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만의 화이트데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우리도 연인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시선 피해 ‘레즈전용 빠’로 직행
우리만의 의미 찾아 “술 한잔”, 서로에게 선물 주고받는 일도 당연

어두운 음지에서 활동할 것 같던 동성애자들이 사회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동성애자를 ‘이반’이라 부른다. 이반 문화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레즈비언(여자)·게이(남자)·트랜스젠더(성전환) 등의 큰 부류로 나눠진다. 본지는 518호를 시작으로 ‘1탄 레즈비언의 세계, 2탄 게이들의 문화, 3탄 트랜스젠더들의 세계’를 순차적으로 취재·보도할 예정이다. 이번 ‘제1탄 레즈비언 세계’에선 지난 3월 14일, 여성들이 사랑을 고백 받는 날로 알려진 화이트데이에 ‘레즈비언들의 화이트데이’를 들여다봤다. 화이트데이 당일 기자가 나간 곳은 서울 신촌 등지. ‘그녀들만의 화이트데이’ 속으로 찾아갔다.

해마다 찾아오는 연중행사 중 하나로 자리잡은 3월 14일 화이트데이는 2월 14일의 발렌타인데이와 함께 사탕과 초콜릿이 불티나게 팔리는 날이다. 또한 사탕과 초콜릿으로 로맨틱과 달콤함, 사랑스러움의 힘을 빌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거나 고백하는 날로 활용되고 있다. 기자는 동성애 연애를 하는 특히, 여성과 여성의 만남 즉 레즈비언 커플들의 화이트데이 이벤트를 알아보기 위해 화이트데이 당일인 지난 3월 14일 오후 7시 경 서울 신촌의 거리로 나섰다.

“우리끼리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어느덧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구나’ 느껴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오후 7시 경의 신촌 밤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수많은 인파들 중 대부분의 여성들 손에는 쇼핑백 또는 바구니가 들려있다. 그 안에는 오늘이 화이트데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사탕과 선물들이 가득했다.

기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신촌 현대백화점 옆 ‘신촌공원’으로 갔다. 그곳은 언젠가부터 레즈비언들의 아지트로 변했다. 그들은 수 년 전부터 이곳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고 있다. ‘신촌공원’에 도착해 주위를 살펴봤다. 친구들과의 모임,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는 사람,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이들 등 삼삼오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그 때 눈에 띄는 한 여성, 노란 머리에 분홍색 의상을 입고 얌전히 혼자 앉아 있는 그녀의 옆에는 조그마한 선물이 놓여있었다.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이곳(신촌공원)에 자주 오나요”라고 기자가 묻자 그녀는 조금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예전에는 자주 왔고 요즘은 가끔 오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기자는 “얼마 전까지 이곳에 오면 이반 청소년들이 좀 있었는데 오늘은 눈에 안보이네요”라고 하자 그녀는 “아마 개학해서 그럴 거예요”라며 “또 요즘은 여기보다 다들 각자 만나는 경우가 더 많아요”라고 답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화이트데이라서 선물을 가지고 왔나봐요”라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수줍게 웃으면서 “네”라고 답했다. “쌀쌀한데 왜 이곳에서 기다리세요”라고 하자 그녀는 “금방 온다고 했어요”라며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그녀의 모습은 일반 여성이 애인을 기다리는 모습과 똑같았다.

그녀에 따르면, 화이트데이에 만나서 서로 선물이나 사탕을 주고받고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 데이트를 즐긴다. 또 어렸을 때(청소년)는 이곳에 오면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그녀의 나이를 물었다. 그녀는 올해 20살이 됐고, 지금은 A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다고 했다.

기자는 “즐거운 화이트데이에 어디로 가실꺼예요”라고 묻자 그녀는 “이 근처(신촌)에서 밥 간단히 먹고 홍대에 있는 레즈빠에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우리들의 만남은 당당하지만 아무래도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아 그냥 우리들끼리 맘껏 놀 수 있는 곳에서 즐기는 게 좋다”며 대화를 마쳤다.

술이나 ‘한잔’하면서…

일반적으로 레즈비언커플은 남녀커플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역할과 여자역할로 나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다른 면이 많다. 남녀커플사이에서도 역할이 바뀌는 요즘, 같은 여자인 레즈비언커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물론 남녀커플도 예외가 있듯, 레즈비언커플도 예외는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남녀커플처럼 초콜릿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사탕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한다. 여자 같은 레즈비언이 남자 같은 레즈비언에게 주는 형식은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주고자 하는 사람이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는 자유로운 형식이다.

