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정의의 정숙성과 한층 업그레이드된 고급스러움
본전 생각나는 승차감이지만 만족스러운 주행거리로 갈음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정말 오랜만에 제네시스에 올라탔다. 언제였을까? 3.8 엔진을 얹은 제네시스 탄생을 직접 목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속내나 외관은 흘러간 세월을 증명하듯 많이 바뀌었지만, 최고가 되겠다는 갈망만큼은 여전해 보인다.

특히, 이번에 시승한 제네시스는 브랜드의 지향점을 알리는 일렉트리파이드(Electrified) G80 모델이다. 거부할 수 없는 진화다. 지난해 출시했고 1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그동안 2500대 이상이 팔렸다.

지금은 비록 전용 플랫폼을 이식한 GV60이 더욱 주목받게 됐지만 알고 보면 또 다른, 나름의 전기차 매력을 열심히 어필하고 있다.

◇ 가솔린보다 비싼 전기차, 가성비는 동급 비교

강렬한 첫인상으로 와닿는 정숙성과 고급스러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품격을 전반적인 주행 느낌은 호수 위 백조처럼 우아하고, 잔잔하면서도 묵묵한 노력이 엿보인다.

너무 감성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이 더 적절하다. 지금껏 경험해본 차들처럼 기술적 제원만을 남발해봐야 상상의 번뇌만 앞당길 뿐이다.

물론 시승차가 완벽했다는 뜻은 아니다. 만족스러웠던 주행 느낌과 핸들링이었지만, 살짝 밸런스가 어긋난 제동력과 다른 프리미엄 수입차와의 운전 재미 비교에서 약간 욕구 불만이 있긴 했다.

이를 상쇄하는 가성비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전기차라는 자부심과 효율성은 일단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차의 가격은 8281만 원으로 친환경차 보조금 절반 치를 지원받으면 7000만 원 중후반대에 살 수 있다. 1000만 원 이상 차이를 보이는 가솔린 모델을 생각한다면 다소 부담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요모조모 따져보면 때에 따라 합리적인 조건일 수도 있다. 이만한 차를 동급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아서다. 세단형 전기차 중 이 가격에 이 크기에 이 정도 상품성을 갖춘 차는 없다.

차급으로 따지면 벤츠의 EQS, BMW i7, 혹은 포르쉐의 타이칸이 대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출혈은 극심하다. 세단 형태의 전기차가 시중에는 많지 않은 것도 한 가지 포인트다. 이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도 연관된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는 차들은 차체의 중심 설계가 이미 아래쪽에서 집중되기에 차체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GV60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세단형 전기차는 얼마 전 출시한 폴스타 2, BMW i4 정도가 있는데 차체 크기나 승차감 등에서 비교가 힘들다. 제네시스는 G80을 전기차로 제법 잘 뽑아낸 셈이다.

더불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몸값을 올리고 있는 테슬라 차와 비교하면 G80 전동화 모델은 아주 싼 값이다.

참고로 테슬라 라인업은 엔트리급 모델 기준으로 보조금 지원이 반절로 준 데다가 기본 가격도 많이 올랐다.

현재 테슬라 모델 3은 사륜구동 롱레인지 버전으로 8469만7000원의 가격표를 달고 있다. 눈높이를 한 단계 올려 모델 S로 간다면 보조금 포기하고 가격 비교 대상이 안 된다. 하지만 차체 크기나 등급으로 본다면 ‘S’ 쪽과 비교하는 것이 맞는데도 말이다.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인테리어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인테리어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 떨림도 소리도 없는 디젤차 주행 느낌

손에 쥔 스티어링 휠은 묵직하면서 안정적이다. 반면, 치고 나가자고 발끝에 힘을 주면 또 속 시원하게 가속이 이뤄진다. 마치 떨림도 없고 소리도 없는 강력한 디젤차를 타는 느낌이다.

민첩함 뿐만 아니라 고속까지 이르는 시간도 빠르다. 어떤 영역에서도 버거움 따위는 없다. 가속 느낌이 한결같은데, 내연기관 차, 특히 가솔린 차라면 아마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속도가 한번 붙으면 작지 않은 차체에 배터리를 담아 적잖은 무게도 크게 상관없다. 조향은 여전히 무겁지만, 운전의 재미를 보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이편이 더 낫다.

코너에 들어서며 큰 기대를 하지만 라이벌들과의 비교 범위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않는다. 욕심 같아서는 조금 더 날카로운 조향이었으면 했다. 다만, 꽉 조여주는 시트와 차체 밸런스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어지간해서는 멀미가 나지 않는다.

안정적인 핸들링에 재미를 붙이면 자세를 고쳐 앉고 한동안 묵혀 뒀던 에너지를 꺼내 쓰게끔 만드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경쟁 모델들과 비교한다면 개성이 살짝 부족한 느낌인데, 아마도 품격을 강조하는 차에 이미지의 영향도 있을 듯하다. 중후한 멋을 내는 벤츠와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BMW·아우디 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시승후감은 모두 무거운 배터리를 달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전기차가 아닌 일반 버전이라면 스토리 라인을 다시 짜야 할지도 모르겠다.

승차감과 관련해 차체는 무게감 때문인지 둔덕을 넘을 때 느낌은 의외로 거칠다. 울컥거리지 않도록 하체 세팅은 단단하게 잘 잡혀 있는 듯하지만, 충격은 ‘품격있는 세단’ 치고는 살짝 거슬리는 정도로 전달된다.

