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언론인
이원두 언론인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가 이번 달 금리인상 폭을 0.25%로 줄이면서 물가 상승세가 줄어들었다는 ‘디스인플레이션’을 13번이나 반복했다. 이에 따라 시장은 연내로 통화정책의 전환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다. 작년 초에 시작된 고금리 시대가 어쩌면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물가 상승세도 일단 고비를 넘긴 것도 낙관론의 근거로 작용한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를 비록 베이비스텝으로 인상했으나 한국과의 금리차는 사상 최대인 1.25%로 늘어났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금리를 더 올리기에는 경제지표가 만만치 않다.

작년 한해 동안 이어진 고금리 정책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의 연준(Fed)과 연준이사회(FRB) 의장인 파월이다. 그러나 한국은행 역시 고금리를 통해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한은은 미국보다 한 걸음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림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선진국에 진입한 것은 분명하지만 한은은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적 권리행사’에 소극적이었다.
그렇던 것이 선제적 금리 인상을 계기로, 특히 이창용 총재 취임을 계기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으로써 금리 정상화를 실현하는 데 앞장을 섰다. 이로 인해 중앙은행 전문잡지는 지난 5월 한은을 ‘올해의 중앙은행’으로 선정했다. 그렇던 한은이 최근 들어서는 ‘독립성’보다는 장부와의 팀플레이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물가보다는 경기 살리기로 방향을 전환 것이다.

물가 잡기, 인플레이션 제동을 위해서는 금리를 계속 올리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또 미국과의 금리 차가 1.25%나 벌어진 지금 자금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 현실은 그럴 여유가 없다. 부동산과 가계부채라는 두 개의 짐이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특히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을 초과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며 냉각된 부동산 시장은 경기 침체에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지금 수준 이상의 금리를 감당할 체력이 없다는 뜻이다. 작년에 ‘올해의 중앙은행’으로 선정된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 경제는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이 크게 줄어듦에 따라 성장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황이다. 지난달 5.2%나 오른 물가 역시 앞으로 가스, 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을 잇고 있어 더욱 비관적이다. 그런데도 물가 관리가 주 임무인 한은은 금리 인상을 망서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단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돈을 풀면서 저금리를 유지해 온 것만이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는 친 우크라이나와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블록 간에 형성된 이른바 ’냉전 2.0‘도 큰 문제다.
또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체인) 개편에 따른, 이른바 자급자족 형으로 중심이 옮겨짐에 따른 원가 상승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복합적 요인을 경시한 물가와 경기 전망은 자칫 오판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책임 있는 기관이나 당사자의 말 한마디에 따라 시장이 요동칠 수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뿌리가 깊을 수도 있다고 한 것이나 세계 최고경영자 70%가 ‘올 한 해 동안 경기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답변한 것(프라이스 워터 하우스쿠퍼스PwC 조사)도 이를 감안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은의 발목을 잡은 고물가와 가계부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재정지원에 나서더라도 경제적 약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밀한 설계가 절대 요건이다. 미국 경제학계가 산출하는 경제정책 불확실 지수가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하다. 이럴 때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선진국이 정확한 진단과 판단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who is>
이원두
칼럼니스트. 언론인. 번역가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부국장
내외(현 헤랄드)경제 수석논설위원, 파이낸셜 뉴스 주필
한국추리작가협회 상임 부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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