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등 징계자 100인 사면에 축구계 거센 ‘반발’
대한체육회도 “사면 규정 없다” 불가 방침…철회 요구

[민주신문=최경서 기자]

지난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2023년도 제2차 이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2023년도 제2차 이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붉은악마와 K리그 서포터를 포함한 팬들이 축구협회의 ‘기습 사면’에 일제히 보이콧을 선언하자 협회가 결국 백기를 흔들었다.

이미 이사회를 통해 의결됐고 공식발표까지 마친 사안을 사흘 만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것.

대한축구협회(KFA)는 31일 오후 4시 임시 이사회를 개최한다. 제2차 이사회가 열린 지 불과 사흘 만이다. 안건은 승부조작 가담자 48명 등 100명에 대한 사면 건이다.

앞서 KFA는 지난 28일 이사회를 통해 징계 축구인들을 사면 조치했다고 기습 발표했다.

KFA는 “지난해 달성한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랜 기간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을 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경기 시작 약 1시간 전 경기장 내 ‘쪽방’에서 진행된 회의를 통해 발표된 허무맹랑한 내용이었다. 사면되는 대상이 누군지, 왜 선정됐는지에 대해선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승부조작 및 각종 비리 등 한국 축구 근간을 흔든 범죄자들을 월드컵 16강 진출, 축구계 화합 등을 명분으로 사면한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협회 입장에 따르면 축구계 대통합을 위해선 징계자 사면이 필요하다는 해석이 된다. 한국대표팀 월드컵 10회 연속 참가와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으니 ‘인심 한번 베풀자’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 축구 커뮤니티에선 “이는 막무가내로 갖다 붙인 거짓 명분에 불과하다. 오히려 범죄자들이 축구계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축구계를 위한 올바른 방향 아니냐”, “협회는 축구팬들 이목이 우루과이전에 집중돼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여긴 모양” 등의 의견이 우세했다.

 한 축구팬이 축구협회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 축구팬이 축구협회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아직까지 국가대표 출신 등 축구계 인사들은 대부분 침묵을 유지하고 있지만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은 KFA의 비상식적인 결정에 ‘맹비난’을 쏟고 있다.

징계 이후 10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축구팬들의 원성이 잠잠해졌을 것이라는 축구협회의 오만한 착각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카타르 월드컵 성과로 분위기가 좋은 틈을 타 기습 사면으로 ‘제 식구 챙기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악마도 보이콧을 선언하며 협회의 일방적인 결정을 비난하고 사면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붉은악마는 지난 2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기습적으로 의결한 사면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며 사면 의결에 대해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이어 “조금씩 올바르게 성장하던 K리그와 한국 축구는 정몽규 회장이 모두가 노력해 12년간 쌓아온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또 “사면을 강행할 시 향후 A매치를 보이콧 하겠다. K리그 클럽 서포터와 연계한 리그 경기 보이콧 항의 집회 등 모든 방안을 동원해 행동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 2011년 승부조작 사태 당시 큰 상처를 받았던 K리그 클럽 서포터들도 목소리를 냈다. 한 축구팬은 1인 시위를 나서기도 했다.

KFA는 결국 31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전날만 하더라도 홈페이지에 사면에 대한 Q&A 콘텐츠까지 올리며 사면 조치에 적극적이었으나 반발이 거세지자 하루 만에 태도를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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