보통, 레즈비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발렌타인데이는 ‘여자가 초콜릿 주는 날’, 화이트데이는 ‘여자가 사탕 받는 날’. 모든 것을 여자를 기준으로 생각하며 그 자체를 즐긴다.
30대 초반의 레즈비언 커플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녀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린 둘 다 달달한 것을 싫어한다”며 “사탕·초콜릿 주고받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그냥 보내기 좀 그러면 술이나 한잔하며 우리만의 의미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뭐, 우리 같은 커플도 있고 선물 주고받으며 의미를 부여하는 커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화이트데이를 통해 고백을 하기도 한다. 또 솔로인 레즈비언들은 서로 토닥이며 조그만 초콜릿과 사탕을 서로 주기도 한다. 이건 이성애자들끼리도 흔히 있는 일이다. 여자들이 솔로 남자를 측은하게 생각해서 하나 던져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lms9420@naver.com

<인터뷰>

레즈비언 섹스 세계 “여자를 사랑한다”는 당당한 레즈비언과의 인터뷰

“손섹스와 오랄섹스로 오르가즘 느껴”

남자에게 강간 경험 있는 레즈, 남자랑 성관계 도중 목 졸라 살인미수
레즈전용 성기구 ‘딜도’, 허리에 차거나 팬티처럼 입고 그들만의 성관계

기자는 2007년 화이트데이가 지난 바로 다음날인 3월 15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이 레즈(레즈비언의 줄임말)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최혜선(가명·26·회사원) 씨와 대화를 나눴다. 예능학부였던 그녀의 주변에서는 레즈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고,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 덕분에 자연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양성애자이지만 여자를 더 사랑한다”는 최 씨와 레즈비언들의 화이트데이와 더불어 밤문화에 대해 알아봤다.

-레즈들은 화이트데이에 데이트를 하는가.
▲데이트는 한다. 또 일반인(남·여) 커플과 별로 다른 게 없다. 똑같이 연애하고, 단지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는 차이 정도.

-이벤트도 하는가.
▲이벤트를 한다면 솔직히 외부에서 대놓고 하기 그러니까 ‘레즈빠’나 ‘레즈카페’ 같은 곳에서 한다. 꼬마 레즈(중고생)들 중 성 정체성에 대해 흔들리는 ‘팬픽이반’ 애들은 10∼20명 무리 지어 서로 파티 아닌 파티를 하기도 한다.

-레즈커플은 둘 다 여자인데 화이트데이의 경우 누가 챙기는 것인가.
▲챙기고 싶은 사람이 챙긴다. 또 둘이 함께 챙기는 커플도 있다. 서로를 위해 꼭 사탕이 아니 여도 선물을 한다거나 레즈빠나 레즈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데이트한다.

-레즈들은 스킨십을 어떻게 하는가.
▲자연스럽게 다한다. 키스도하고 포옹도 하고 애무도 해준다. 여자니까 여자가 원하는 거 더 잘 알지 않은가.

-성관계는 어떻게 하는가.
▲섹스는 거의 다 비슷하다. 나이가 좀 있는 레즈들은 딜도(남성성기의 대용품인 성생활용품)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선호하는 거라던가 성적취향은 다 제각각이다. 내 친구 중에는 남자의 그 물건(성기) 자체를 싫어하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의 경우는 딜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오직 ‘손과 오랄’만 한다던가, 레즈포르노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 여자 둘이서 성기를 마주하고 클리토리스(음핵)끼리 부딪히게 한다던가…. 뭐 그런 것 저런 것 제각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프트한 레즈들은 손이랑 오랄 정도만 한다.

-‘딜도’는 어떻게 사용하는가.
▲딜도는 남자성기처럼 생긴 용품으로 실리콘이나 기타 인체무해 한 재료로 만들어진 인공남자성기형태의 성생활도구다. 그것이 여성용으로 나온 것 중에 허리에 차고 또는 팬티처럼 입을 수 있게 앞에 달려 있는 것도 있다.

-레즈전용으로 따로 나온 것인가.
▲뭐 우리끼리는 ‘레즈용’이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는 그냥 여성전용인데 그것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레즈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레즈들은 남자랑 성관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이섹슈얼(양성애자)들은 남자랑 (섹스)하는 애들도 있다. 레즈가 남성혐오증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레즈들은 남자와의 섹스를 통해서 오르가즘도 없고, 기분도 영 별로라고 말한다. 혹은 어렸을 때 남자에 의해 안 좋은 기억으로 강간이라던가 하는 것을 경험한 애들은 남자랑 섹스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들은 이야기 있는가.
▲있다. 친구 중에 어려서 강간을 당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어떻게 하다보니 남자랑 그 짓(섹스)을 하게됐다. 그런데 친구가 섹스를 하다말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옛 기억이 살아나면서 그 남자의 목을 졸랐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이미 살인미수가 되어 있었다.

-결국 남자랑 사귀면 연인으로써 궁극적 감정이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동료의식이나 친구 정도라면 모를까 연애대상으로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이다. 또 누구든 간에 여자가 남자한테 이런 것을 못 느낀다면 거의 레즈라고 해야한다.

