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 그린 전기물 중 역대 수익 1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일본 개봉 ‘정조준’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 유니버설 픽처스

민주신문=승동엽 기자|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5관왕에 올랐다.

놀런 감독이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으로, 오는 3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가능성까지 높였다.

놀런 감독은 이번 시상식 이전 골든 글로브뿐만 아니라 영국 아카데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상을 받은 적이 전무했다.

◇ 서사·음향·연출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전기물 중 역대 최고 수익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대사다.

영화는 미국의 핵 개발 작전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과정을 그린 전기영화다. 중심 소재인 맨해튼 계획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기밀 프로젝트다.

킬리언 머피가 오펜하이머 역으로 나와 열연했다. 여기에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케이시 애플렉 ▲라미 말렉 ▲데인 드한 ▲게리 올드먼 ▲알렉스 울프 등 화려한 출연진이 뒤를 받쳤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임명한다.

오펜하이머를 리더로 앉히고 에드워드 텔러,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만, 엔리코 페르미 등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을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 불러 연구에 집중하게 한다.

원자폭탄이 완성되기 전 독일은 항복하지만, 일본은 끝까지 저항한다.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하자, 오펜하이머와 연구진들은 기뻐한다.

일본에 투하될 핵폭탄 ‘리틀 보이’와 ‘팻 맨’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떠난 후 오펜하이머는 원폭 투하 사실을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핵무기에 대한 미묘한 심경 변화를 제대로 묘사했다는 평가다. 과학자의 운명이 이끄는 삶과 내적 갈등, 그리고 감독이 하고 싶었던 내적 이야기가 무엇인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게 했다.

오펜하이머의 인간적인 고뇌와 그 안에서 쏟아지는 명대사, 막판 1시간부터 전력 질주하듯 빠르게 전개되는 극대화도 일품이다.

기술적 요소도 눈에 띄었다. CG 사용을 자제하는 놀란 감독의 특성이 반영된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압권이다. 폭발 장면이 관객을 삼키듯 다가와 더욱 실감케 했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흑백과 컬러 장면이 오가면서 과거와 현재를 비추는 전개는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요소였다.

음향도 압도적이었다. 중요 연출마다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향연은 작품이 주고자 하는 느낌을 완벽하게 전달했다. 물리학 이론의 관계와 서사를 음악에 대입시키는 연출은 가히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오펜하이머는 북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흥행 3위에 올랐다.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무려 9억5100만 달러에 달한다. 실존 인물을 그린 전기물 중 역대 수익 1위를 기록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쥐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유튜브 채널 Cillian Murphy Archive 캡처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쥐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유튜브 채널 Cillian Murphy Archive 캡처

◇ 골든글로브 5관왕에 아카데미까지 ‘정조준’…일본 개봉도 앞둬

오펜하이머의 흥행으로 놀런 감독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비벌리힐즈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부문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 부문은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장르로 나눠 작품상과 남녀주연상 등 주요 부분을 시상하지만, 감독상은 트로피가 하나뿐이다.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킬리언 머피와 미국 정부 관리 루이스 스트라우스로 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각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오펜하이머는 음악상·작품상을 받는 등 도합 5관왕에 올랐다.

특히 놀런 감독은 이번 수상으로 그간의 무관 설움을 말끔히 씻어냈다. 그는 ▲메멘토(2001) ▲다크 나이트 3부작(2005·2008·2012)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 ▲테넷(2020) 등 다수의 흥행작을 보유했음에도 유독 시상식에서 외면받아 무관의 제왕으로 불렸다.

놀런 감독은 골든 글로브에선 2010년 인셉션으로 작품·감독·각본상 부문에, 2017년 덩케르크로 작품·감독상 부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무관에서 벗어난 놀런 감독은 이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정조준한 상태다. 골든 글로브는 아카데미 시상식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무대로 꼽힌다. 오펜하이머가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다 수상작이 되면서 오는 3월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가능성을 끌어 올렸다.

전 세계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미뤄 왔던 일본에서의 개봉도 성사됐다. 최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일본 배급사 비터스엔드는 오펜하이머의 2024년 일본 개봉을 결정했다.

비터스엔드는 “영화가 일본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기에 다양한 논의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개봉 날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본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핵무기 실전 투입으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던 만큼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담은 오펜하이머의 개봉을 꺼려왔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 핵폭탄 리틀 보이가 떨어져 14만 명이 사망했고, 9일에는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원자폭탄 팻 맨이 투하돼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이기에 일본에선 이를 소재로 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비터스엔드는 현지 언론을 통해 “많은 논란과 반발이 있었지만 오랜 논의 끝에 배급을 결정했다”며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을 뛰어넘는 독특한 영화적 체험을 개봉 추진 이유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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