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신용등급 줄줄이↓…신동빈, 신사업·그룹 체질 개선 박차
그룹 중심축 화학·배터리로 이동…핵심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민주신문=승동엽 기자 | 롯데그룹이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며 난항을 겪고 있다. 재계 서열도 13년 만에 한 단계 추락하며 자존심을 구긴 상태다.

지난해 8월 특별사면 후 그룹을 직접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는 현재 그룹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신사업 투자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재도약을 위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미래성장 전략에 있는 만큼 신동빈 회장은 신사업 투자를 통한 체질 개선, 이른바 ‘뉴 롯데’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즉, 지난 50여 년간 롯데 성장의 핵심이었던 ‘유통군’에서 그룹 중심축을 화학·배터리 등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롯데그룹이 7월18일 서울에서 올 하반기 사장단회의(VCM)를 연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14일 시그니엘 부산에서 하반기 VCM에 참석한 모습. © 롯데지주
롯데그룹이 7월18일 서울에서 올 하반기 사장단회의(VCM)를 연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14일 시그니엘 부산에서 하반기 VCM에 참석한 모습. © 롯데지주

◇ 롯데는 체질 개선 중…신동빈 DNA는 ‘화학’

롯데그룹은 지난 1967년 한국에서 설립된 롯데제과가 모체가 돼 성장한 기업이다. 롯데는 롯데제과를 필두로 국내에서 수십년 간 ‘유통 공룡’으로 군림했지만 최근 사업의 중심축은 화학 분야로 크게 이동했다.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가 발표한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은 84조8000억 원 규모다. 이중 화학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33.8%(28조6594억 원)로 25.5%의 유통군(21조6606억 원)을 뛰어넘었다. 지난 2021년 사상 첫 화학군이 유통군 매출을 앞지른 데 이어 2년 연속이다.

특히 지난해 두 사업군의 매출 비중 격차는 더 벌어졌다. 유통과 화학 사업 부문의 매출액 비중은 2021년 27.7%와 32.6%였는데, 이 격차가 4.9% 포인트에서 지난해 8.3% 포인트로 약 두 배 벌어진 것이다.

화학군 비중은 올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롯데는 유통군 매출 회복도 꾀하고 있지만, 미래성장 측면에서 화학군 육성에 더 집중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신동빈 회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사업 투자를 통한 화학군 육성과 체질 개선은 신 회장이 그리는 ‘뉴 롯데’의 핵심이다. 그룹의 주요 ‘캐시카우’ 역할을 맡고 있고 오너가 승계를 뒷받침하는 핵심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은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출신이다. 지난 1990년 상무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이 곳에서 시작했다.

지난 2016년에는 국내 화학업계 최대 빅딜이자 롯데 창립 이래 최대 규모였던 삼성그룹 화학부문의 인수·합병도 주도했었다. 그 만큼 화학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관심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의 행보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지난 2020년 일본 롯데홀딩스에 기획 담당 부장으로 입사한 신유열 상무는 지난해 5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상무보에 임명됐고 같은 해 12월 상무로 승진했다.

재계에서는 앞으로 신 상무가 석유화학사업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에 발맞춰 롯데 화학 계열사들도 고부가가치, 이른바 ‘스페셜티’ 사업에서 미래 신성장동력을 찾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스페셜티를 비롯한 수소에너지 등 친환경 사업을 통해 2030년 매출 50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수소·이차전지 등 미래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그린에너지·스페셜티 소재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 핵심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그룹은 인수합병으로 외형을 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간 석유화학과 렌터카 사업 등을 포함해 인수합병한 기업은 무려 35개에 달한다.

롯데가 10대 그룹 중 전년 대비 계열사가 가장 많이 증가한 그룹이라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위기 돌파와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새로운 사업 확장에 집중하고 있는 것.

그 중에서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신동빈 회장의 ‘뉴 롯데’ 핵심으로 꼽힌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지난해 10월 롯데그룹 화학군이 전지소재사업의 역량을 키우고자 인수한 기업이다. 전신은 ‘일진머티리얼즈’다. 올해 3월 일진머티리얼즈에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사명을 바꾸고 롯데케미칼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고가 인수 논란이 있었지만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신동빈 회장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 결정부터 잔금 납부까지 소요된 시간도 불과 반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신속한 추진이 가능했던 것 역시 미래 먹거리 확보에 대한 신 회장의 강한 신념이 작용했다.

배터리 소재는 헬스케어·모빌리티·충전 인프라·수소·바이오 등과 함께 롯데의 핵심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주력 사업인 동박은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머리카락 굵기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두께 10㎛ 내외의 얇은 구리막으로,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를 씌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매우 까다로운 공정 탓에 신규사의 시장 진입이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전신인 일진머티리얼즈는 이 부분에 있어 점유율 13%로 세계 4위를 차지했던 기업이다. 세계 1위 SK넥실리스(22%)와 한 자릿수 격차다. 일진머티리얼즈를 품게 된 롯데케미칼은 비교적 손쉽게 진입 장벽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신동빈 회장이 인수전에 열을 다했던 가장 큰 이유다.

사업 전망도 긍정적이다. 전기차 시장 성장 및 배터리 수요 증가가 곧 동박의 수요로 이어기 때문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생산량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다. 현재 6만 톤에서 2028년 24만 톤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말레이시아 5·6공장 증설에 나선 상태다.

유럽 거점 지역으로 낙점한 스페인 공장 시설도 당초 보다 2배 이상 생산량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성장성이 큰 북미 투자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이르면 연내 북미 공장 증설 계획이 가시화될 수 있다.

이 같은 구체적인 계획들은 오는 18일 서울에서 개최될 롯데 사장단 회의(VCM)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 김상현 롯데쇼핑 부회장 등 주요 최고경영진이 참석한다.

특히 이번 VCM에서 나올 신동빈 회장의 메시지에 이목이 쏠린다. 위기를 언급하면서도 신사업 투자와 구체적인 전략 등에 관해 목소리가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최근 롯데그룹은 재계 순위가 6위로 하향 조정됐고, 주요 계열사의 신용 등급이 연이어 하락하는 등 부정적 요인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바탕으로 '뉴 롯데' 현실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거론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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