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는 싶지만 죽는 건 두렵다”


 

초등5년생 때 성인남성에게 성폭행 당해… 대인기피
건강보충제와 마라톤으로 체력단련, 완전범죄 꿈꿔

2년 간 13명의 목숨을 빼앗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린 살인마의 범행동기는 참으로 어이없게도 “세상이 싫어서”였다. 아무런 원한이나 채권·채무 관계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단지 ‘세상이 싫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 ‘묻지마 살인’이었던 셈. 이른바 ‘묻지마 살인’으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의 주인공 정남규(37) 씨가 서울고법 형사2부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사형이 구형됐다. 이날 정 씨는 항소 이유와 속죄의 감정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다”며 여전히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적개심을 드러냈다. ‘악마의 탈’을 쓴 정남규 씨의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행수법과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그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따라가 봤다.

지난 4월 22일 서울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렸던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피의자인 정남규 씨의 인천 집을 수색하던 경찰은 깜짝 놀랐다. 정 씨의 자필로 된 대학노트 1권 때문이었다. 이 노트에는 몸에 좋은 각종 음식과 달리기 비법 등 건강정보가 빼곡이 적혀 있었다. 인면수심의 정 씨가 자신의 건강은 끔찍이 여긴 셈이다.

정 씨는 또 체력단련을 위해 1주일에 세 번씩 집 주변 학교운동장에서 10㎞씩 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록도 37분대로 아마추어 선수급이었다. 정씨는 이렇게 가꾼 체력을 ‘완전범죄’를 위해 사용했다.

정 씨는 범죄기사가 실린 신문도 모았다. 주로 강력범죄와 관련된 것들로 단순 사건기사보다는 범죄수법, 검거경위 등이 자세히 적힌 ‘범죄분석기사’가 게재된 신문이었다. 특히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기사는 스크랩을 해둘 정도로 주의 깊게 살폈다.

정 씨의 이러한 ‘수고’는 치밀한 범행 수법에서 그 빛을 발휘했다. 그는 범행 때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체육복과 운동화로 복장을 최소화했다. 심지어 ‘작업’을 하는 날엔 속옷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체력·범행수법 ‘선수급’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 지역에서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망을 철저히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서울 서남부 지역을 택한 것은 인천과는 거리가 있어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는 데다 강남 지역과는 달리 CCTV가 별로 없어 범행이 쉽게 들통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었다.

시간대도 철저히 새벽을 택했다. 범행시간대는 대부분 새벽 2시에서 새벽 5시 사이로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 때쯤이었다. 실제로 정 씨가 저지른 20여건의 사건들 가운데 새벽 6시경에 발생한 사건은 모두 5건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을 위장하는 데도 철저했다. 마스크와 안경으로 범행 상대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했다. 두 건의 범죄에서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체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여성을 주로 범행 상대로 노렸지만 강간은 가급적 피했다. 성폭행 전과가 있었던 그는 강간을 저지르면 유전자 추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발각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콘돔을 사용해도 체모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DNA대조로 들통날 게 뻔해 성폭행은 피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완전 범죄를 꿈꿨던 그가 경찰에 덜미를 붙잡힌 것은 지난 4월 22일 마지막 사건 장소인 신길 6동 지하 방에서였다. 방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만원짜리 상품권 한 장밖에 발견하지 못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정 씨는 자고 있던 김모(24) 씨의 뒷머리를 준비해간 무게 2㎏ 가량의 파이프렌치로 내리쳤다.

그러나 젊은 김 씨가 둔기로 얻어맞고도 대항하려고 하자 정 씨는 얼굴과 팔 등을 마구 쳤다. 하지만 방안이 어두운 탓이었는지, 아니면 정 씨의 운이 다했는지 그의 흉기는 목표물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김 씨는 피를 흘리면서도 정 씨와 격투를 벌였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김 씨의 아버지(47)도 합세하자 정 씨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그러나 정 씨는 경찰에 넘겨진 뒤에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오전 5시 30분경 정 씨에게 수갑을 채운 뒤 순찰차 뒷자리에 앉히고는 운전석에서 차 키를 찾으려는 순간 수갑을 찬 채 달아나 버렸다.

경찰은 급히 150여명을 동원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허사였다. 정 씨가 붙잡힌 것은 도주 2시간여 만인 오전 7시 5분경. 수갑을 찬 정 씨가 자기 집 옥상 위에 숨어 있는 것을 본 주민의 신고로 붙잡히게 됐다.

정 씨는 검거 직후 경찰관을 어깨로 툭툭 치면서 “신은 나를 버렸다. 완전범죄를 했어야 했는데…. 옆방에 그렇게 큰 사람(김씨의 아버지)이 있었으면 그 놈부터 처리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등 대범함(?)을 보였다고 한다.

과거사 ‘의문 투성이’

전문가에 따르면 대다수의 연쇄살인범들의 경우 성장과정에 성적학대나 다른 폭력을 겪은 경향이 많고 가족과의 관계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최근 사형이 구형된 정 씨 또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가난한 가정형편을 원망하며 자라온 것으로 드러났다.

1969년 3월 전북의 한 농가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아무런 탈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정 씨는 이름 모를 한 성인남성에게 끌려가 변태적인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인천으로 올라온 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렇다할 범죄경력 없이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89년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강도죄를 지으면서 범죄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단순 ‘잡범’ 수준이었던 정 씨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 군에 입대한 그는 92년 만기 전역할 때까지 한동안 별 탈 없이 보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집에서 ‘놀고 먹던’ 정 씨는 95년 용돈을 벌 목적으로 한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쇠고랑을 차게 됐다. 가족들은 이때부터 정 씨가 대인기피증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다른 수감자들에게 밉보여 구타를 많이 당했다는 것. 실제로 정 씨는 경찰조사에서 “수감자들 모두 나를 싫어해 수도 없이 맞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후 정 씨의 대인기피증은 더욱 심해져 가족들과의 대화도 기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도 그에게 무심했다. 그가 무고한 사람을 잇따라 살해하고 살인에 사용한 칼을 집안 여기저기에 놔뒀지만 가족 중 누구도 이를 눈치 챈 이가 없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연쇄살인마’ 정 씨의 엽기 어록 BEST

▲“살해한 뒤 죽은 사람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고 타오르는 불을 보면 황홀했다. 다른 것엔 관심이 없고 마치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만 강하게 느낀다.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면 또 살인을 할 것이다.”
-(지난 7월 7일 첫 공판에서) 살인 동기를 묻는 검찰 신문에

▲“(피해자나 그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전혀 없고 오히려 즐거웠다. 당연히 사형을 받을 텐데 내가 죽는 건 두렵다”
-(지난 7월 7일 첫 공판에서) 최후 변론

▲“(피해자에게) 미안한 건 잘 모르겠다. 사는 의미도 모르겠고, 독방에 갇혀 있어 살인을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8월 31일 결심공판에서) 판사의 심문에

▲“사람들 많이 죽일 때 자부심을 느꼈다.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도 없다. ‘쇼킹’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지난 8월 31일 결심공판에서) 정 씨의 변호사가 “사형보다는 무기징역을 내려 반성하는 기회를 줘야한다”고 하자

▲“이상하게 삶이 꼬인 것 같다. 가혹하고 혹독한 폭력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다. 국가와 사회가 (나에게) 도움을 줬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9월 21일 선고공판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다. 부자를 죽이는 데 희열을 느꼈다”
-(지난 11월 21일 항소심 속행공판에서) 항소 이유와 속죄의 감정 등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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