수법인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건이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의지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대전의 한 빌라에서 전화사기로 거액의 돈을 날린 4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하면 지난달 7일에는 충북 청주에 사는 70대 노인이 금융권직원을 사칭한 전화를 받고 560만원 상당을 날린 뒤 괴로워하다 자살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신분도 일반서민들에서 법원장, 언론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보이스피싱은 나이와 성별,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그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보이스피싱의 현주소와 향후 대비책에 관해 살펴봤다.

“OO경찰서 OOO형사인데요.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협조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니 현금지급기 앞에서 제가 말하면 그대로 따라하시면 됩니다” 최근 이와 같은 유형의 전화를 받고 피해자가 직접 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 내고 있는 보이스피싱이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구 동부경찰서는 지난 5월 31일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자신을 신용카드사나 검찰청 직원으로 사칭해 은행 계좌의 돈을 빼낸 혐의로 A 씨(21) 등 유학생 출신 중국인과 대만인 10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5월 16일 중국의 다른 공범을 통해 김모 씨(62)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신용카드 명의가 도용돼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며 “계좌의 돈을 옮겨야 한다”고 김 씨를 속여 990만원을 빼내는 등 지난 5월 27일까지 모두 17명에게서 1억7,0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다.

이들은 주로 신용카드 회사나 검찰청 직원을 사칭해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도용됐다며 겁을 줘 금융기관 현금지급기 앞으로 유인한 뒤 돈을 이체시켜 빼내는 수법으로 돈을 뜯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경북지방경찰청 외사계는 지난달 30일 금융기관과 국세청, 경찰, 검찰 등을 사칭해 수억원대의 현금을 가로챈 중국인 B 씨(34) 등 2명을 붙잡아 이중 최 씨를 상습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B 씨 등은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국내인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금융기관이나 국세청, 경찰, 검찰 등을 사칭한 뒤 금융사고를 예방해 주겠다고 속여 모두 14차례에 걸쳐 7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중국 현지에 콜 센터를 운영하면서 서로 면식이 없는 사람들을 인출, 운반, 관리, 송금책 등으로 나눠 조직적인 운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 검찰사칭 7억 가로채

경북 포항북부경찰서는 지난 8월 1일 포항지역 신용불량자와 일용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타인명의로 통장을 개설해 사용하는 속칭 대포통장을 모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제공한 C 씨(27) 등 대포통장 모집책과 판매자 등 총 7명을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최근까지 포항지역에 거주하는 D 씨(28) 등 신용불량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개당 20만원을 주고 대포통장 90개를 매입해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판매한 혐의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이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판매한 대포통장과 관련해 12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금액만 7,8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 사건들은 최근 발생한 보이스피싱의 피해사례다.

위 사건들의 피해액수만을 보더라도 보이스피싱에 관한 피해규모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보이스피싱과 관련돼 경찰에 붙잡힌 사람들도 외국인에서 최근에는 내국인으로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화를 통해 개인정보를 낚아 올린다는 뜻의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수사기관 등을 사칭해 세금환급이나 카드대금연체 등을 빌미로 송금을 요구하거나 개인정보를 알아내 돈을 뜯어내는 신종수법이다.

과거에는 국내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범행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인을 포함해 대만인과 한국인들도 범행에 가담해 국가를 넘나드는 국제적인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 8월 2일 발표한 보이스피싱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일부터 올 7월 31일까지 최근 14개월 동안 전국에서 4,325건의 보이스피싱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중 2,832건을 적발해 1,449명을 검거했다. 피해액도 무려 33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적발되지 않은 것도 많기 때문에 피해액수는 그 이상이 될 전망이다.

자료를 근거로 발생율을 분석하면 전국에서 매일 평균 10건, 매달 305건씩 보이스피싱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발생건수를 월별로 비교하면 지난해 73건으로 시작해 계속 증가치를 보여 올해 1월에 699건의 사건이 발생해 최고를 이뤘다. 이후 올해 2월에는 118건으로 잠시 줄어들지만 올해 3월(550건)과 4월(579건)에는 다시 상승해 올해 1월 다음으로 사건발생이 가장 많았다.

매달 305건, 피해액 339억

경찰청은 특히 지난 6월과 7월 두 달간 특별단속을 실시해 모두 965건의 관련범죄를 적발하고 1,002명을 검거해 이중 188명을 구속했다.

특별단속 기간에 무더기로 붙잡힌 사기범들을 역할별로 분류하면 사기에 이용된 계좌를 자기 이름으로 개설해 준 통장 명의인이 719명으로 가장 많았고 챙긴 돈을 외국으로 송금하는 인출·송금책이 193명, 범행에 이용할 예금계좌를 모집하는 통장 모급책이 90명이었다. 국적별로는 중국인이 210명, 대만인 106명, 한국인 685명으로 나타났다.

중국인은 중국과 대만, 한국을 오가며 인원을 모집, 관리, 범행과 관련된 기타 준비를 담당하고 대만인은 주로 인출과 송금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한국인은 대부분 범죄이용계좌를 개설하는 작업(대포통장 매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활동이 이렇게 국제적인 분업체계 속에서 가능한 이유는 범행에서 중간역할을 담당하는 현지 대만인들이 국내 입국이 용이한 점을 들 수 있다.

경찰청 수사국 지능범죄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대만 현지에서 모집된 대만인들이 한국에 와서 대부분 송금하는 역할을 한다”며 “그들이 한국으로 1개월 간은 무비자로 들어올 수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고 말했다.

