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사부곡


 

▲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으로 수감중인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

“아빠 손 잡고 결혼식장 들어가고 싶었는데…”

결혼한 지 26일 만에 친정서 목매 자살
딸 지효씨 “아빠 힘내세요” 쪽지 남겨

‘국정원 불법도청사건’으로 수감 중인 김은성(61)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 셋째 딸 지효(25)씨가 결혼한 지 26일만에 목을 매 자살했다. 김 전 차장의 막내딸인 지효씨는 지난 7월 19일 오전 8시 40분께 친정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효씨는 같은 날 오전 출근한 파출부에 의해 발견됐으며, 친정 식구들은 모두 집을 비운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집에는 김 전 차장의 부인과 둘째딸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날 밤 다른 곳에서 숙박하는 바람에 지효씨 혼자 집에 남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의 내막에 대해 알아본다.

불법 도청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수감중인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 셋째 딸 지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친정집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허리띠를 묶고 목을 매 자살한 지효씨는 이날 오전 출근한 파출부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지효씨는 지난달 24일 결혼한 한 달도 채 안된 새댁이었다.

지효씨는 자살 전날 밤인 지난 18일 서울 양천구 자신의 집에서 분당 친정집에 찾아갔으며, “아빠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빠 힘내세요”

사건을 접수한 분당경찰서 폭력 2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서울 삼성동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지효씨는 유학생인 남편과 외국에 나가는 문제로 여러 차례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건이 발생하기 몇 일 전에는 “가족들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는 등 가정 불화로 많이 힘들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측근에 따르면 감수성이 예민한 지효씨는 김 전 차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볼 때 마다 “다른 사람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면하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다 나오는데 왜 아빠만 갇혀 있어야 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14일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해야 할 결혼식 당일에도 지효씨는 ‘아빠 없는 결혼’에 대해 상심이 컸다고 한다. 결혼 전날인 23일까지 가족들에게 “꼭 아빠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싶다”면서 수감중인 김 전 차장이 식장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러 차례 묻기도 했다는 것.

김 전 차장 또한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키 위해 자신의 변호인인 임운희 변호사를 통해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결혼식 하루 전날 이를 기각한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판 1부는 “김씨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의료진의 소견을 종합해 본 결과 수형 생활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가족의 결혼은 형집행정지 신청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측은 “그동안 형집행정지 허용 기준에 대한 논란이 많아 최대한 엄격하게 적용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차장은 행형법에 규정된 ‘귀휴(복역중인 수형자가 일정기간 휴가를 얻어 귀가했다 복귀하는 제도)’를 통해 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영어의 몸으로 딸 결혼식장에 앉아 있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전 차장의 측근은 당시 상황에 대해 “차장님은 딸아이의 결혼식이 열린 시각 차가운 구치소 바닥에서 두세 시간을 펑펑 우셨다”며 가슴아파 했다.

세 딸을 둔 김 전 차장은 2001년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첫째(30)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데 이어 셋째 결혼식에도 불참하게 됐다.

애끓는 귀휴

처음 사건을 접수받은 분당 서현지구대 관계자는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집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던 건 알고 있지만 그분(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의 딸인 줄은 몰랐다”며 “보도가 나간 직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효씨의 시신을 제일 먼저 확인한 파출부에 대해 지구대 관계자는 “목격자에 의해 지난 19일 오전 사건이 접수됐지만 그분이 이번 사건과 연관되어 지는 걸 원치 않고 있다”며 “목격자가 많이 놀란 상태라 지금은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차장의 변호를 맡았던 임운희 변호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 “언론보도를 통해 오늘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20일)까지는 모르고 계셨다”며 “차장님이 충격을 받고 엉뚱한 결심을 할까봐 딸의 자살 소식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 변호사는 “죽은 딸도 딸이지만 어떻게 하면 차장님에게 충격이 덜 가게 소식을 전할까 걱정”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전 차장의 건강에 대해 임 변호사는 “현재 건강이 상당히 안 좋은 상황”이라며 “재판이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가 결과가 나온 뒤 허탈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임 변호사는 검찰측의 형집행정지 기각과 관련 “일부 정치인들은 형집행정지 신청 사유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밖에 나갈 수 있지만 법률상으로는 밖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송장을 치를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야 형집행정지 사유가 된다”며 “검찰측 또한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검찰측도 형집행정지를 해주고 싶었지만 병원에 있어야 할 차장님이 딸 결혼식에 참석하면 ‘건강한 사람을 왜 형집행정지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타를 두려워했던 것도 있다”며 “오히려 해주고 싶어도 못해버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7월 21일 교도소 측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김 전 차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날 오후 5시께 수감 생활 중이던 영등포구치소를 나왔으며, 아내와 함께 곧바로 집이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로 향했다.

김씨는 앞으로 4박 5일간 막내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뒤 26일 오후 4시까지 구치소로 돌아오게 된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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