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독일차 안 부러운 디자인과 첨단 편의사양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편안한 주행감 선사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지프 하면 ‘오프로드’가 떠오르는 게 당연하다. 여느 미국 차들처럼 상품성이 낙후된 것은 아니지만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미국 차라면 링컨이나 캐딜락조차도 아쉬울 때가 많은데, 이번에 만난 그래드 체로키 L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럭셔리 감성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고급스러운 우드나 가죽 트림이나 등의 소재들은 둘째 치고라도 어디선가 ‘들어는 봤다’ 정도의 최첨단 편의 기능, 구석구석 안락한 주행을 돕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들어갔다.

굳이 비유하자면, 동유럽 강자들에게 비하면 다소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북유럽 감성과는 어느 정도 상대가 될 정도다. 아메리칸 럭셔리에는 이미 올라선 셈. 이런 식으로라면 ‘체로키’라는 브랜드가 따로 등장할 법도 하다.

◇ 초대형 존재감 내뿜는 대형 SUV

지프가 체로키로 럭셔리를 표방하기 시작한 것이 대략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꽤 신선하다. 오프로드를 지향하는 브랜드에 희석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날이 갈수록 그 노력이 더해지는 것도 같고 라인업이 더욱 다양해지는 느낌이라서도 좋다.

국내에서 그랜드 체로키 L은 지난해 11월에 출시돼 현재까지 6개월 남짓 동안 791대가 판매됐다. 어느 정도 프리미엄에 대한 자신감을 수치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

공간 활용성에 방점을 찍는 초대형 SUV 포드 익스페디션과 쉐보레 타호의 기대감을 훌쩍 넘어서고 있으며 이미 브랜드 내에서도 3위, 점유율 15%를 자랑할 정도다.

8000만 원이 넘는 대형차로는 판매 볼륨이 꽤 큰 편이다. 참고로 같은 기간 레니게이드, 랭글러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물론 이 차는 초대형 SUV 세그먼트가 본래 경쟁 부문이 아니다. 본국인 미국에서는 상위 레벨에 이들을 상대하는 왜고니어 라인업이 존재한다. 다만, 실용성이나 존재감만큼은 초대형 차처럼 느껴질 뿐이다. 차체가 그리 높지 않은데도 도어를 열면 튀어나오는 사이드 스텝이 있어 더 그런 기분이 든다.

이번 시승차 ‘L’은 기존 그랜드 체로키 5세대 모델에서 차체와 휠베이스를 늘린 파생형 모델이다. 국내에는 5세대 기본형 그랜드 체로키 모델보다 ‘L’ 버전이 먼저 들어왔다.

포드의 익스플로러나 쉐보레 트레버스, 혼다 파일럿, 현대 팰리세이드 등과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차체의 길이나 휠베이스의 활용 범위가 모두 비슷하지만, 스타일이나 소재 등 상품성과 가격은 모두 제각각이다.

가격으로 본다면 제네시스 GV80, 볼보 XC90,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있는 준프리미엄급 대형 SUV 시장으로 들어간다.

◇ 넘쳐나는 편의사양, 선택은 자유

럭셔리를 표방하면서 지프의 트레이트 마크, 오프로드 기능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주행감과 고급스러운 소재 및 편의 장비들이 돋보이니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휠베이스가 3m를 넘기는 차를 타고 오프로드를 즐길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으니 고급스러운 우드 트림의 스티어링을 한 번 부여잡고 나면 오프로드 따위는 내다 버릴 마음마저 든다. 조수석에도 별도의 터치 디스플레이가 있는 걸 보면 마냥 신기할 뿐이다.

실용성도 놓치지는 않았다. 시승한 모델인 서밋 리저브 트림은 6인승 레이아웃으로 5인 가족에게는 460리터의 제법 넉넉한 짐칸도 제공한다. 최대 적재 공간은 2390리터에 달한다.

마찬가지로 모델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 ‘오버랜드’ 트림은 7인승 구조에 1000만 원 더 싼 가격을 제시하니 그에 대한 매력도 충분하다. 판매 가격은 서밋 리저브가 9780만 원이다.

두 트림의 차이는 가격 이외 1인치의 휠사이즈와 타이어 크기 등의 외적인 요소와 자잘한 편의 장비들의 포함 여부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꼭 ‘자잘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그 개수가 만만치가 않다.

