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80% 향응접대 필요, 정치권은 고개 절레절레


 

▲ 경력 지긋한 몇몇 정치인들에 따르면, 과거엔 정치인들이 언론인들을 상대로 성접대 등 향응을 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

지난 2004년 말 춘천지역 법조계는 성 접대 파문으로 망신살을 뻗쳤다. 판사 두 명이 변호사들로부터 룸싸롱에서 고급 양주를 얻어 마시고 성 접대까지 받은 사건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판사들이 대체 이럴 수 있느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대법원은 문제의 판사 두 명에 대해 각각 전보와 서면 경고조치 하는데 그쳤다.

‘솜방망이 조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쉽게 잊혀졌다. 성 접대란 것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그야말로 ‘흔한 일’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었을까.

이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최근, 한 정치인이 성 접대 전력 때문에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7·26 재보궐선거 서울 송파갑 지역 출마를 위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가 공천 취소된 정인봉 전 의원 이야기다.

정 전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방송카메라 기자 4명에게 술과 성 접대를 한 ‘죄상’이 공개되는 바람에 논란 끝에 공천권을 이 지역의 원래 ‘주인’이었던 맹형규 전의원에게 뺏겼다.

정 전의원은 16대 총선에서 당선 됐지만 선거법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 당한데 이어 6년 후 또다시 같은 건으로 공천권까지 뺏기는 기막힌 처지가 됐다.

2001년 7월 서울지법 형사 합의 23부의 1심판결문에 따르면, 정 전의원은 2000년 2월 25일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울 종로 후보로 공천 확정 통보를 받은 뒤, 그 날 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주봉’이란 유흥주점에서 KBS·MBC·SBS·YTN 등 한나라당 출입 방송카메라기자 4명에게 460만원 상당의 술·성 접대 등의 향응을 제공한 바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선 ‘성 접대’ 얘기가 때아닌 화제가 됐다. 성 접대와 관련해 정치권에선 예전부터 떠돌던 ‘에피소드’들이 가깝게 있는 일처럼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왠지 익숙한 얘기처럼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성 접대 문제가 정통으로 걸려서 법원으로 넘어간 예는 거의 없었다.

▲최연희 성추행 사건 ▲박계동 룸싸롱 몰래카메라 사건 등이 올 상반기 정치권을 달궜고 ▲주성영 의원의 술집 여주인 폭언 논란 ▲이명박 테니스 파트너 논란 등의 구설수들이 아직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터라 정인봉 전 의원의 성 접대 사건은 이에 뒤섞여 인식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실제론 성 접대 사건이 이렇게 터진 적이 없었는데, 이런 사건의 종류가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왠지 아주 가까이 있는 사건같다”고 말했다.

정 전의원의 처지에 대해 한나라당 사람들은 “성 접대 꼬리표를 달고는 앞으로 정치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며 정 전의원에 대한 공천 박탈을 인정하면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한나라당의 한 전직 당직자는 “정말 재수 없이 걸려 고생한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면서 “정인봉 그 양반, 참 실력도 좋고 사람도 좋고 당에 헌신도 많이 했는데, 진짜 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운 없다”는 말속에는 ‘흔한 일인데 유독 그 양반만 걸렸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이 전직 당직자는 이어 “습관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향응을 제공해온 사람들은 잘 걸리지도 않는다”면서도 “근데 요즘은 그런(상습적 향응제공자) 사람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사석에서 “정치인들이 성 접대를 주고받는 문화가 과거에 비해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지만, 정치 쪽도 사회의 한 부분인데, 사회에서 남자들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런 문화에 들락거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정인봉 씨 일은 솔직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한 국회 보좌진은 “17대 국회 들어오면서 국회의원들이 기자들과 술 먹는 자리가 확실히 줄어들었고, 마신다하더라도 성 접대 이런 쪽은 생각지도 않는 분위기”라면서 “정치 쪽에서 검은 돈이 많으면 돈을 아무렇게나 쓰게 마련인데, 눈먼 돈 나올 구멍이 없는데 누가 자기 지갑 털어서 엉뚱하게 돈을 쓰겠느냐”고 말했다.

이 보좌진은 이어 “오히려 정치권과 기업들을 비교해보면 정치인들의 향응 접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인 등을 상대로 한 정치인들의 성 접대 실태가 자료로 나온 적은 없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라는 데 대해서는 정치 관련자들 모두 ‘맞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30대 정치부 기자는 “정치인과 술 마시는 자리는 흔히 있어도 성 접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일을 전해들은 적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50대에 들어선 한 정치부 기자는 “정치인들과 질펀하게 술 마시던 때는 이미 한참 옛날 이야기가 됐다”면서 “17대 국회 들면서 확실히 달라진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들을 종합하면 성 접대 향응문화와 관련해서 정치권은 ‘정화 속도’가 꽤나 빠른 편인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 매매를 포함한 향응 접대 문화는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여성부가 여론조사기관인 TNS에 의뢰해 지난해 11월 23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000대 기업 가운데 302 곳을 추출해,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업의 접대문화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53.3%의 기업이 성 매매로 연결되는 이른바 ‘성 접대’를 하고 있었다. ‘성 접대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데 대해 종업원 수 1,000명 이상 기업에서는 31.7%가, 500~1,000명 사이의 중소기업에선 54.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0.4%는 거래선 유지 등을 위해 접대가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과거 정치권에선 관행처럼 내려온 ‘성 접대’ 문화가 최근 들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데 대해선 정치권은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번 ‘정인봉 사건’으로 정치권의 성 접대 문화는 더한층 줄어들 것 같다.


<정치에는 술과 여자가 필수?>
과거 정치-언론 향응 문화

정치인과 언론인의 성 접대 인연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력이 지긋한 정치계 인사들이 전하는 정치 뒷이야기 등에 따르면, 과거로 거슬러갈수록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인들의 향응 접대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뤄졌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옛날 3김 시절 정치자금이 다발 채 오갔을 때, 특히 선거 시즌엔 돈이 많이 풀렸는데, 기자들 술 먹이고 여자 붙여주는 일을 전담하는 양반들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일상적이었다”면서 “따지고 보면 좋은 짓은 결코 아니었지만 당시엔 그냥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또 “(기자에게) 술 먹이고 여자 붙여주고 촌지까지 쥐어주는 일도 허다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인사는 “언론 사람들과 정치 쪽 사람들 관계가 어찌 보면 ‘갑을 관계’ 비슷하게 돼 있어서 양쪽이 술을 마셨다 하면 정치인이 돈 내는 건 불변의 철칙이고, 접대를 더 잘해주기 위해서 다들 좋아하는 성 접대로 이어지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정치판에서 붙어사는 인간들이 다 그 인간들인데 요즘이라고 별반 다를 게 있겠냐”며 정치인과 언론인들 간의 술 문화를 비꼬듯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과거 향응 문화에 대해 “검은 정치자금의 유통이 활발했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돈을 많이 쓴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인들에게 자기 돈 아닌 돈이 마구 굴러 들어오니까 신나게 써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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