◇ 엔진, 배터리와 맞바꾼 합리적인 타협

엔진 대신 모터를 단 제네시스는 효율성과 공간을, 정숙성과 승차감을 어느 정도 맞바꿔야 했다. 하지만 이런 거래는 적절히 타협적인 수준에서 이뤄졌다.

앞뒤 한 개씩 달린 136kW의 모터가 사륜구동 시스템을 구현하며 안정감을 선사하지만, 이를 위해 전기차만이 가질 수 있는 프렁크와 세단에서 제공되는 넉넉한 트렁크 공간이 희생됐다.

트렁크는 뒷좌석 아래로 불룩 솟아올라온 게 보인다. 아마 후륜 모터가 자리 잡은 부분인 듯한데,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어느 정도 잡아먹는다. 물론, 덩치 큰 럭셔리 유모차를 실을 게 아니라면 문제 시 될 정도는 아니다.

바닥에 깔린 고용량 배터리로 넉넉한 주행거리를 확보했지만, 높은 시트 포지션으로 머리 공간에서 다소 답답함이 느껴진다. 12방향 전동 시트를 한계치까지 내려도 앉은키가 크다면 햇빛 가리개가 거치적거릴 정도다.

사실 이 부분은 그저 배터리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설계상 차체의 실루엣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며 최고급 최첨단 기술들이 집약된 전동 시트에도 공간을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시트는 스마트 자세제어 시스템이 포함돼 장거리 여행에 알아서 운전자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기능이 있다. 뻐근해지려고 할 때쯤 허리춤을 살짝 밀어 감싸주는 느낌은 꽤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해준다.

G80의 서비스 정신은 다른 곳에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실내 쾌적한 공기를 위해 터널에 다가가면 자동으로 알아서 열린 창문을 닫아주는 기능, 주차장에서 후진으로 출차할 때 후방 차량 접근을 알려주거나 제동하는 기능, 운전자 반응 없이 빠른 속도로 앞차에 접근할 때 급제동을 걸어주는 기능, 충돌이 예상될 때 바짝 조여주는 프리 액티브 시트벨트, 전방을 주시하지 않고 주의가 산만해진 운전자를 일깨우는 기능(‘전방 주시 경고’, 참고로 이 기능은 눈이 작은 운전자에게는 오작동이 자주 일어나는 듯하다) 등 셀 수 없이 많다.

G80의 실내 역시 신기함으로 가득하다. 입체적으로 보이는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는 혼이 빠질 만큼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14.5인치 가로로 길쭉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스크린은 다중 분할로 여러 가지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를 비롯해 음성인식 기능, 차 안에서 주차 요금 등을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 기능, 그리고 증강현실로 길안내까지 해준다. 이것저것 다 찾아보고 익숙해지는 데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다.

한 가지 더, 개인적으로는 기왕 커져야 하는 스크린이라면 세로 보다는 가로 쪽이 더 나은 방향일 듯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무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성이 무척 좋은 편이다.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 서울 대전 대구 부산까지 주행거리 만족

또 하나 시승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주행거리다. 87.2kWh의 리튬 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G80은 이론적으로 1회 충전 최장 주행 가능 거리가 427km에 달한다.

전용 플랫폼인 E-GMP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수준의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이 선택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고 말이다.

기자는 G80 전동화 모델과 함께 서울-부산 왕복 여행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80% 남짓 남은 배터리 용량에서 출발해 중간에 급속충전으로 절반 정도로 다시 채운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총 주행거리는 약 420km 정도.

돌아올 때는 90%를 조금 넘겨 채워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어컨 작동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원을 봤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여행에서 든 충전 요금은 약 2만 원가량. 확실히 장거리 여행에는 전기차가 경제적이다.

하지만, 충전 시간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휴게소에서 급속충전기를 꽂아 놓으면 간단한 커피 한 잔의 휴식이 아니라 푸짐한 식사를 해결하고 와야 한다. 아파트 등에 마련된 7kW급 완속 충전기를 사용하면 밤새워 플러그를 끼워놔야 하고 때에 따라 충전소에 남은 충전기가 없을 수도 있어 발길을 돌려야 할 때도 있다.

아파트 전기차 전용 주차 공간은 이미 다른 전기차 오너가 차지했을 수도 있다. 요즘 들어 전기차가 많아져 웬만한 아파트에서는 충전대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완속 충전기 등은 통일성 없이 중구난방, 여러 서비스 제공 업체가 달려들어 동네마다 다른 플랫폼에 가입해야 하는 등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들도 발생한다.

현대차가 20분이면 충전할 수 있다고 하는 곳들은 직영점으로 완속 충전기 사용 요금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런 충전소가 상시 다니는 길목에 있다면 충전의 편의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한편으로는 한여름 땡볕에 휴게소 충전을 기다리는 모습은 품격과도 조금 어울리지 않는 감도 있고 말이다.

다만, 충전 시간 문제는 모든 전기차에 해당하는 얘기다. G80 전동화 모델은 라이벌들과 비교해보더라도 주행거리나 충전 시간이 나쁘지 않다. 에어컨을 틀고 달리는 실제 주행에서도 예상 거리는 생각보다 잘 나오는 편이다. 게다가 세단의 안락함까지 담았으니 이점도 있는 셈이다.

테슬라 모델 3 롱레인지는 최장 주행 가능 거리가 500km가 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겠지만, 만약 1회 충전 주행거리가 200km도 채 안 되는 미니 일렉트릭 모델을 탔다면, 휴게소에서 몇 번을 더 쉬어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또 배로 걸렸을 수도 있다.

무리하게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G80 전동화 모델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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