예를 들어 액티브 드라이빙 어시스트, 파크센스 평행/수직 주차 및 출차 보조 시스템, 교차로 충돌 방지 보조 시스템, 교통 표지 인식 시스템, 운전자 졸음 감지 시스템, 동물/사람 감지 나이트 비전 카메라 시스템 등의 안전장비를 비롯해 무선 충전 패드, 우드 프리미엄 스티어링 휠, 2열 버킷 시트, 앞좌석 파워 마사지, 12-방향 파워 시트, 팔러모 가죽 시트, 선셰이드, 오토 디밍 디지털 디스플레이 룸미러, 4존 오토 에어컨 및 프리미엄 에어 필터링 등의 유무다.

하지만 실제로 이 넘치는 기능들을 제대로 활용할 거 같지는 않다. 지프가 자랑하는 5세대 유커넥트 통합 시스템이 아직 불안정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흘의 시승 동안 세 번의 시스템 오류를 확인했는데, 한 번은 스마트폰과 연동된 애플카플레이의 티맵 출력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또 한번은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작은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나이트 비전. 마지막은 차선 유지를 도와주는 운전자 보조 기능이 잠시 먹통이 된 경우였다.

물론 재가동하며 원상복구가 됐던 가벼운 오류지만, 유용하게 자주 쓸 것이 아니라면 굳이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인테리어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인테리어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 넉넉한 퍼포먼스에 부드러운 가속 인상적

그랜드 체로키 L은 승차감이나 퍼포먼스에서 보더라도 오프로드보다는 일반도로가 더 잘 어울리는 성향이다.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을 얹고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최고출력 286마력, 35.1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덩치 탓인지 가속 성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부족함을 찾아볼 수도 없다. 고속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잡으며 차체 길이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추월도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낼 수 있을 정도의 퍼포먼스다.

이보다 인상적인 것은 부드러운 주행감이다. 출발 시 가속 페달을 밟으면 5.2m에 달하는 육중한 차체를 마치 부드러운 중형 세단처럼 끌고 나간다. 장거리 여행자들을 위한 패밀리 SUV로 최적인 셈이다.

무게감은 제동 능력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어차피 점잖게 출발했으니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미리 밟아주는 것도 올바른 운전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속주행을 할라치면 역시 정숙함과 더불어 순항한다는 느낌이 짙다. 앞차와의 거리는 물론 차선 유지기능까지 별도로 조절할 수 있어 운전의 편의성도 탁월하다. 과격하게 스로틀을 열면 살짝 버거운 엔진음이 들리지만 한 번 가속이 이뤄지고나면 이내 조용하고 안락한 실내 공간을 되찾을 수 있다.

전폭과 전고가 트레버스보다 낮은 편인데도 코너에서의 회전 질감은 약간의 쏠림을 동반하는 편이다. 대신 볼보 XC90처럼 다소 앞뒤로 울컥거리는 현상은 나타나지는 않는다. 탄탄하게 맞춰놓은 하체 세팅 때문인 것 같다.

하체 느낌은 적용된 서스펜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는데 XC90의 경우 앞쪽 더블위시본, 인테그랄링크 뒤를 적용한 반면 트레버스와 마찬가지로 L은 앞뒤 모두 멀티링크를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두 멀티링크 계열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암의 개수와도 차이는 있는 법이다.

이는 오프로드 성향에서도 차이를 만든다. L은 오프로드 상황에서 어느 쪽 휠에 구동력이 전달되고 있는지 디지털 인스트루먼트를 통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조금 더 안정적으로 험로를 주파하라는 뜻일 것이다.

5등급 연비가 다소 밟히긴 하지만, 주말 가족 여행을 완벽하게 즐기고 싶다면 약간의 불편함도 괜찮다. 그게 아니라면 주중 출퇴근을 위한 소형 전기차가 세컨카로 대안이 돼도 괜찮고 말이다.

연비는 구간별 차이가 심하다. 고속도로에서는 약 56분 동안 81.4km 주행에 14.8km/L의 평균 연비를 기록했고, 도심 정체 구간에서는 약 55분 동안 17.9km 주행에 5.4/km/L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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