또 “중국에 모여서 범행을 저질러 발각됐을 경우 범인 모두가 경찰에 붙잡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국과 대만으로 조직을 양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이들의 범행이 얼마나 치밀한 준비 속에서 이뤄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고 전했다. 여기에 한국인들이 대포통장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면서 범행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화하는 범행수법

보이스피싱의 범행수법도 최근 급격하게 진화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5월 28일 지방의 모 법원장이 전화 한 통에 거액을 사기 당한 사건은 보이스피싱이 이제는 금융기관 등을 사칭하는 기존의 방법을 넘어서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됐다.

범인은 법원장의 집에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법원장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집에 전화를 하지 말라”고 한 뒤 법원장에게 “아들이 우리 손에 있으니 살리고 싶으면 500만원을 지정한 계좌로 보내라”는 말과 함께 살려달라는 비명소리를 들려줬다.

당황한 법원장은 당시 이 소리를 아들의 목소리로 착각, 5차례에 걸쳐 총 6,000만원을 송금한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자식이 대학에 추가 합격했다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 백화점 등을 사칭해 경품행사에 당첨됐다며 계좌번호를 요구하는 등 새로운 수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어눌한 한국말이 들렸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표준어가 등장해 젊은 사람들도 전화를 받고 사기를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실제 공공기관에서 일반가정에 전화를 할 경우 무조건 전화를 끊는 사례가 발생해 관계기관도 당혹해 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강력한 단속의지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취약한 금융시스템과 경미한 처벌수위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며 금융제도 보완과 관련법규의 마련과 개정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또 정부가 너무 경찰의 단속활동에만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제도개선팀의 한 관계자는 “사기범들이 대포통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발급을 제한토록 하고 있지만 통장개설에 대한 소비자의 권리를 무조건 침해할 수는 없다”며 “관계법규에 있어서도 강제로 제한할 근거가 없다”면서 정부의 대책마련이 선행돼야 함을 성토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도 “수법도 다양하고 모방범죄의 발생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법무부와 정보통신부 등 관계기관과의 실무협의가 개최되면 현금인출기의 계좌이체 한도액 하향조정과 외국인 신분확인 강화 등 관련제도를 개선토록 촉구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철현 기자 amaranth2841@naver.com




‘동창생’이라면서 오는 전화도 조심
정통부, KISA 보이스피싱 예방 10계명 발표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지난 8월1일 최근 급증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보이스피싱 예방 10계명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보이스피싱 예방 10계명은 앞으로 이와 같은 유형의 범죄유형에 대한 국민의 주의를 환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피해자가 따로 없는 요즈음에는 분명히 참고할 만하다.

보이스피싱 예방 10계명
1.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 개인미디어 내에 전화번호 등 자신과 가족의 개인정보를 게시하지 말 것.
2. 종친회, 동창회, 동호회 사이트 등에 주소록 및 비상연락처 파일을 게시하지 말 것.
3. 자녀 등 가족에 대한 비상시 연락을 위해 친구나 교사 등의 연락처를 확보.
4. 전화를 이용해 계좌번호, 신용카드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일체 대응하지 말 것.
5. 현금지급기를 이용해 세금, 보험료 환급, 등록금 납부 등을 해준다는 안내에 일체 대응하지 말 것.
6. 동창생, 종친회원이라고 입금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사실관계를 재확인 할 것.
7. 발신자 전화번호를 꼭 확인.
8.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이용한 사기전화를 주의 할 것.
9. 휴대폰 문자서비스를 적극 이용할 것.
10. 사기범의 전화에 속아 지정한 계좌에 자금을 이체했거나 개인정보를 알려줬을 경우에는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할 것.



보이스피싱 주요 피해사례
각양각색 사기수법


경찰청은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피해사례를 밝히며 다음과 같은 사례가 많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신종수법이 계속 발생하므로 의심되는 전화가 걸려올 시 적극적으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금융감독원 직원사칭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계좌를 보호해 주겠다며 전화를 걸어 피해자에게 현금지급기를 조작토록 지시하게 하는 방법이다. 검거된 범인은 같은 수법으로 43명에게 총 3억2,000만원을 뜯어냈다.

◆전화사기 피해방지 빙자
피해자에게 전화사기 피해방지 등 신용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카드뒷면의 마그네틱 번호를 변경해야 한다며 피해자를 현금지급기로 유인하는 방법이다. 이를 믿은 피해자는 범인이 지시하는 방법으로 현금지급기를 조작한 것이다. 범인은 총 39명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가로챘다.

◆경찰청 직원사칭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경찰청 금융조사과 직원으로 사칭, 최근 검거한 사기 피의자와 관련해 당신의 계좌가 도용됐다며 자신의 말대로 따를 것을 요구한다. 범인은 피해자에게 현금지급기로 갈 것을 지시, 보안코드를 입력시켜 주겠다며 현급지급기에서 번호를 누르게 하는 방법이다. 검거된 범인은 총 4명을 상대로 4,000만원 상당을 챙겼다.

◆신용카드 명의도용 빙자
전화를 받은 피해자에게 다른 사람이 당신명의로 카드를 발급 받아 사용하고 있으니 보호방지를 해야한다며 현금지급기로 유인, 조작하게 하는 방법이다. 범인은 총 37명으로부터 3억5,000만원을 이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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