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찬 감독 부임 9개월 만에 해임 통보…“가고자 하는 방향 맞지 않아”
정규시즌 ‘2위’ 성적 불구 사퇴 배경 의문…“선수 기용 압력 행사” 폭로

[민주신문=조성호 기자]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 © 뉴시스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 © 뉴시스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1위 싸움이 한창인 시즌 중 돌연 감독을 경질해 논란이 일고 있다.

흥국생명은 구단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며 감독은 물론 단장까지 사퇴시킨 가운데 당사자인 감독은 구단 고위층에서 선수 기용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 2일 권순찬 감독, 김여일 단장과 결별을 발표했다. 임형준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했다”며 “단장도 동반 사퇴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핑크스파이더스를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지금까지 팀을 이끌어 온 권순찬 감독께는 감사하다”고 전했다.

흥국생명은 일단 이영수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고 시즌을 치를 예정이다. 흥국생명 측은 “권순찬 감독은 고문 형태로 조언 등을 해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배구계에서는 이반 감독 사퇴 결정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시즌 중 감독 교체는 통상 팀 성적이 부진하거나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현재 성적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데다 감독직을 사퇴할 만한 중대한 사건도 알려진 바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21-2022 시즌 6위에 머문 흥국생명은 8년 동안 팀을 이끈 박미희 감독과 결별하고 지난해 4월 권순찬 감독을 새롭게 선임했다.

당시 흥국생명은 “권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 과학적 분석과 체계적 훈련 등을 통해 흥국생명 배구단을 새롭게 바꿀 적임자”라며 “균형 감각이 뛰어난 권 감독이 남자프로팀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핑크스파이더스를 빠르고 조직력 강한 최고의 팀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권 감독이 부임한 흥국생명은 ‘배구 여제’ 김연경 복귀 효과 등에 힘입어 올 시즌 현재 14승 4패, 승점 42점으로 2위에 올라있다. 선두 현대건설과의 승점 차이도 3점에 불과해 1위 자리도 넘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한 달간 흥국생명은 6승 1패를 거두며 상승세를 기록 중이었다. 더구나 권순찬 감독 경질 전 마지막 경기인 지난달 29일 현대건설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세트스코어 3-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팀 내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또한 권순찬 감독은 최근 세터 이원정을 영입하는 등 전력 보강에도 힘쓰면서 우승 도전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흥국생명은 김연경 효과에 성적까지 더해지면서 연일 만원 관중을 기록하는 등 배구계 최고 인기 구단으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흥국생명이 감독 경질과 함께 밝힌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배구계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구단 고위층이 선수 기용에 압력을 행사해 왔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 감독은 지난 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구단 고위층이 선수 기용에 개입해 왔는데 부당한 지시라고 생각해 거부해왔다고 주장했다.

권 감독은 인터뷰에서 “단장이 문자로 오더 내리는 게 있었다. 누구 넣고, 누구 쓰라고 했다”며 “내가 그걸 안들었다. 말 안듣는다고 (고위층에) 보고했을 것이다”라고 폭로했다.

또한 권 감독은 “오전에 갑자기 구단 관계자로부터 2선으로 물러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해 사실상 경질이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배구계에서는 권 감독의 갑작스런 경질 소식에 선수단 내부에서도 동요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권 감독 사퇴 직후 김연경 등 베테랑 선수들은 구단주와 직접 만나 경기 출전 보이콧까지 고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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