-레즈가 일반 여성이 좋아서 따라다는 경우도 있나.
▲당연히 있다.

-일반 여성도 레즈인 여성이 좋아져서 함께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는.
▲그런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 극히 드물다. 상처랄까…. 아무튼 그늘 같은 게 있어서…. 또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 좋은 시선이 많다. 그렇다 보니 노멀하게 레즈라고 밝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괜히 레즈바나 레즈카페에 레즈만 몰리는 것이 아니다. <선>

<인터뷰2>

레즈비언의 애정공세 받은 ‘일반 여성’ 인터뷰

“나에게도 이런 일이…”

여성 상사에게 접근하는 레즈비언 신입 직원의 사랑법
“나랑 키스하면 어떨 거 같아요? 내 몸 한번 만져봐요”

다음은 같은 회사 신입 여직원에게 온갖 애정공세를 받은 여자 상사 김혜민(가명·27) 씨의 경험담이다. 김 씨는 결혼 1년 차의 일반 여성이고, 이 독특한 경험은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까지 있었던 일이다. 그녀가 다니고 있던 A 상담센터, 그곳은 여직원들이 많은 곳이다. 그녀의 직함은 팀장. 어느 날 옆 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입사 한 지 얼마 안된 신입직원은 김 씨를 잘 따랐고,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그러던 중 김 씨는 이 신입직원이 레즈비언인 것을 알게됐고, 그 과정에서 신입직원은 이미 김 씨의 스토커가 돼있었다. 김 씨와의 일문일답.

-신입직원을 봤을 때 첫 느낌은 어땠는가.
▲아무 느낌 없었다. 신입사원이 자주 들어오기도 했고, 우리 팀원으로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나가듯이 한번 봤을 뿐이다. 초반에 그 직원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냥 중성적인 이미지가 풍기는 씩씩한 여자인 줄 알았다.

-신입직원이 이성적으로 다가온 다고 느낀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됐다. 처음에는 그냥 ‘나랑 친해지고 싶은가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매일 올려놓고 가는 편지와 다소 소극적인 스킨십, 예를 들면 손을 잡기도 했다. 또 혼자 얼굴 붉히며 도망가기도 했다.

-편지내용은 어떤 것이었나.
▲아침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힘들어 보이시네요. 힘내세요’ 등 위로의 내용과 본인이 힘든 일 있으면 이래저래 힘들다는 등 일상 속 생활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이야기 속에 살짝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처음부터 레즈비언인 것을 눈치챘는가.
▲그렇지 않다. 상상도 못했다. 다른 직원들과 틀린 점은 있었지만, 좋게 생각하면 학창시절 때 여자애들끼리 주고받는 쪽지라고 생각했다.

-레즈비언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을 때 느낌은.
▲그때 기분은…. 정말 설마하는 기분과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이상한 기분이지만 솔직히 흥미롭기도 했다.

-설마가 진짜가 됐을 때 기분은.
▲섬뜩했다. 나에게 다가와 레즈비언 친구들 이야기를 하고, 자기랑 키스하면 어떻겠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물어보고….

-어떻게 행동했나.
▲당연히 매 순간 놀라는 모습을 감추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장난 그만하고 자리로 돌아가서 일해’ 등 나름대로 뿌리친 것이다.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이곳은 회사다라는 이미지도 강조했다. 하지만 워낙 씩씩한 애라 크게 상처받지 않은 눈치였다.

-지금 와서 그때를 돌아보면.
▲솔직히 신기할 뿐이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벌어지다니. 남자가 아닌 여자가 접근한 것은 아무나 겪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질투는 없었나.
▲말도 마라. 질투는 엄청 심했다. 다른 직원들과 얘기하거나 쉬는 시간에 어디 좀 다녀오면 ‘왜 그러냐’ ‘피하는 것 같다’ 등 나한테는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주변 직원들은 이상하게 보지 않았나.
▲내가 알기엔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유독 그 친구(레즈 신입사원)가 나를 잘 따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다른 사람 있을 땐 그렇게 심한 행동이 없었다.

-스토커 같다는 느낌은 없는가. 있다면 언제.
▲당연히 있다. 제일 심한 것은 전화. 내가 전화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미친 듯이 한다. 하다하다 안되면 음성메세지도 남긴다.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또 아침마다 내 책상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웠다.

-레즈비언으로써 특이한 행동은 없었나.
▲행동이라고 해야하나. 어느 날 와서는 ‘왜 결혼했냐. 결혼해서 싫다’고 혼잣말하다 가버리고, ‘자기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입고 다닌다면서 한번 놀러와라’ ‘자기 속살이 부드럽다’ ‘내 배를 한번 만져봐라’ 등 이상한 말들을 자주 했다.

-요즘도 연락이 오는가.
▲가끔 전화가 온다. 하지만 받지 않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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