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도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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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은 산스크리트 어(語) ‘Paramita’를 한문으로 바라밀(波羅密)이라고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음역한 것인데 더욱 정확한 음역은 바라밀다(波羅密多)이다. 바라(Para)는 강건너 저쪽이라는 뜻이고 미타(Mita)는 도달한다, 도착한다.

또는 완성한다는 말이다. 즉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그럼 이쪽(此岸)은 무엇이고 저쪽(彼岸)은 또 무엇인가. 이쪽이라는 차안은 생노병사의 고통, 탐욕, 어리석음 등으로 윤회

하는 현세(現世) 또는 세속(世俗)이라는 말이고 피안은 모든 고통과 속박에서 자유로운 깨달음의 경지인 도덕적으로 완전한 강 건너 또는 저쪽 극락의 세계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어둡고 괴로운 중생(衆生)의 경지에서 밝고 성숙하거나 깨우친

열반(Nirvana)의 경지로 옮겨간다는 말이다.  열반(涅槃)은 또 무엇인가. 열반은 산스크리트 어 ‘Nirvana’를 말하는데 무아(無我) 또는 자기 비움(空)이라는 의미이며

‘나’를 파멸시키는 욕망의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 즉 지족(知足), 지복(至福). 지락(至樂)의 상태를 말한다.

 즉 이기적 자아를 죽이면 이타적 자아(利他的 自我)가 생동(生動)한다는 말이다.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예수 재림 시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예수를 만난다.”(살전 4:16-18)는 말일 테고 다시 태어난다는 말일 게다. 이런 상태란 성.바울의 말(갈리디아서 5:22-26)대로 성령의 열매(fruitsof spirit)로 가득 채워진 세계이리라. 말하자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세상이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요. 낙원이요. 극락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곳에 도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차안이나 피안이 여기있고 저기 있다는 장소 개념이 아니라 자기 성숙 즉 자기 변혁을 통한 말하자면 각자의 내적 개오(開悟)의 경험이요. 지족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란 자기 자신의 궁극적 변혁을 위한 수단’이라고 한 비교 종교학자 후레데릭 스트렝(Frederick Streng)의 일갈은 지당한 말이고 다들 그렇게 믿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칼.부세(Carl Bosse)의 시귀(詩句)처럼, 

<who is 장계도>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대학 종교단체 초빙강연
칼럼리스트저서 허(虛:도덕경)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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