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언론인
이원두 언론인

최근 불거진 포스코와 KT&G 사외이사의 호화 접대 사건은 이 제도의 존립자체 마저 흔든다는 점에서 그냥 접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선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국가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1998년에 도입한 이 제도가 지금쯤은 당초 기대한 대로의 효과를 내면서 안착했어야 마땅하다. 특히 경영의 투명도를 높일 목적에서 도입한 것이라면 도입 이전의 우리 경영 풍토가 불투명했다는 방증이며 외환위기 역시 경영의 불투명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이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것은 외환위기와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 재발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와 연관하여 주목할 점은 미크로 경제학이 ‘에이전트 문제’로 부르는 프린서펄 (Principal:의뢰자)과 에이전트(Agent:대리자)이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뢰자는 주주, 대리자는 경영진이다. 대리자가 의뢰자의 일을 할 때 항상 이해가 대립 또는 충돌이 문제가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 의뢰자에게 충실할수록 회사는 성장하고 이익 창출 규모도 커진다는 것. 경영의 투명성 제고 역시 의뢰자와 대리자가 효율적으로 협력 또는 충돌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외이사와 최고경영자가 한가지 목적으로 야합할 때, 투명한 경영이 실종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으로부터 ‘황제 접대’를 받는 것은 대표권을 가진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 후임추천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포스코나 KT&G는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대표권을 가진 회장 등 후임을 추천해야 할 시점이다. 현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극진하게 대접하는 이유다. 특히 KT&G는 해마다 수천만 원을 들여 비즈니스 항공권과 특급호텔 숙박을 지원하고 배우자의 여행 수속 대행, 운전과 가이드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해외 주재 근무하는 직원이나 현지 책임자들은 본사의 ‘추상같은 지시’를 어길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착실히 근무’했을 것이다.

문제는 호화 접대로 질타를 받는 기업이 하나같이 민영화가 된 ‘전 공기업’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주인 없는 회사를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최대한 단물을 짜내어 사리사욕을 채우자는 계산이 없다면 이러한 일탈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역시 민영화된 시중은행도 마찬가지다. 4대 금융지주회사(KB, 신한 하나, 우리) 사외이사 29명은 한 달에 기본급 4백만~5백만 원을 받으면서도 회의 한번 참석 때마다 거마비로 1백만 원을, 이사회 내 위원회 활동을 하면 또 5십만 원을 받는 ‘꿈의 부업’이다. 일반 봉급자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사외이사 대부분이 법조계나 학계 인사여서 본업 못지않은 ‘부업’으로 불린다. 작년 상반기 1백 대 기업 사외이사 전수 조사결과 반대표를 던진 것은 0.4%에 그칠 정도로 이들은 경영진의 거수기 노릇을 한 대가로 높은 급료, 황제 의전과 연간 1백 회, 1주에 두 번 꼴로 골프를 즐긴 것이다.

사외이사의 충고를 올바르게 수용하여 쇠락하는 회사를 되살린 모범적인 사례를 우리는 일본의 히타치(日立)에서 볼 수 있다. 일본 최대 제조업 그룹인 히타치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시가총액이 8천억 엔으로 급감했으나 올 1월에는 10조 엔을 넘어서는 놀라운 성장을 과시했다. 그 배경에는 10년 전인 2013년 사외이사로 초빙된 미국 3M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조지 배클리가 조언한 ‘일본식 경영에서의 탈피’에 성공한 결과다. 일본은 경영진이 이미 결정한 안건만 이사회에 올리기 때문에 ‘진지한 토론’이 불가능한, 따라서 ‘세계 표준 경영’이 요구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춘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경영의 기본은 이익을 내는 데 있으며 이익은 빠른 성장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의 회전수를 높여야 한다고 3M CEO 출신의 히타치 사외이사가 충고한 것이다. 히타치는 이를 진지하게 수용, 놀라운 성과를 올린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은 경영진이 연임을 위한 밑거름으로 사외이사를 각종 호화 접대와 황제 의전으로 품에 안고 있다면 그 결과는 국제 경쟁력에서 빠르게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제도 하나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기업이 무슨 힘으로 피를 말리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접대를 받는 사외이사나 황제 의전까지 마련하는 경영진은 깊이 반성할 일이다. 그렇지 못하면 아예 기업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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