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로 자리매김한 퓨전 사극…정통 사극 수요는 여전히 多
정통 사극, 제작비·고증한계·시대편중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
올 연말 ‘최수종’ 10년 만에 대하 사극 컴백…강감찬 장군役

'꽃선비 열애사' 티저. © SBS
'꽃선비 열애사' 티저. © SBS

민주신문=승동엽 기자 | 국내 퓨전 사극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MBC ‘다모’(2003)의 성공 이후 사극의 퓨전화는 완전히 주류로 자리 잡은 상태다. 최근에는 사극의 퓨전화를 넘어 판타지까지 사극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정통·대하 사극의 설 자리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모습이다.

퓨전 사극이 주류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무엇보다 K-콘텐츠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 변화를 1순위로 꼽을 수 있다.

지난 2016년 좀비 아포칼립스의 배경을 조선으로 옮긴 ‘킹덤’을 비롯해 전통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깨비’ 등 한국 퓨전 사극이 글로벌 흥행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시초가 됐다.

특히 퓨전 사극은 판타지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며 꾸준히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K-콘텐츠가 OTT 등을 타고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면서 사극도 점차 글로벌 장르의 한 축인 판타지와 결합해 나가고 있다.

퓨전 사극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는 청춘 사극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젠가부터 조선 청년들의 모습에서 수염이 사라졌고, 간지럽고 오글거리는 대사를 던지며 ‘꽃도령’이 사극 무대를 장악해 나가고 있다.

청춘 스타들과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어여쁜 한복 입고 등장하며 펼치는 로맨스는 사극의 주요 소제가 됐고 청춘 사극은 한류열풍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논란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고증 실패, 과도한 역사 왜곡 등이 비판의 주요 대상이다. 여기에 진부한 스토리도 반만년 역사를 소제로 삼을 수 있는 사극 장르에 저해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어여쁜 한복을 입은 청춘남녀의 코믹한 말장난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가 다소 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양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정통·대하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망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 KBS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 KBS

◇ 정통·대하 사극에 대한 갈망 多…제작비·고증한계·시대 편중 등 난제

정통·대하 사극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방송사는 단연코 KBS일 것이다. KBS는 1981년부터 1TV에서 주말 저녁마다 대하 사극을 방영하며 사극 전성시대를 열었다.

당시 병자호란 전후 시대를 다룬 '대명'을 편성한 이래 35년 간 정통·대하 사극을 시청자에게 제공해 왔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대조영' 등은 작품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으며 정통·대하 사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2000년 방영된 '태조 왕건'은 60.2%라는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며 ‘누구인가?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옴마니반메훔’, ‘마구니가 꼈구나’, ‘짐이 관심법으로 보았느니라’ 같은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MBC도 ‘허준’, ‘이산’, ‘선덕여왕’ 등을 방영했고 SBS 역시 ‘여인천하’와 같은 정통·대하 사극을 꾸준히 내놓았다.  하지만 최근 방송 흐름을 보면 정통·대하 사극의 명맥은 사실상 끊긴 것과 다름없다.

새로운 정통·대하 사극이 등장하지 않자 시청자들은 예전 사극을 다시 찾고 있는 실정이다.

유튜브에서는 이전 정통·대하 사극 영상을 모아놓은 지상파 채널 등이 등장했다. 과거 '태조왕건', '연개소문', '주몽' 등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 다시보기 영상 조회수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OTT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같이 수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가 정통·대하 사극을 내놓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익성이다. 퓨전 사극의 경우 역사 속 소소한 이야기를 설정해 등장 인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인 색감이 짙지 않아 해외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져 판권에도 유리하다.

반대로 정통 대하 사극은 그렇지 못한 것. 정사를 바탕으로 고증에 충실한 정통·대하 사극은 수익성 면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출연진이 많고 고증을 중시해야 하는 만큼 이야기의 범위가 매우 넓다.

필요한 소품과 장소도 그만큼 다양해지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여기에 제작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PPL도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악재다. 급증하는 제작비에 유튜브, OTT 등 다양한 매체의 성장도 걸림돌이다.

정통·대하 사극은 앞서 언급한대로 고증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많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고려 시대 등은 역사적 사료가 그리 많지 못해 고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자연스레 조선 시대로 사극이 편중되는 현상을 야기시킨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여말선초(고려말에서 조선 초)에 집중되는 경향이 높다.

여말선초를 다룬 대작들을 몇 개 거론만 해보자면 ‘용의눈물’, ‘정도전’, ‘육룡이나르샤’, ‘태종 이방원’ 등 무수히 많다. 시청자로서는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기대감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다.

최수종 © 뉴시스
최수종 © 뉴시스

◇ 올해 방역작 대부분도 퓨전…‘고종 순종’ 최수종, 강감찬으로 대하 사극 컴백

반면 퓨전 사극은 정통 대하 사극에 적용되는 제약들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게 사실이다. 퓨전 사극이 주류로 자리매김한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올해 역시 '꽃선비 열애사', '조선변호사', '청춘월담' 등 다수의 퓨전 사극 드라마가 방영됐다. 하반기에도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밤에 피는 꽃’, ‘연인', '옥씨부인전' 등이 방영될 예정이다.

이 같은 상황 속, 정통·대하사극 팬들에게 희소식이 찾아왔다. 일명 '고종, 순종, 최수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최수종이 10년 만에 사극으로 복귀한다. KBS 50주년 특별 기획 '고려 거란 전쟁'(가제)을 통해서다.

’고려 거란 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최수종은 여기서 강감찬 장군 역을 맡았다. 강감찬은 70세 고령의 문관이었지만, 고려 제8대 황제 현종의 신임을 받고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투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최수종은 데뷔 초반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서 사도세자와 철종을 연기한 바 있다. 이후 '태조 왕건'으로 연기대상까지 받았으며 '해신'에서 장보고 역, '대조영'에서 대조영 역,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 역 등을 맡았다. 발해·신라·고려·조선 등 시대를 가리지 않고 왕과 지도자 역할 등을 해왔다.

이처럼 '고려 거란 전쟁'은 수많은 정통·대하 사극을 흥행으로 이끌었던 최수종이 출연하는 만큼 높은 기대감을 받고 있다. 최근 퓨전 사극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정통·대하 사극 부활의 신호탄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