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언론인
이원두 언론인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명목상 국내총생산(GDP)규모가 독일에 추월당할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3위가 아니라 4위로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추월당할 정도로 탄력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968년의 국민총생산(GNP)이 당시 서독을 추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선 이래 2002년엔 명목 GDP가 4조 1천 8백 달러를 기록, (독일은 2조 8백 달러) 미국에 이어 2위(중국 포함하면 3위)를 유지해 온 일본경제의 조락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잃어버린 30년’이 가져온 결과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되찾는 비장의 카드로 최근 반도체를 들고 나왔다. ‘잃어버린 30년’은 물론 복합적인 요인이 겹친 결과이지만 마지막 결정타는 반도체의 주도권을 삼성 전자에게 빼앗긴 데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가열되기 시작한 미국과의 무역마찰에 이어 달러화를 지키기 위한 이른바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급등, 일본의 수출력도 크게 위축되었다. 일본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반도체만은 세계 시장 석권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보다 거의 30년이나 늦게 출발한 삼성전자가 1992년 어느 날 갑자기 세계 최초로 64MD램을 시장에 내어놓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를 고비로 일본은 반도체 1위를 미국 인텔에 빼앗김과 동시에 실질적인 ‘잃어버린 30년’의 원년을 맞은 것이다.

그렇던 일본이 지금 반도체, 그것도 대만의 TSMC가 ‘석권’하는 파운드리로 재기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세계 시장을 지배한 일본은 반도체제 제조설비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 강자다. 미국 업라이트 머터리얼스, 네덜란드의 ASML에 이어 도쿄 일렉트론이 세계 3위에 올라 있다. 이뿐만 아니다. 대만의 TSMC의 구마모토 신공장 건설을 계기로 관련 산업이 집중된 미에현, 야마나시현, 구마모토현 등 8개 현의 작년 국내생산(GDP) 규모가 다른 지역을 앞질러 코로나 이전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활기에 차 있다. 일본 정부 역시 기업과의 드림팀을 구성,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에 도전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지금 세계 반도체 업계는 미⁃중의 갈등을 계기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첨단 핵심장비의 대중국 수출 금지, 삼성전자와 TSMC의 2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기술경쟁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도체 최대 수요국인 중국은 첨단 제품의 자체 생산이 불가능해지자 40나노 등 범용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이른바 ‘레거시(유산) 전략’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 기술경쟁에 뼈를 깎는 삼성과 TSMC는 같은 2나노라 하더라도 공정이 달라 수평 비교가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 일본은 ‘비욘드(beyond) 2나노’라는 표현으로 시장 공략 전략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가 연구 개발(R&D)과 설비투자를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2나노 기술이 확립되면 거기에 맞는 생산설비를 새로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경쟁국이 대규모 투자 세액공제를 비롯하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이유다. 그러나 유독 한국만은 이 문제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야당은 투자공제를 확대해주면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고 흥정을 하기도 한다.

기술경쟁과 첨단장비 금수의 탈출구를 이른바 ‘레거시 제품’에서 찾는 중국의 선택이 현상황에서는 최선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시에 반도체 지원에 인색한 우리가, 특히 야당이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다. 이미 파운드리에서는 대만의 TSMC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이를 극복, 반도체 주도국의 위상을 지키려면 미국을 비롯한 경쟁국의 투자 세액공제 25%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부족할 판이다. 정부와 여당은 바이든 정부가 ‘칩4 동맹’을 앞세워 반도체 생산 중심을 미국 본토로 옮기려는 전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반도체로 자만하던 일본이 1990년대에 멎은 ‘잃어버린 30년’의 한국판이 현실로 다가설 개연성이 높아짐을 알아야 한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