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언론인
이원두 언론인

올 설에도 어김없이 귀성객으로 전국 고속도로가 한때 주차장으로 변했다. 아직도 명절에 고향을 찾는 사람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저출산 대책에 골몰한 현실에서는 무척 고무적이다. 명절에 고향을, 부모 친척을 찾는 풍습이 살아있는 한, 출생률 정상화도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저출산은 산업화에 따른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돕고, 또 도움을 줄 이웃’이 없어진 것과 핵가족 중심사회로 변한 데 원인이 있다. 주거가 아파트로 바뀐 것 역시 이웃이 없어지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보는 한 저출산 대책은 항상 헛돌게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대책으로 전국 초등학교가 방과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늘 봄 학교’ 제도화 방침을 밝혔다. 2학기부터 실시될 늘 봄 학교서는 저녁 식사까지 무료로 준다. 지금까지 나온 저출산 대책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방안이다. 또 이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한 대형 건설사가 아이를 낳는 사원에게 1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늘 봄 학교와 출산 사원 1억 원 지원 방안을 현실적이고 실효적이라고 보는 것은 정부와 민간(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핵가족화 이전의 출산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 온 것은 대가족제도와 집성촌(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마을)으로 대표되는 마을 공동체의 돌봄 효과다. 적어도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산아제한을 목적으로 한 ‘가족계획협회’가 정력적으로 활동한 배경이다.

현재 저출산(혹은 저출생)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도 없다. 특정 국가, 특정 사회 차원을 벗어나 범 인류의 현안이다. 동남아시아도 고령화 ⁃ 저출산 추세를 보이고 있음이 이를 뒷받침 한다. 동남아의 생산인구(15~64세)가 2024년을 기점으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 2100년이면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들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화⁃저출산을 나타내는 국가별 균연령을 보면 일본이 47.9세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한국 42.9세, 타이 39.2세, 중국 38.8세, 베트남 33.6세다.

수렵 유목 생활에서 농업혁명으로 정착사회를 이룬 인류는 가족제도를 기초단위로 삼았다. 농업 생산성 향상과 농경지 확대는 집단의 모든 사람이 농사

일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의 축적은 수직적 계층 형성과 함께 도시로 인구가 몰려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과 미국 사회는 잘 알려진 대로 핵가족에 기반을 둔다. 반대로 산업화가 상대적으로 늦어진 아시아,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유교 농업 국가는 대가족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을 비롯하여 인구 대국으로 꼽히던 중국, ‘아시아의 유럽’을 자부하던 일본 역시 유럽 미국과 마찬가지로 출산율 저하, 인구감소에 휘말려 들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고령과⁃저출산 심화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와 비례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산업 국가화에는 1백 년이 훨씬 더 걸렸으나 한국은 불과 60년, 중국은 40년 안팎이지만 인구감소는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저출산 대책 역시 이러한 인류 문화적 변혁을 염두에 두고 짜는 것이 원칙이다. 다시 말하면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역대 정부가, 2005년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여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그런데도 특히 정치권은 선거철만 되면 각종 장밋빛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투표가 끝남과 동시에 잊어버리는 버릇이 반복될 뿐이다.

기업이 대담하게도 첫 아이를 낳으면 1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러한 정치권의 타성에 대한 뼈아픔 채찍이다. 정부 대책을 보다 못해 기업이 나선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일본 이토추 상사 오카후지 마사히로 회장(CEO)은 ‘근무형태 개혁으로 우리 사원 가정의 출산율이 0.94에서 1.97로 높아졌다’고 자랑한다. 이 수치는 일본의 평균 출산율 1.30보다 높다. 오카후지 회장은 오전 6시 출근, 오후 3시 퇴근으로 근무형태를 바꾸어 사원들의 개인 시간을 보장한 결과 생산성과 출산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것이다. 이처럼 출산율 정상화 대책은 현장에 답이 있다. 늘 봄 학교와 출산 사원 1억 원 지원이 현장에서 찾아낸 답임을 알아야 한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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