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언론인
이원두 언론인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가 한순간 충돌을 모면하려는 듯하다가 다시 속력을 높이고 있다. 의대 정원을 2천 명 증원하겠다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대결은 변한 것이 없다.

전공의 면허정지가 시작되기 전날(3월 24일) 여당인 국민의 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의 회동을 계기로 정부도 강경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의료대란’이 일단 수그러들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안심하려는 순간, 전의교협이 집단 사직을 그대로 진행함으로써 이 기대는 무너졌다.
더욱 난감한 것은 사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집단휴학계를 낸 의대생들이 ‘당사자는 빼놓고 전의교협이 무슨 자격으로 “협상”에 나섰느냐’고 반발한 것이다. 여당 대표와 교수협의회가 만난 것이 오히려 새로운 불씨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해 당사자의 갈등 국면에서 이를 중재한다고 내놓는 제3자의 대안(代案)이나 양비론(兩非論)은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대개 책임지지 않는, 아니면 책임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갈등 국면을 이용한 자기 과시인 경우도 없지 않다. 이번 정부와 의료계 강성 대립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동훈 비대위장이 전의교협과 만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입을 굳게 닫았던 여당의 중진이 ‘의대 정원의 점진적 증원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은 대학별로 배정이 끝난, ‘기정사실’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의료계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점진적 증원론을 들고나오는 것은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이러한 양비론, 또는 책임지지 않는 인사의 대안이 이해 당사자에게는 압박감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원문제는 한동훈 비대위장과의 만남에서 거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의교협의 입장이다. 그만큼 민감한,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정사실화된 면도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전의교협이 정원 2천 명 증원을 백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일괄사직서를 보류하지 않고 기정방침대로 제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증원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전의교협의 속셈은 2천 명 증원이 아니라 점진적 증원이다. 한동훈 비대위장이 전의교협과 회동한 직후에 나온 일부 중진의 ‘대안’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읽힌다. 적어도 그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2천 명 증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전공의를 비롯하여 교수까지 환자를 뒤로하고 현장을 떠나려는 것은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장을 떠난 의사(전공의와 교수)가 환자 곁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환자는 의사가 자리를 비우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받는 약자 가운데서 가장 처절한 약자다. 모든 의사가 슈바이처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의료인이라면 길거리에서,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최소한 심폐소생술을 시술하는 아량과 사명감을 가져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로부터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받을 자격이 없다. 지금 현장을 떠난 전공의나 사표를 내는 교수들은 과연 눈앞의 응급환자에게 망설임 없이 심폐소생술을 시술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또 일부에서는 미국, 일본, 영국 등은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점진적으로 한다고 예를 들면서 정부의 급진적 정책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고 해서 의료계가 현장을 떠는 등 파업으로 막서 막은 사례가 있는지 묻고 싶다. 갈등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절대적 가치를 가졌느냐를 차근차근 점검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다수 국민이 환영한 것은 그만큼 의사 부족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왔다는 증거다.
그것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피로감을 이기지 못한 국민의 반발을 유도하려는 것은 효과적인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후세를 위해서라면 이쯤 해서 접는 것이 옳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소통을 지시한 지금, 허심탄회(虛心坦懷: 숨김없이 터놓는 자세)한 마음으로 정부와 마주 앉으면 풀지 못할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의사가 있을 곳은 병원이며 병원에는 언제나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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